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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은 찻집 하나가 절망을 희망으로 바꿨다
[헤럴드경제=박세환 기자] 삶이란 어쩌면 상처에 익숙해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하루 24시간 동안에도 수없이 크고 작은 상처를 받으며 살아간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 상처를 치유할 때 반드시 큰 위로가 필요하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인생이라는 장난꾸러기가 우리에게 선물하는 작은 기적이다. 아주 우연한 만남, 다정한 한 마디의 말, 따스한 한 잔의 커피와 짧은 음악만으로도 우리는 깊이 위로받을 수 있다. 그리고 다시, 상처 가득한 일상 속으로 뛰어들 수 있다. 그 순간의 ‘나’ 자신은 분명, 어제보다는 더 꿋꿋하고 단단한 존재인 것이다.

대지진과 끝없는 경제 불황을 겪으며 희망을 잃어가는 일본에서, 따스한 상상력과 서정적인 문체로 일상에 깃든 행복을 전해온 모리사와 아키오(森沢明夫). 그의 소설 ‘쓰가루 백년식당’(2009)과 ‘당신에게’(2012, 일본 국민배우 다카쿠라 켄 주연)는 영화로 제작되어 화제를 모았다. 그가 이번에는, 고향 치바 현에 실존하는 ‘무지개 케이프 다방’을 소재로 한 ‘무지개 곶의 찻집’으로 삶에 지친 우리의 마음을 두드린다. 꿈을 쫓지 않는 인생을 선택하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고, 소중한 것을 잃어도 다른 무언가가 찾아온다고, 그러니, 다 괜찮을 거라고 말이다.

일본 도쿄 남쪽의 한적한 시골 마을. 잡초가 무성한 황무지를 지나면 해안 절벽 끝에 뜻밖에도 작은 찻집이 하나 있다. 무슨 사연인지 오른쪽 앞발이 없지만 늘 웃고 있는 하얀 개 고타로가 안내하는 그곳에는 신비할 정도로 맛있는 커피와, 마치 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 손님마다 꼭 맞는 음악을 선사하는 주인 에쓰코가 있다.

갑작스럽게 아내가 죽어 어린 딸과 남겨진 젊은 도예가는 우연히 찻집에 들렀다가, 소중한 것을 잃는 순간 찾아오는 ‘어메이징 그레이스’의 의미를 깨닫는다. 번번이 취업에 실패하던 청년은 찻집 사람들을 통해 진정 하고픈 일을 깨닫고 사랑까지 만나고, 생활고에 시달리던 도둑은 에쓰코 덕분에 실패를 딛고 재기할 힘을, 세상과 사람에 대한 믿음을 되찾는다. 단골손님 ‘다니’ 씨는 오랫동안 간직해온 에쓰코에 대한 마음을 숨긴 채 먼 곳으로 떠나가고, 에쓰코의 조카 ‘고지’는 이제는 모두 평범한 생활인이 된 옛 밴드 친구들과 모여 공연하는 꿈을 이루며 빛나던 청춘의 한 순간을 다시 만끽한다. 마지막 장에서는 에쓰코의 남편이 남긴 무지개 그림에 숨겨진 비밀과, 작은 찻집을 홀로 지키며 에쓰코가 무엇을 기다렸는지 밝혀진다.

우연히, 하지만 인연의 끈을 따라 운명처럼 이 찻집에 찾아든 이들은 막다른 골목 같은 인생의 벼랑 끝에 서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인생이라는 파도에 휩쓸리다 바닷가 작은 절벽 위의 찻집에 밀려 와 에쓰코의 커피와 음악과 온기를 만나 위로받은 뒤, 삶을 똑바로 마주하기 시작한다. 각자에게 어울리는 최고의 커피와 한 곡의 노래처럼, 자신만의 소중한 삶을 걸어가게 된 것이다. 이렇듯 우리 모두 일상에서 경험하는 상처, 그리움, 잔잔한 위로의 과정이 때로는 먹먹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감성을 두드린다. ‘무지개 곶의 찻집’은 자연재해로 한때 건물이 손상되기도 했지만, 현재 재건되어 영업 중이며 에쓰코를 쏙 빼닮은 할머니가 손님들을 따스하게 맞이한다고 한다. 

각자 다른 사연과 상처를 지닌 ‘루저’(loser)들, 그러나 인간미와 희망을 잃지 않고 다시 시작하는 한 언제고 승리자가 될 아름다운 실패자들. 그 모든 이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위로의 정거장 ‘무지개 곶의 찻집’.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 천지를 뒤흔드는 태풍, 새벽의 긴 어둠을 지나는 우리 모두의 소중한 나날이 그 안에 깃들어 있다. 무지개를 기다리며 행복을 찾기보다는, 우리가 이미 함께 보통의 나날들을 통해 무지개보다 더한 행복을 간직하고 있다는 진실을 독자들이 느껴보길 바란다.

gre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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