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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병기 선임기자의 대중문화비평> 그냥 예쁘기만한 ‘동화’…가슴 찌르는 ‘자객’은 없었다
KBS 월화드라마 ‘사랑비’2% 부족한 것은…
1970년대와 21세기
변치않는 순수한 사랑
CF같은 화려한 영상미로 그려

느리게 진행되는 답답함…TV매체엔 별 효과없는
노란우산 그리고 일기장…빈약한 스토리에 외면


KBS 월화극 ‘사랑비’는 1970년대의 사랑과 21세기의 사랑, 두 가지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4회까지는 70년대 첫사랑의 순수성과 낭만, 따뜻함과 아직 어리기 때문에 미숙할 수밖에 없는 사랑법이 찬찬히 그려졌다. 5회부터는 2012년 현재 젊은이의 사랑과 70년대 첫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 부모의 사랑이 함께 나온다.

이를 통해 시대가 바뀌어도 사랑은 순수하고 가슴이 떨리고, 변하지 않는 그 무엇임을 보여주고 있다. 실용적 관점에서 사랑하고 결혼하는 요즘 세태에 대해서도 무언가 이야기하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남녀 캐릭터는 윤석호 감독의 전작에 기댄 전형적인 캐릭터로 설정돼 있다. 서준(장근석)과 하나(윤아)의 현대적 사랑도 요즘 로맨틱 코미디나 멜로물에서 봐왔던 인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남자는 남부러울 것 없는 부잣집 아들이지만 부모가 별거 중이고 성격도 틱틱거리고, 여자는 가난하지만 똑바로 자란 캔디라는 구도다. 특이하다면 70년대 장근석(인하)은 3초 만에 윤아(김윤희)에게 반했고, 2012년대 장근석(서준)은 3초 만에 윤아(하나)를 사로잡는다는 것 정도다.

70년대 이야기가 너무 느리게 전개돼 답답하고 지루하다는 반응과 함께 시청률도 한자릿수에 그치고 있다. 현대로 넘어오면서 스토리의 힘이 조금씩 먹히며 답답함은 사라졌지만 시청률은 좀체 오르지 않고 있다. 풍경화 같은 깨끗한 화면, CF 화면 같은 예쁜 영상을 보면 제작진이 영상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일본 공략용(일본에 80억여원에 판매됐다)이라면 모르겠지만 한국 시청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은 아닌 것 같다. 수채화 같이 맑고 순수한 사랑이야기를 그리는 것이 단순히 예쁘다는 반응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그래서는 이발소 속의 멋진 풍경화처럼 다소 진부하게 보일 수 있다. 장근석은 멋있고 윤아는 예쁘지만 무엇보다 재미가 덜하다는 데 ‘사랑비’의 약점이 있다. 시청자가 느끼는 답답함은 왜 남녀가 속마음을 고백하지 못하고 있지, 전화를 걸어 만나서 좋아한다고 이야기하면 되지 왜 못해 하는 답답함이 아니다. 스토리가 빈약하고 재미가 덜한 데서 오는 답답함이다. 그 빈약한 스토리를 영상으로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스토리가 촘촘하지 못하면 아무리 빼어난 영상도 기대만큼의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드라마 ‘사랑비’의 한 장면.

뛰어난 영상미는 한번 시도하고 나면 낡은 방식이 돼버린다. 낭만적인 캠퍼스의 단풍 풍경, 순백의 설경도 좋지만 노란색깔의 은행잎과 노란 우산, 윤희의 노란색 일기장, 이런 것이 TV라는 매체에서는 효과가 별로 나지 않는다.

70년대 인하와 윤희의 사랑은 다소 답답하고 어수룩한 것이 그 당시의 모습이라고 이해해줄 수 있다. 현대로 넘어오면서 윤아와 장근석이 만나고 인연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설득력이 떨어진다. 두 사람은 일본 홋카이도에서 윤아가 잃어버린 휴대폰을 장근석이 습득함으로써 계속 만나게 된다. 그래서 둘은 온천에 가고 다이아몬드 스노를 찍으러 하루 종일 함께 보내는데, 이 과정의 스토리가 허술하다. 지금은 둘 다 사랑의 감정이 생긴 상태여서 덜 어색하지만 일본에서는 두 사람이 왜 자꾸 만나고 붙어다녔는지 설득력이 떨어졌다.

‘사랑비’는 과거의 사랑이 주요 소재지만 현재의 관점이 별로 들어가 있지 않다. 과거의 예쁜 모습을 하나하나 모자이크해서 붙여나가는 것 같다. 예쁘고 귀엽고 동화 같기는 한데, 그것을 받아들일 때는 좀 심심해진다. 특히 젊은이에게는 감흥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막장적 장치가 넘쳐나고 사건사고가 급격하게 일어나고 있는 요즘 드라마계에 서정성과 순수한 느낌이 나는 드라마가 한 편 있다는 것은 충분히 존재가치가 있다. 세월을 뛰어넘는 불변의 지고지순한 가치로서의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한다면 ‘사랑비’의 효용가치는 충분하다. 하지만 아직은 모티브의 힘이 약하다. 첫사랑은 깨끗하고 순수하다고 말하고 다니는 것이 아닌, 다른 무엇을 통해 저절로 그렇게 느끼게 만들었으면 한다.

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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