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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우로서는 상상이상의 모델?…두려움 털어낸 오랜 내공 덕!…나를 키운건…어머니의 조언
영화 ‘코리아’서 리분희役 열연
“나 결혼해.”

“우와, 정말? 누구랑?”

“만우절이야, 바보야!”

“뭐야, 진짜인 줄 알았잖아. 언니라면 그렇게 갑자기 결혼 발표할 사람일 거 같아.”

몇 년 전 3월 31일 자정. 한밤중에 불현듯 배두나가 ‘절친’인 공효진에게 전화를 걸어 나눈 대화다.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남북단일팀의 역사적 우승을 다룬 영화 ‘코리아’에서 배우의 탁구 훈련부터 당시 상황에 대한 자문 등을 맡았던 현정화 한국마사회탁구단 감독은 배두나의 성격이나 연기 스타일을 일러 “전진 속공형”이라고 했다. ‘코리아’의 문현성 감독은 “카메라 앞에서 감독과 스태프의 예상을 배반하는, 늘 상상 그 이상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모델이자 ‘살아있는 배우’ ”라고 평했다. 


북한말 배우다 국보법 걸릴라 덜컥 겁

최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배두나는 자신에 대해 “성격은 충동적이고, 연기는 직감적”이라고 말했다.

‘코리아’에서 배두나는 대회 당시 북측 대표선수 리분희 역할을 맡았다. 풍족하고 자유분방한 남측 선수에게 기죽지 않는 꼿꼿한 자존심과 한치의 흔들림도 없는 냉철함으로 리분희를 표현해냈다. 그래서 46일간의 합숙 후 다시 만날 기약없는 헤어짐을 할 때 비로소 스크린 가득히 터지는 현정화와의 눈물어린 우정과 분단의 아픔이 더욱 가슴 저민다.

“정치도 외교도 잘 몰라요. 그냥 소녀적인 감성이라고 보시면 되죠. 마침 ‘코리아’를 다 찍고 워쇼스키 형제 감독의 ‘클라우드 아틀라스’ 촬영차 베를린에 갔어요. 흔적으로만 남은 분단의 장벽을 보니 우리의 현실이 더 안타까웠어요. 얼마전 런던에 갔을 때는 택시운전기사가 ‘노스냐 사우스냐?’고 묻더라고요. 영어 몇 자 배웠다고 ‘원래 우리는 하나였다’는 걸 열심히 설명해줬죠.”

90년대 후반 당돌한 N세대의 아이콘이었던 여배우 배두나. 영화‘ 코리아’의 문현성 감독은 그녀에대해 “카메라 앞에서 감독과 스태프의 예상을 배반하는, 상상 이상의 불온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살아있는 배우’”라고 평한다.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영화 ‘괴물’ 댓글에 얼마나 괴로웠는지…

배두나는 영화 속에서 똑부러지게 북한말을 한다.

“탁구연습 시작하면서 북한말은 주2회 정도 교육받았어요. 탈북자인 선생님의 살아온 내력과 대회 당시 북한의 분위기를 들을 수 있었어요. 억양과 말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몰라요. 단지 ‘내 말을 하자’고 했고, 마음만으로 ‘나는 북한 사람’이라고 끊임없이 되새겼지요. 과장 섞어 ‘이러다가 국가보안법에 걸리는 거 아냐?’라며 겁이 덜컥 날 정도였어요.”

배두나는 1990년대 후반 ‘학교’를 비롯한 드라마와 CF에서 독보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며 당돌하고 감각적인 신세대의 아이콘으로 떴다. 봉준호ㆍ박찬욱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며 누구로도 대체 불가능한 개성의 배우로도 평판을 얻었다.

최근 몇 년간 활동에는 ‘린다 린다 린다’와 ‘공기인형’ 등 일본영화에 출연해 일본 영화상을 휩쓴 경력도 있고, 얼마전엔 워쇼스키 형제 감독과 작업도 했다. 하지만 국내에선 ‘괴물’을 제외하면 흥행과는 운이 없었고, ‘메인스트림’과는 거리를 둔 ‘아웃사이더’로서의 이미지가 강했다.

“N세대의 아이콘이니 신세대의 상징이니 너무 이른 나이에 매스컴이 만들어낸 스타가 된 것이 아닐까, 대중적 인기는 물론이고 감독이나 평론가의 사랑도 받고싶어 했던 것은 주제 넘은 허영이 아니었을까 자학도 많이 했죠. 흥행에 실패해본 배우가 아니면 얼마나 괴롭고 얼마나 스태프에게 미안한지 모를 거예요. ‘괴물’ 댓글에 이런 게 있었어요. ‘괴물이 흥행하려면 무조건 배두나를 극 초반에 죽여야 한다’고 말이죠.”


어머니 권유에 파격적 정사신 연기

배두나의 어머니는 배우 김화영 씨다. 배두나의 필모그래피 중엔 비밀 혁명단체의 조직원으로 출연해 파격적인 정사신을 연기한 ‘복수는 나의 것’도 있었고, 나신을 드러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공기인형’도 있었다. 같은 맥락에서 고 곽지균 감독의 ‘청춘’도 쉽지 않았던 작품 중의 하나다.

배두나는 “난 온실 속에서 자란 스물한살짜리 여자애에 불과했는데, 어머니께서 오히려 배우가 되려면 곽 감독을 거쳐야 한다. 여배우는 벗는 걸 두려워해선 안된다고 권하셨다”고 말했다.

이제 서른두살. 배두나는 그렇게 느림의 미학도, 돌아가는 것의 미덕도 아는 배우가 됐다. 다들 최신형이 나올 때마다 디지털카메라를 바꿔들고 미니홈피에 사진을 부지런히 올릴 때, 배두나가 필름카메라를 들고 초점을 맞추며 컴컴한 인화실에 들어가는 이유다. 함께한 제작사가 감사의 표시로 선물을 해준다고 할 때 다른 배우가 명품시계와 가방 브랜드를 골라도 배두나가 ‘그럼 라이카나 한 대’라고 답하는 이유다. 배두나가 배두나인 이유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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