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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려한 미모…‘청순형 악녀’가 더 밉다
MBC·SBS 인기 드라마 확 바뀐 선악캐릭터
‘신들의 만찬’인주 ‘옥탑방 왕세자’세나
천사표 외모 더해 시청자 동정심 자극
캔디형 준영·박하도 당차게 역경 돌파
과거 순박한 신데렐라 이미지 벗어나


[헤럴드경제=한지숙 기자]성경에서 원죄는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는 이브의 연약함에서 시작한다. 본래 악(惡)은 약(弱)한 마음과 가깝고, 선(善)은 강하게 마련이다. 요즘 TV 드라마에서 악역을 맡은 여자 배우는 이런 악의 본성을 떠올리게 한다. 그동안 악녀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니다. 표독스럽거나 매섭지 않다. 극에서 유혹에 쉽게 빠지고, 열등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미성숙한 인격체인 이들은 단아하고 청순가련해 보인다. 드세고, 소리 지르고, 성질을 부리는 쪽은 외려 착한 여주인공들이다. 악녀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울면서 왕자의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던 신데렐라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MBC 주말극 ‘신들의 만찬’(극본 조은정, 연출 이동윤)에 출연 중인 성유리(고준영 역)와 서현진(하인주 역), SBS 수목극 ‘옥탑방 왕세자’(극본 이희명, 연출 신윤섭)의 한지민(박하 역)과 정유미(홍세나 역)는 얼핏 보면 누가 선한 역인지, 악역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외모만으론 모두 천사급이다.

‘신들의 만찬’에서 준영과 인주는 신의 장난으로 뒤바뀐 운명을 산다. 요리 명가에서 태어난 준영(실은 인주)이 4살 때 제주도 유람선에서 그만 바다에 빠지고, 같은 배에 탔던 인주는 엄마를 잃고 헤매다 준영의 친모 성도희(전인화 분)를 만나 가짜 인주의 삶을 살게 된다. 천재적인 미각을 타고난 준영이 갖은 고생에도 굴하지 않는 의지와 꿋꿋함으로 결국엔 친부모를 찾고, 사랑도 얻게 된다는 뻔한 내용. 결말이 뻔한 통속 드라마인데도, 출생의 비밀이 한 꺼풀씩 벗겨지면서 시청률이 20%를 넘보며 급상승 중이다.
‘신들의 만찬’에서 악녀 인주 역의 서현진과 캔디형 준영 역의 성유리(왼쪽).

준영이 설화나 신화 속 영웅의 변형이라면, 인주는 얄궂은 운명 앞에 발버둥치지만 결국 한계를 깨닫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다. 인주는 양부모의 사랑을 얻기 위해 진짜 인주의 취향과 추억, 입맛까지 글로 외웠다. 그런데도 늘 애정 결핍 상태. 노력하는 ‘살리에르’인 그는 어느 날 느닷없이 나타난 천재 요리사 준영에게 약혼자(주상욱 분)를 뺏기고, 명장 후계자 자리까지 위협받자 불안에 떨고 질투심에 눈이 먼다. 급기야 악행을 벌써 네 번이나 저질렀다. 준영을 쫓아내기 위해 ‘아리랑’ 주방의 식재료 냉장고의 전원코드를 빼 잘못을 준영에게 덮어씌운 꼼수가 시작이었다. 이후 점차 대담해졌다. 해밀(이상우 분)의 버섯 알레르기 정보를 지워 준영이 아리랑에서 결국 쫓겨나게 만들더니, 한식 기내식 경합 하루 전 독초를 음식재료에 넣어 준영의 손을 마비시켰다. 뜨거운 물을 자신의 손목에 붓고는 준영이 한 짓인 양 자작극을 벌여 도희의 마음이 준영에게서 멀어지도록 만들었다.

2인자로서의 삶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주는 얼굴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 단아한 얼굴의 배우 서현진은 오열 대신 절제된 눈물 한 방울을 흘리는 일품 눈물 연기로 호소력을 더한다.

준영은 반대로 고집스럽고 당차다. 극 초반 실수 투성이 모습으로 등장해 ‘민폐’ 캐릭터란 오명도 들었다. 준영은 인주의 악행을 알고는 분노에 부르르 떨며 호통친다. 지난 8일 방송된 20회에서 실은 자신이 도희의 친딸임을 알게 된 뒤에도 애인에게조차 사실을 말하지 않고 스스로 사태를 해결해나가려는 독립성을 보인다.

옥탑방 왕세자’의 천사표 박하 역의 한지민과 악녀 세나 역의 정유미(오른쪽).

‘옥탑방 왕세자’의 악역 세나도 인주처럼 자신의 출생 신분이 부끄럽기는 마찬가지. 그는 ‘잘난’ 남자친구(이태성 분)와 신분을 맞추기 위해 생선장수 어머니를 대학교수로 둔갑시켰다. 그런 그 앞에 이복동생 박하가 등장하자, “왜 자꾸 내 앞에 나타나냐”며 불안해하더니, 급기야 지난 5일 6회 방송에서는 친모가 남자친구의 차에 치여 실려나가는 상황을 보고도 모른 척하는 패륜을 저지른다. 같은 회차에서 세나를 연기하는 정유미는 태용(박유천 분)과의 커플 자전거 데이트 장면에선 해맑은 미소를 띤 ‘천사’의 모습을 하고, 하나와의 대결 장면에선 싸늘한 악녀로 돌변하는 이중성을 제대로 드러냈다.

두 드라마 속 인주와 세나는 술수로 진실을 덮으려 하기 때문에 늘 불안하다. 진실이 온천하에 밝혀지는 날에는 나락으로 떨어질 스스로의 운명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태연할 수 없다. 반면 준영과 박하는 정직하고 올곧게 행동하기 때문에 악녀들 앞에서 항상 당당하고 강건하다.

그런데 인주와 세나가 가슴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독한 눈물을 흘리면, 시청자는 열광하고 드라마 시청률은 오른다. 이들을 보는 시청자의 시선에는 비난과 멸시보다는 동정과 안타까움이 앞선다. 비난과 지킬 앤 하이드처럼 악도 결국 선과 함께 인간 본성에 내재돼 있음을 시청자는 잘 알고 있어서다.

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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