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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형석의 상상력 사전> 밥
중고등학교 점심시간 아이들은 대략 세 부류였다. 반찬통을 손으로 가리고 홀로 먹는 학생과 포크 하나만 달랑 들고 전 교실을 훑으며 남의 도시락에 쉴 새 없이 손을 들락이는 아이, 그리고 책상을 빼고 붙여 삼삼오오 모여서는 서로의 찬을 나눠먹는 대부분의 친구들. 지금 생각하면 참 정겨운 풍경이다.

지금도 없진 않지만 시대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점심시간 알리는 종과 함께 사라지는 소년, 소녀들도 있었다. 배고팠던 옛 시절을 그린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듯 이들은 대부분 수돗가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밥 대신 물로 배를 채우던 학생들에게 슬그머니 자신의 도시락을 내어주던 선생님도 동화나 낡은 사진에서 빠지지 않던 등장인물이다. ‘살인의 추억’에서 형사 송강호가 용의자 박해일을 잡은 뒤 무심코 내뱉은 한 마디가 “밥은 먹고 다니냐”였을 정도로 특히 우리 한국인들에게 무의식적인 삶의 표상이다. ‘밥벌이’나 ‘밥줄’이라는 말도 있거니와 우리에겐 전통적으로 ‘가족’보다는 같이 먹는 입이라는 뜻의 식구(食口)라는 단어가 더 익숙하지 않는가.

멀리 갈 것도 없다. 아이들을 먹이는 밥 한 끼를 가지고 어떤 사람은 직선 공직자의 신분과 정치적 생명을 걸었고, 한국 사회 전체가 이른바 좌-우로 나뉘어서 소란스러운 쌈박질을 벌인 게 바로 엊그제다.

아이들이 먹는 점심 한 끼를 뺏느냐 뺏기느냐로 시끄러운 ‘밥그릇 다툼’을 벌이는 또 한 군데가 있다. 지난 1일 개봉한 인도영화 ‘스탠리의 도시락’ 속 한 초등학교다. 시장도 아닌 선생님이 애들 도시락을 뺏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학생들은 친구의 따뜻한 밥 한 그릇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춤과 노래는 물론 재미있는 글과 이야기도 잘 지어 반 친구들 모두가 좋아하는 소년 스탠리.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얼굴엔 멍이 가실 날이 없고, 점심 때는 수돗물로 배를 채우기 일쑤다. 마음 좋은 친구가 ‘4단 도시락’을 싸와 스탠리와 나눠 먹지만, 이 우정이 눈꼴사나운 이가 있었으니 게걸스러운 식탐의 베르마 선생이다.

아이들과 동료 선생님 도시락을 뺏어 먹는 것으로 점심을 대신하곤 하는 베르마는 스탠리 친구의 ‘4단 도시락’에 욕심을 내고, 아이들은 힘과 꾀를 모아 선생을 따돌리고 밥을 지켜낸다. 앙심을 품은 베르마는 스탠리에게 “점심을 싸오지 못하면 학교를 나오지 말라”고 윽박지르고, 다음날부터 교실에선 스탠리를 찾아볼 수 없다. 경쾌한 록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스탠리의 도시락’은 귀엽고 씩씩하며 감동적인 소년들의 우정과 시련 극복기를 다뤘다. 아동학대와 아동 노동 등 인도 사회의 쓰라린 현실도 빼놓지 않고 그려냈다. ‘식신 교사’는 결국 어떻게 됐냐고? 영화보면 안다. 무릇 애들 입에 들어가는 밥 가지고 장난치면 안 되는 법이다.

결국 문제는 밥이다. 거창하게 말하면 인류의 역사는 밥의 역사였다. 누가 밥그릇 싸움을 폄하했던가. 밥벌이야말로 가장 숭고한 행위이며, 밥그릇 다툼이야말로 가장 위대하고 근원적인 투쟁이 아닌가. 당신, 오늘 밥은 잘 드셨나.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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