시중은행들이 김정일 사망이 금융시장에 미칠 파장에 예의주시하면서 비상대응 체제에 들어갔다. 행장, 부행장 주재로 각각 비상회의를 소집해 외화자산의 유동성에 문제가 없는지, 거래기업의 자금 지원이 원활한지를 파악하고 있다. 특히 이번에는 거래 중소기업의 유동성 지원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금융당국의 자금중개기능 강화 주문에 더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대출자산을 축소한 조치를 이유로 “비올 때 우산을 뺏는 게 은행”이라는 비난 여론을 의식한 때문으로 보인다.
20일 은행권에 따르면 기업은행은 전날 오후 부행장급 이상 임원이 참석하는 비상회의를 열고 북한발 대형 이슈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 없는지 긴급 점검했다. 기업은행 고위관계자는 “환리스크 때문에 자금 결제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에 대해 최대한 편의를 제공키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각 부문별 유동성 상황을 점검하는 한편 돌발상황이 발생해도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을 축소하는 일이 없도록 지침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기업은행은 개성공단에 진출한 13개 업체와도 총 215억원의 대출 거래가 있다. 이번 사태로 인해 개성공단 진출 기업들이 유동성 위기를 겪지 않도록 조치할 계획이다.
국민은행은 지난 19일 민병덕 행장 주재로 비상임원회의를 열어 김정일 사망에 따른 금융불안이 가실 때까지 매일 비상회의를 열기로 했다. 국민은행은 이 회의를 통해 국내 금융시장의 잠재적 위험요인을 분석하면서 금리와 외화유동성 등을 수시로 점검키로 했다. 특히 주식, 채권, 환율 등 금융시장의 변화 추이를 지켜보며 필요에 따라 위기대응체제를 가동키로 했다. 다만, 거래 기업에 대한 자금 지원이 중단되는 일이 없도록 모니터링하기로 했다. 이 은행 관계자는 “구체적인 자금 지원 방안이 아직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과거처럼 기업대출을 확 줄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은행 중 유일하게 개성공단에 지점을 둔 우리은행은 평소와 같이 정상 영업을 이어갔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정부의 별도 지침이 없는 한 개성공단 지점은 정상적으로 영업할 것”이라면서 “일선 영업점에서도 평소와 같이 여·수신업무를 하고 있고 기업대출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산은금융그룹도 일일 점검태세에 돌입했다. 특히 금융시장의 상황을 요주의단계(비상경영협의회), 준위기단계(위기관리협의회), 위기단계(위기관리위원회) 등 3단계로 나누고 모니터링을 강화하기로 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유럽 재정위기로 인해 상시 위기대응체제를 유지했던 게 오히려 방어력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면서 "외환 부문을 제외하면 평소보다 더 조용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로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은 행장 또는 부행장이 주재하는 회의 대신 각 부서별 대응 체제를 마련토록 지시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부서별로 시장상황을 모니터링하고, 문제 발생시 해결 방안을 강구토록 지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진성 기자/@gowith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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