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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바로 내몰린 40대 50대...손자와 할아버지의 알바전쟁 치열
서울 용산구 원효로 3가에 위치한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알바)를 하는 이운형(67) 씨는 골판지로 박스를 만드는 사업을 하다 허리를 다쳐 한동안 일을 쉬었다. 일정한 수입이 없자, 어쩔 수 없이 주유소 일을 시작하게 됐다. 오후 5시부터 새벽 2시까지 하루 9시간 일하고 월급 130만 원을 받는다. 수입의 대부분은 생활비와 병원비로 쓰인다. 부인과 사별하고 딸은 출가했다는 이씨. 가끔 낚시를 다니며 시간을 보내지만 삶이 재미 없다. 반말투의 젊은 손님, 계산이 늦다며 따지는 여성을 볼 때면 확 끌어 오르기도 하지만 서글퍼진다.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에 사는 ‘젊은 할머니’ 진혜숙(45ㆍ여)씨는 토스트집 알바 7년차다. 오후 3시부터 밤10시까지 근무하면 하루 4만원 가량을 번다. 그나마 이전 치킨집 알바에 비하면 대우가 좋다. 이렇게 벌어도 월세 60만원을 주는 게 쉽지 않다. 그나마 어린 딸의 아들, 손주녀석을 볼 때면 힘이 난다.

대기업에서 부장, 적어도 차장급이어야 할 사람들이 패스트푸드점,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알바)를 하고 있다. 서울 명동 거리에서 시간당 4000원을 받으며 전단지를 뿌리거나 “점심 5000원” 팻말을 들고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도 지긋한 나이, 40대, 50대다.


40대, 50대 아버지들이 10대 후반, 20대 초반 아들뻘, 손자뻘 되는 학생들과 알바 시장에서 눈치 경쟁을 벌이는 가슴 아픈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아르바이트의 사전적 의미는 본래적 직업이 아닌 임시로 하는 일, 부업을 뜻한다. 40대, 50대, 심지어 60대까지 직업 없이 임시로 시급을 받으며 알바로 일하는 기(奇) 현상이 2012년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40대, 50대가 불쌍하고 슬퍼서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싶지만 분명한 건 현실이다.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포털사이트 알바몬에 따르면 지난 2007년 2~3월 한달 평균 121건 등록에 그쳤던 50대 이상 고령 구직자의 이력서수가 올 초 한달 평균 653건이 등록됐다. 불과 5년 새 5.4배나 증가했다. 등록되는 이력서의 대부분은 20대다. 같은 기간 20대의 이력서가 1만 6368건. 올 해 같은 기간에도 3만 48건이 등록됐다. 증가수치는 1.8배 증가에 불과했다. 30대도 같은 기간 2배 증가하는데 그쳤다.

전체 이력서 중 50대 이상 이력서가 차지하는 비중은 0.6%에서 1.6%로 3배나 늘어났다.

아르바이트를 희망하는 중장년층이 늘면서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점, 주유소 등에서 일하는 중장년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토스트가게에서 일하고 있는 진혜숙씨와 주유소에서 일하는 이운형씨는 아르바이트로 가계를 꾸려가고 있다.

이렇게 늘어난 수치 이면에는 슬픈 40대, 아픈 50대, 서러운 60대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40대, 50대 구직자들이 이력서에 올리는 희망 업종은 매장관리, 판매, 고객상담, 리서치, 영업, 기능, 생산, 노무 등 ‘단순직’이다.

젊은 층은 6개월 안팎의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일하고 싶다고 하지만, 40대, 50대는 다르다. 40대, 50대의 71% 이상은 1년 이상 안정적인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는다.

이영걸 알바몬 이사는 “노년 인구의 증가와 함께 경제활동을 하려는 고령 아르바이트 구직자의 알바 시장 유입이 증가하면서 상대적으로 많은 자격을 요구하지 않는 단순, 장기적인 일자리를 얻으려는 고령 구직자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40대 남성의 경우 주5일제로 퇴직연령이 빨라지면서 기존의 일자리를 그만두고 이직할 때 발생하는 ‘마찰적 실업’의 성격이 강하다”며 “전직하기 위한 공백기를 이용해 시간제 근무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우 교수는 이어 “그러나 이직 및 구직 기간이 길어져 정규직으로 이직하지 못하는 경우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 있다”며 “이들의 인적자본과 생산성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사회적 손실로, 임금체계에서도 정상에 있지 않은 이들을 기업과 연결시켜 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40, 50대 중장년층의 아르바이트가 늘고 있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신 교수는 “한국 노동시장의 특징이 일을 하다 퇴직하면 재취업이 어려다는 점”이라며 “고령화시대에 조기퇴직과 명퇴가 보편화되는 현상은 고용불안정을 발생시켜 실제로 고령자자사율이 세계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또 “유럽처럼 공공부문에서 정년 퇴직연령을 늘리거나 사회적책임을 고려한 기업들이 고용기간을 늘리는 등 제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태형 기자/th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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