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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인호의 전원별곡] 진화하는 귀농·귀촌, 그리고 전원으로 가는 길
과거 생계를 위해 선택했던 귀농·귀촌이 최근 들어 보다 높은 삶의 질과 행복을 추구하는 뉴 트렌드로 자리매김했다. 그 대표적인 특징은 도시인과 도시문화의 급속한 유입으로 나타나는 ‘도시형 농부’, ‘도시형 농촌·농업’이다. 지역주민과 함께 창업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비전 있는 마을을 만들어가며 자연의 축복 속에 건강한 생활을 누리며 제 2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1998년 IMF 당시의 귀농·귀촌은 실직에 따른 생계형이 주류를 이뤘다. 실직 도시인들이 농촌으로 와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성공 확률은 극히 낮았다.

하지만 최근의 귀농·귀촌은 비단 은퇴한 베이비부머(55~63년생 758만2000명) 뿐 아니라 20~30대의 젊은 층과 40대까지 가세하면서 기존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농촌, 새로운 농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도시민과 도시문화의 급속한 유입에 따른 ‘도시형 농촌’, ‘도시형 농업’이 바로 그것이다.

과거의 귀농·귀촌은 도시인이 농촌으로 내려와 시골사람이 되는 것이라면, 지금의 귀농·귀촌은 도시인이 자신의 전문성과 인적·물적 네트워크, 도시문화의 특성을 간직한 채 이를 농촌에 접목시켜 창의적·주도적으로 기존의 농촌을 ‘도시형 농촌’, ‘도시형 농업’으로 변화시켜나가고 있다. 이런 흐름은 향후 귀농·귀촌인이 계속 늘어나면서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00년대 들어 도시에서 농촌으로 거주지를 옮긴 ‘향촌 인구 이동’ 총량(2010년 기준)은 약 93만 명인 반면, 농촌에서 도시로 거주지를 옮긴 ‘향도 인구 이동’ 총량은 약 83만 명에 그쳤다. 2000년대 들어 향촌 인구가 향도 인구를 처음 넘어선 것이다. 이런 인구 이동의 역전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게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분석이다.

실제 지난 2011년 귀농·귀촌은 총 1만503가구로 전년대비 1.6배 늘었다. 귀농 연령별 현황을 보면 30대 이하가 16.5%, 40대가 25.5%, 50대가 33.7%를 차지한다.

이처럼 도시의 젊은 층을 중심으로 농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예견하고 농업을 직업으로서 종사하기 위한 귀농이 증가하면서 첨단 융·복합 산업으로서 농업의 가능성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또한 농촌은 농산물 가공 등의 경제활동과 농촌관광, 그린 로드 등 문화 여가 활동을 통한 부가가치 창출 공간으로 재탄생하고, 농사로 고소득을 올리는 ‘강소농’도 드물기는 하지만 하나 둘 생겨나고 있다.

이들은 그저 도시에서 살다 시골로 내려와 적응한 ‘시골 농부’가 아니라 ‘도시형 농부’다. 이 ‘도시형 농부(귀농인)’은 자본과 기술을 가지고 있거나 농업대학 졸업 후 창업하는 청장년층으로 생산과 유통, 판매에서 새로운 방법을 도입해 혁신을 주도하는 집단이다. 농업에 디지털·모바일 기술을 결합시켜 효율적인 농장관리, 인터넷 판매 등을 통해 높은 소득을 창출한다.

‘도시형 전원인(귀촌인)’은 은퇴 전 이직해 텃밭 등 소규모의 농사를 지으며 농산물 가공 판매, 관광, 체험활동 등 다양한 농외소득을 창출하며 전원생활을 즐긴다. 일부는 지역주민과 함께 창업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대안학교 운영, 마을리더 활동 등으로 지역사회 활성화에 기여한다. 또한 은퇴 후 노년의 생활터전으로 농촌을 선택하고 적당한 규모의 농사를 지으며 자족적 생활을 유지하는 부류도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조사 결과, 귀농인구의 주요 목적지는 수도권과 대도시 주변이고, 강원도와 충청도도 상대적으로 많았다. 교통이 편리한 데다 직거래 등을 통해 생산한 농작물을 소비할 도시인구가 많고, 정보 접근성이 좋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소득, 자녀교육 문제 등 현실적인 제약 탓에 여전히 도시를 벗어나기 어려운 사람들은 판교, 진접, 교하 등 신도시 등지의 단독주택에서 ‘유사 전원생활’을 즐기며, ‘시티파머(City Farmer)’로 변신하기도 한다. 이들은 아파트는 버렸지만 도시를 떠나진 않았다. 편리한 도시생활은 그대로 살리면서 전원의 쾌적함과 여유만을 더하고자 한다. 시티파머란 농촌이 아닌 도시에서 주말농장이나 동네 자투리 땅, 집 앞마당 등의 작은 공간을 이용해 농사짓는 도시농부를 일컫는다. 심지어 아파트 베란다텃밭, 단독주택 옥상텃밭까지 등장했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1년 전국적으로 텃밭을 가꾸는 사람은 약 70만 명에 달했다. 지난 2005년 처음 선보인 도시농부학교가 2008년부터는 부산·대구·대전·광주 등 대도시에도 속속 들어서기 시작했다. 현재 시민단체를 포함한 30여 개 이상의 도시농부학교에서 해마다 2000여명의 시티파머가 배출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면 모두가 꿈꾸는 전원생활, 성공적인 귀농·귀촌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먼저 철저한 사전 계획과 준비가 필수다. 전원의 삶이 마냥 여유롭고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귀농의 경우 도시생활 보다 더욱 치열한 현실일 수도 있다.

