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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해준 희망여행기(5)>참혹한 옛 ’신의 도시’ 카트만두, 그 곁을 지켜주는 KOICA의 감동
【카트만두(네팔)=이해준】중국에 볼거리가 워낙 많아 강행군을 했던데다 티벳에서 히말라야를 넘어 육로로 네팔 카트만두까지 오는 동안 피로가 누적돼, 카트만두에서는 푹 쉬면서 지내기로 했다. 고산증에서 해방된데다 서양 여행자들로 거의 만원인 숙소엔 자유롭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흘러넘쳐 휴식에 안성맞춤이었다.

하지만 시내는 먼지와 매연, 소음, 쓰레기, 오물, 위험한 차량과 오토바이, 엄청난 행인과 상인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어 돌아 다니기가 쉽지 않았다. 한 나라의 수도가 이 정도로 낙후돼 있다는 데 경악했다. 최소한 10~20년 동안 사회기반시설 투자가 거의 이뤄지지 않은 듯 했다. 낡음과 낙후함의 극치였다.

도로는 차가 지나가는 가운데만 겨우 포장이 돼 있다. 그것도 너무 오래돼 곳곳이 패이고 떨어져 나갔다. 중앙선도 없어 차량과 오토바이, 자전거가 뒤엉키고, 차량들은 연신 크락션을 울려댔다. 낡은 차량들이 엑셀을 밟을 때마다 시커먼 매연이 울컥울컥 쏟아졌다. ‘신의 도시’라던 카트만두. 차라리 먼지와 소음의 도시라는 게 맞을 듯 싶었다.
카트만두에서 가장 넓은 중심가로 차량과 오토바이, 자전거, 사람들이 뒤엉켜 극도로 혼잡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카트만두를 가로질러 흐르는 강은 하수구 그 자체였다. 정화시설이 없어 모든 생활하수와 화장실의 오물이 그대로 흘러들어갔다. 주민들은 거기다 쓰레기를 버린다. 히말라야에서 발원해 흐르는 그 맑은 물이 오물 투성이가 된 데 기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로 변의 집들은 취약한 경제상황을 대변하듯 허물어져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대외 원조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 KOICA)을 방문한 것은 행운이었다. 코이카는 네팔에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있었다. 우리에겐 뿌듯한 감동과 함께 삶의 의미를 되새기고 여행의 활력을 찾게 했다. 우리는 하루는 현지활동에 관해 브리핑을 받고, 하루는 지원현장을 직접 돌아보면서 잠깐이지만 봉사활동에도 참가했다. 특히 오지에서 묵묵히 활동하는 단원들을 만난 것은 무엇보다 값진 경험이었다.

네팔은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지만, 코이카의 지원은 예상 보다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총 70명의 단원이 곳곳에서 보건의료, 정보기술(IT), 직업훈련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한국의 좋은 이미지와 꿈을 심고 있었다.

코이카는 네팔 내전의 와중에 인구가 대거 유입되면서 의료지원이 절실했던 카트만두 외곽에 한국-네팔 친선병원을 짓고 의사를 파견해 지역주민들을 진료하고 있다. 정부의 중요 데이터들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정부통합데이터센터(GIDC)를 구축하고 공무원들에게 IT 교육을 지원하는 등 전산화 기반을 구축하는 데도 일익을 담당하고 있었다.
코이카의 지원으로 수도 카트만두 외곽에 건설된 한국-네팔 친선병원에 네팔 현지인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트리부반대학에선 ICT(정보통신기술)센터가 한창 건설 중이었다. 2012년말에 건물이 완공되면 실습용 기자재를 지원하고 전문가를 파견해 네팔 대학생 및 관련 종사자의 IT 능력을 향상시키도록 할 계획이란다.

이밖에도 부처 탄생지인 룸비니 근처의 부트왈에선 기계 전자 등 실생활 기술을 가르치는 직업훈련원을 건설하고, 룸비니를 평화도시로 조성하기 위한 연구, 네팔 서부 띠까폴의 오지 마을을 대상으로 한 의료시설 및 보건 시스템 구축, 관세행정 현대화 사업, 인공습지를 이용한 오수처리 및 음식물 쓰레기의 퇴비화 연구 지원사업 등 이곳저곳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며칠 전에는 네팔에서 활동하는 의료진이 오지마을로 자체적인 의료봉사를 다녀왔고, 우리가 방문했을 때에는 장애우들을 위한 특수학교의 교육시설을 개선하는 활동을 진행하는 등 자체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었다.

