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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사랑 코드‘에 집착하는 이유?
[헤럴드경제=서병기 선임기자]‘첫사랑' 열풍이 불고 있다. TV와 영화가 너도나도 첫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첫사랑이라는 소재는 현재 시점의 정통멜로나 로맨틱 코미디가 점점 식상질 무렵 찾아와 대중의 감성을 적시고 있다. 마치 궤도를 그리듯 흘러가는 운명적인 사랑의 힘이 안먹힐때 그 자리를 차고 들어온 것이 ‘첫사랑 모티브'다.

90년대 대학생활을 했던 사람들의 실패한 첫사랑을 그려낸 영화 ‘건축학개론'이 지금까지 340만여 관객을 불러모아 한국 멜로영화 사상 최고 흥행기록을 경신하며 옛 사랑의 추억담들도 줄을 잇고 있다. 배경음악인 ‘기억의 습작' 세대인 3040뿐만 아니라 50대들에게도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을 자극하고 있다. 첫사랑을 찾아보는 ‘첫사랑 추적기 앱'도 개발돼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1970년대 대학 생활을 통해 첫사랑의 순수성과 낭만, 따뜻함을 그리고 있는 KBS 드라마 ‘사랑비'와 , 시골남녀공학 졸업생들이 오랜 시간이 지나 가진 동창회를 통해 첫사랑과 재회하며 순수 시절의 감정과 그와 상반된 현실에 직면하게 되는 JTBC 수목극 ‘러브어게인'도 모두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첫사랑을 그리는 영상물의 범람은 최근 불었던 복고풍 콘텐츠 바람의 연장선상에 있다. 70년대 고교시절을 보낸 여성들의 이야기인 영화 ‘써니'와 70,80년대 암울했던 시대의 대중문화예술계의 이야기를 그리는 드라마 ‘빛과 그림자', ‘신촌 마돈나’로 이름을 떨쳤던 엄정화가 91학번으로 등장하는 영화 ‘댄싱퀸’ 등이 추억과 향수를 자극하며 크게 성공하자 ‘첫사랑'의 감성에 더욱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첫사랑 콘텐츠'들은 복고풍 의상과 ‘롤리폴리'춤 셔플댄스 등 복고댄스가 수시로 등장하고 30~50대의 감성을 자극할만한 음악들이 흘러나와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는 효과외에도 새로운 감성을 일깨워준다.

한국사회가 너무 빨리 바뀌었기 때문에 그 속도감에 대한 후유증을 앓을 수밖에 없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체제로의 전환은 중년들의 적응을 어렵게 했다.

SNS, 스마트폰 등 소통도구는 급속히 발전하고 편리해졌지만 세대간 이념간 소통은 더욱 힘들어졌다. 돈과 출세를 쫓아 앞만 보고 달려오다 보니 아픔이 많이 생겼고 공허함은 커져갔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첫사랑'은 현재의 관점에서 이를 풀어내기 좋은 재료다. 


‘첫사랑 코드'는 한국사회 특유의 압축성장과정에서 생긴 무리수에 대한 반작용이다. 30~50대 남자가 ‘건축학개론'과 ‘사랑비'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는 건 그 상실감에 대한 보상욕구다. ‘첫사랑'은 앞이 아니라 옆과 뒤를 둘러보는 행위다. 이를 ‘러브어게인' 황인뢰 PD는 “바삐 가던 걸음을 멈추고 늘 스쳐 지나가던 옆집 담벼락에 붙어있는 장미꽃의 향기도 한 번 맡아볼 수 있는 느린 드라마”라고 했다.

물질로는 중년의 마음을 위로해줄 수 없다. 중년들은 첫사랑 콘텐츠를 보며 “내가 왜 이렇게 살았지”하는 후회와 회한의 시간을 가지며 진정한 행복을 생각한다. 중년이 되어서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레는 연애감정이 생긴다는 것으로 아직 살아있음을 증명한다.

‘첫사랑'은 외피상 불륜 형태를 띠기 쉽지만 중년들의 사랑을 불륜이 아니라 소년, 소녀들의 사랑만큼 아름다울 수 있고 순수할 수 있도로 그리려고 한다. 영화 ‘은교'는 노인과 어린 아이의 성적인 관계를 연상하게 하지만 청춘에 대한 갈망의 이야기임을 알고나면 왠지 슬퍼진다.

대중문화가 ‘첫사랑'에 집착하는 것은 속도전쟁을 치르는 우리 사회에 아날로그적 여유와 감성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첫사랑'을 그리는 대중문화 콘텐츠는 첫사랑을 찾아보는 드라마가 아니다.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행위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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