가족과 충분히 상의해야 하며 부부간 합의는 필수다. 소요 예산과 사업 계획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설계해야 한다. 또한 다양한 정보 및 교육을 최대한 활용한다. 아울러 희망 지역의 주민들과 사전 교류하고 귀농·귀촌 선배들도 자주 만나 조언을 들어본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지자체의 각종 귀농·귀촌 지원책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지원 정책은 사전준비 단계와 정착 단계로 대별된다. 사전준비 단계에서는 정보와 교육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귀농·귀촌 종합센터(www.returnfarm.com)나 통합농업교육정보 서비스(www.agriedu.net)를 통해 다양한 온·오프라인 교육 서비스가 제공된다. 정착 단계에서는 창업·주택구입·선도농가실습·농산업인턴에 대한 지원과 전원마을 조성 등의 지원책을 꼼꼼하게 챙겨본다.

특히 귀농·귀촌의 성공여부는 입지선택에 달려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인생1막의 밑천이 아파트 등 도시 부동산 이었다면, 인생2막에서는 이를 처분하거나 축소해 땅을 사고 집을 지어야 한다. 새 땅과 집은 제2인생의 밑천이므로 까먹지 않고 불려나가야 함은 물론이다.

일단 전원생활을 결심했다면 먼저 땅 구하기에 들어간다. 이어 집을 지어 입주한 뒤 초기 적응기를 통과해야만 전원생활 안착이 가능하다. 여유로운 전원생활에 더해 재테크 만족까지 ‘덤’으로 얻기 위해서는 터를 잘 잡아야 한다. 미래가치가 잠재된 터를 얻지 못하면 그 위에 지어진 집도 쓸모가 없게 되고, 가치 또한 잃게 된다.

귀농·귀촌지 선택에 있어서 꼭 챙겨보아야 할 몇 가지 입지조건을 살펴보자.

먼저 서울 및 수도권 등 대도시 접근성 확보다. ‘도시형 농촌’, ‘도시형 농업’으로의 진화는 일단 서울 및 수도권 등 대도시와 연결되는 편리한 교통망을 필요로 한다. 지금까지도 그렇고 앞으로도 농촌의 복선전철역이나 고속도로 IC 인근 땅에 대한 선호도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반대로 비록 교통은 다소 불편한 오지라 하더라도 훼손되지 않은 청정한 자연환경을 그대로 간직한 청정특구 라면 그 희소가치 또한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민국 청정오지는 사실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주말주택이 아닌 상시 거주용 이라면 보기에 좋은 터가 아닌 살기에 좋은 곳을 선택해야 한다. 대개는 풍광에 취해 강변이나 계곡가 땅을 선호하지만, 겨울 일조량이 태부족한 북향이라든가, 기후변화에 따른 홍수나 호우, 폭설 피해를 입을 우려가 있는 곳은 피하는 것이 좋다. 특히 ‘겨울이 6개월’ 이라는 강원도 등 산간지역에서 전원생활을 하고자 하는 경우는 더 더욱 보기 좋은 터 보다는 살기 좋은 터를 선택해야 한다.

아울러 귀농이든 귀촌이든 지역가치가 높고 비전 있는 마을을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 흔히 시골 땅을 살 때 개별 땅의 입지조건이나 가격 등 미시적인 분석에 치우친다. 하지만 개별 땅의 가치보다는 지역의 가치를 우선 파악해야 한다. 리(里)나 마을 단위로 볼 때 지역 가치가 높은 곳이란 남향·풍광 등의 자연조건뿐 아니라 미래가치, 역사·문화·관광 등 지역테마, 교육·생활편의시설 등의 조건을 어느 정도 갖춘 곳을 말한다.

비전 있는 마을이란 ‘도시형 농업’, ‘도시형 농촌’으로 진화하는 트렌드에 맞춰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생태마을, 정보화마을, 장수마을 등 각종 정부 지원 사업이나 관광 및 체험교육, 고부가의 특산물 생산 등의 자체 수익모델을 갖추고 있는 마을이다.

입지를 선택했다면 보금자리를 준비해야 한다. 기존 집을 임대하거나 빈집을 구해 리모델링하는 방법도 있지만, 신축한다면 ‘강소주택’이 정답이다. 처음 집을 짓는 이들은 대개 무리를 해서라도 크고 멋진 집을 갖고자 한다. 이는 노후자금 운용이나 집 처분시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규모는 작지만 건강에 좋고 에너지 등 관리비가 적게 드는 실용적인 집을 짓는 게 좋다. 주말주택은 더욱 그렇다. 전원주택 건축은 친환경성과 저에너지를 어떻게 저렴한 비용으로 구현하느냐가 관건이다. 수도권과 광역시 이외 읍·면 지역에 건축면적 150㎡(45평) 이하, 기준시가 2억 원 이하의 집을 지을 경우 기존 주택에 대한 양도세 비과세 혜택도 주어진다.

땅을 사서 집을 지어 초기 전원생활을 시작했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다. 편리한 인스턴트식 도시생활에 길들여져 있다가 막상 전원생활을 시작하게 되면 오래지 않아 환상은 깨지고 많은 불편을 겪게 된다. 특히 산골의 혹독한 겨울나기는 철저한 준비와 인내가 요구된다. 따라서 전원생활 초기의 적응기는 군대식 극기 훈련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특히 큰 부자가 아니라면 도시의 편리함과 전원의 여유로움을 동시에 누리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이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십중팔구 2~3년 후에는 다시 도시로 U턴할 공산이 크다. 도시에서의 편리함, 돈, 명예, 권력 등을 하나 씩 내려놓을 때 비로소 전원의 여유로움과 안식, 건강 등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도시를 버려야 전원을 얻는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박인호(헤럴드경제 객원기자,cafe.naver.com/rm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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