이곳 활동을 진두지휘중인 도영아 소장은 “한국의 개발 경험을 살리고 강점이 있는 분야와 네팔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분야를 조화시켜 현지 실정에 맞도록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당장 가시적인 성과가 없더라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변화와 함께 네팔 사회에 새로운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는 게 보람”이라고 말했다.

활동 현장을 돌면서 봉사자들과의 뜻깊은 만남도 가졌다. 76세의 외과의사 강원희 선생님은 30년 이상 스리랑카와 방글라데시 등 오지로만 봉사를 다니신 분이었다. ‘히말라야의 슈바이처’라는 별명도 갖고 계시다. 네팔에는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곳이 너무 많다며 내년에는 더 오지로 들어갈 것이라고 말해 우리를 놀라게 했다.

올해 65세인 내과의사 이용만 선생님도 코이카 파견 기간이 만료되면 다른 봉사단체로 소속을 바꾸어서라도 계속 오지 활동을 계속할 계획이라고 했다. 돈과 사회적 지위, 명예가 보장되는 안락한 생활을 마다하고, 20~30년 동안 오지를 돌면서 인술을 펼치는 이분들에게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었다. 
네팔의 대표적인 대학인 트리부반대학에 코이카의 지원으로 IT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ICT센터 건설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선배들을 따라 봉사 현장에서 땀을 흘리는 젊은 봉사단원들도 만났다. 이들 역시 모두 겸손했지만 봉사활동에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이들과의 만남은 안락하고 편안한 생활만을 쫓아 바쁘게 살아왔던 우리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과연 무엇이 보람있고 ’충만’한 삶인지를 되새기게 했다. 대학생과 고등학생, 중학생인 우리 아이들도 평소와 달리 아주 진지한 태도로 대화를 경청했다. 말로만 듣던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 나름대로 감동을 받는 것 같았다.

코이카 단원들이 자체적으로 봉사활동을 펼치는 곳을 찾아가 우리도 봉사활동 체험을 했다. 카트만두 외곽 키르티푸르(Kirtipur)의 한 낙후된 마을(말하자면 달동네)에 있는 장애우 교육시설을 개선해주는 활동이었다. 차도 올라올 수 없어 걸어서 20분 정도 언덕을 올라와야 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은 등 환경이 아주 열악했다.

봉사단원들은 교실의 해충 박멸과 카펫 청소, 화장실 및 주방 시설개선 공사, 페인트 칠 등 환경개선과 위생교육 등을 실시한다고 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에는 단원들이 장애우 시설의 집기를 밖으로 모두 꺼내놓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일은 장애우들의 교재교구를 깨끗히 닦는 일이었다. 취약하고 낡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놀이 및 교육 기구일지라도, 여기서는 소중하게 쓰이는 물건들이었다. 때문에 하나라도 손상이 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아이들도 아주 진지했다. 걸레를 빨아오고, 소독제를 뿌리고, 교재교구의 먼지와 때를 털어낼 때는 평소 덤벙대던 것과 달리 아주 조심스럽게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기특했다.

여기서도 아이들은 인기였다. 특히 여학생들로 부터 인기가 높았다. 우리가 도착해 막 일을 시작할 때 마침 장애우 교실과 붙어있는 중학교의 수업이 끝나는 시간이었는데, 학생들이 우리 근처로 와 관심을 보였다. 모두들 쭈뼛쭈뼛하다가 한 여학생이 걸레를 잡고 청소에 동참하자, 다른 학생들도 달려들어 함께 교재를 닦으면서 무척 즐거워했다.

우리는 이번 여행을 계획할 때 단순한 관광지 중심의 여행이 아니라, 현지 주민을 만나고 봉사활동이나 현지 교육 프로그램 등에의 참여를 병행하는 ‘살아있는’ 여행을 계획했다. ‘관광’이 아니라 세계와 소통함으로써 새로운 ‘나(자아)’를 발견하고 꿈을 키우는 진짜 ‘여행’을 하고자 했던 것이다. 카트만두에서의 코이카 방문도 그 일환이었고 잊을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을 안겨주었다.

아이들도 사뭇 상기된 표정이었다. 카트만두에 온 이후로 약간 빠져 있었던 활기도 완전히 되찾은 모습이었다. 코이카는 네팔 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에게도 희망을 주었다.

자유기고가/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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