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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형석의 상상력 사전> 1969
1969년은 역사 속에서도, 영화 속에서도 문제의 한 해였다. 먼저 미국. 69년 7월 15일 ‘아폴로 11호’가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을 태우고 달에 착륙했다. 한 달 후 8월 15일엔 미국 뉴욕 주의 베델 평원에서 사흘간 히피들의 음악축제가 열렸다. ‘우드스톡 페스티벌’이다. 이 행사는 60년대 베트남전에 항의하며 미국 사회를 달군 반전ㆍ여성ㆍ학생ㆍ인권ㆍ노동운동 등을 아우르는 문화적 상징이 됐다.

두 달 후인 10월 15일 미국 전역에선 수십만명의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나와 반전을 외쳤다. 11월 15일 워싱턴DC에서 열린 ‘반전시위’에 25만~50만명이 시위자가 집결해 평화행진을 벌였다. 닉슨 대통령이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며 종전을 암시했으나 불과 두 달 후에 북베트남 폭격을 재개하며 확전한 것이 배경이었다.

69년 미국 영화계에서 흥행 1~3위는 당대 젊은이들의 반항과 좌절, 기성세대에 대한 환멸을 담은, 어둡고 비판적인 작품이 휩쓸었다. ‘아메리칸 뉴 시네마’로 통칭된 작품들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와 ‘미드나이트 카우보이’ ‘이지 라이더’였다. 미국뿐 아니라 68년의 프랑스 ‘5월 혁명’과 ‘프라하의 봄’ 등 저항과 좌절을 경험한 유럽을 포함해 전 세계 젊은이에게 사랑과 평화의 ‘우드스톡’은 로망이었고, ‘아메리칸 뉴 시네마’는 음울한 초상화였으며, 록밴드 CCR의 ‘당신은 비를 본 적이 있나요’(71년)는 ‘세대의 목소리’였다.

최근 개봉한 일본 영화 ‘마이 백 페이지’는 64년 발표된 밥 딜런의 동명곡을 제목으로 했으며 CCR의 노래도 등장한다. 더스틴 호프만의 ‘미드나이트 카우보이’도, 데니스 호퍼의 ‘이지 라이더’도 언급된다. 60년대 말~70년대 초를 뜨겁게 살았던 일본의 두 젊은이가 주인공이다.

일본 역시 60년대 후반 유럽과 비슷한 ‘신좌파 운동’이 당대 젊은이들의 피와 감성을 들끓게 했다. 일본 최고 명문으로 꼽히는 도쿄대에선 ‘야스다 강당 점거 사건’이 벌어졌고, 문제의 69년 초엔 캠퍼스에 진격한 공권력과 바리케이트로 맞선 학생들이 유혈 충돌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주축 세력은 68~69년 학생운동을 대표했던 단체 전공투였다. 야스다 강당 점거 사건 후 벽에 어지럽게 쓰인 구호와 여기저기 널린 찢어진 플래카드를 보여주며 시작하는 ‘마이 백 페이지’의 두 주인공 우메야마(마츠야마 겐이치)와 사와다(쓰마부키 사토시)는 시대가 낳은 ‘사생아’였다.

영웅이 되고자 했으나 허세뿐인 가짜밖에는 될 수 없었던 비겁한 소영웅주의자, 시대의 진실을 파헤치고자 했으나 가짜 혁명가에 농락당한 열혈 저널리스트를 통해 영화는 한시대를 달궜던 청춘의 열정을 회의한다. 쓰마부키 사토시의 또 다른 청춘영화 ‘69 식스티나인’이 일본의 69년에 대한 경쾌한 록음악의 OST라면, ‘마이 백 페이지’는 전공투 세대의 레퀴엠이다. 우리 관객들에게, 특히 386세대에게 남는 질문은 단 하나. ‘우리의 1980년대는 어땠을까?’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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