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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심 절벽속 벙커에도 작품이…
카셀 ‘도쿠멘타 13’ 현장 참관기
지난 9일(현지시간) 개막돼 오는 9월 16일까지 독일 헤센의 소도시 카셀에서 100일간 열리는 ‘도쿠멘타 13’을 두루 참관하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도심 광장과 미술관, 박물관, 궁전 정원, 기차역은 물론, 깊은 숲 속과 호숫가, 심지어 벙커에까지도 작품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나치가 만든 도심 절벽 속 벙커를 활용한 설치 및 영상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선 안전모도 써야 한다. 지도와 우산은 필참이다. 날씨 또한 변덕스러우니 말이다. 

그런데도 올해 이 국제 미술제에는 뉴욕 MoMA(현대미술관), 런던 테이트모던, 파리 퐁피두센터 등 세계 3대 미술관 관장을 필두로 미술계 유력 인사들이 죄다 몰려들었다.

비엔날레, 트리엔날레 대신 카셀이 ‘도쿠멘타’라는 낯선 용어를 고수하고 있는 것은 미래 현대예술을 학술적으로 진중하게 제안하기 위해서다. 또 2차대전 당시 폭격으로 건물의 90%가 파괴됐던 도시를 예술로 치유하겠다는 의지는 올 도쿠멘타에도 잘 드러나 있다. 고개가 절로 끄떡여지는 감동적인 작업들이 여럿인 것. 


전쟁 중 폭격으로 폐허가 된 카셀에서 수거한 불타버린 종이책과 탈레반 정권이 파괴한 바미안 불상의 잔해로 만든 책을 대비시킨 마이클 라코비츠의 작품이 좋은 예다. 카를사우에 공원에 마치 경주의 고분군처럼 봉긋 솟은 중국 작가 쑹동의 거대한 화분 작업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정원’은 난지도처럼 쓰레기로 만든 동산이다.

주 전시장인 프리데리치아눔 미술관과 도쿠멘타 할레에 볼거리가 가장 많다. 전체 150명의 작가 중 3분의 1이 이곳에 작품을 설치했다. 검은 장막을 드리운 공간에 고단한 인생 여정을 통과한 노부부를 표현한 부조회화를 내걸고, 낡은 나팔로 드럼을 만들어 연주하는 린 폴크스의 작품, 스물다섯의 짧은 생을 임신 5개월의 몸으로 마감한 유대인 여성 작가가 남긴 수백장의 스케치는 가슴을 파고든다.

반면에 전시장을 텅 비우고, 산들바람과 햇빛만 변주시킨 라이언 개리건의 작업은 가장 적은 표현으로, 가장 많은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또 정치적ㆍ사회적 이슈를 담은 작품들이 강세를 보이는 것도 카셀의 특징이다.

이 밖에 건물 옥상이며 호텔 지하, 버려진 건물에 설치된 작품들과 요셉 보이스 등 옛 거장들이 도시 곳곳에 남겨 놓은 작품을 보는 묘미 또한 크다. 총 210억원의 예산이 투입된 이 매머드 실험미술제는 올해도 80만명이 넘는 관람객을 모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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