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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라해진 근대화·지구의 종말…예술 그들에게 묻고 답하다
양혜규·문경원·전준호 한국작가 20년만에 초대…독일 ‘카셀 도쿠멘타’를 가다
양혜규 대형 블라인드 설치작품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모습
열병식 나치 전체주의 연상

문경원·전준호 작가 팀 이뤄
2편의 영화·5점의 설치작품 시현


[카셀(독일)=이영란 선임기자] 인구 20만명도 채 안 되는 독일 중부의 소도시 카셀. 과거 군수산업으로 이름을 날렸던 이 도시는 근래엔 쇠락의 기운이 완연하다. 별 다섯 개짜리 특급호텔도, 그 흔한 스타벅스도 없다. 그러나 카셀은 5년마다 세계 현대미술의 ‘심장’으로 변한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고, 가장 진지하며 혁신적인 미술제인 ‘카셀 도쿠멘타’가 열리기 때문이다. 소나기가 연달아 쏟아지는 쌀쌀한 날씨의 소도시 카셀을 열기로 달군 도쿠멘타 현장을 소개한다.

세계적으로 비엔날레만 해도 200개가 넘고, 이런저런 미술제도 100개가 넘지만 카셀 도쿠멘타는 유난히 진입 장벽이 높은 곳이다. 한국 작가는 지난 1992년 육근병에 이어 꼭 20년 만에야 초청장을 받았다. 5년마다 열리는 탓이기도 하고, 독창적이면서도 미래 대안을 내놓는 작업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올해로 13회를 맞는 카셀 도쿠멘타에 한국 작가 양혜규와 전준호 & 문경원 팀이 동시에 초청된 것은 쾌거나 진배없다. 그들의 전시장을 찾아가 봤다.

나치의 무기를 실어나르던 독일 카셀의 화물역에 설치된 양혜규의 길이 45m의 신작. 100개의 검은 블라인드가 규칙적으로 닫혔다, 열리는 것이 근대기 유행했던 매스게임을 연상시킨다. [사진=양혜규 스튜디오]

▶양혜규, 카셀 옛 화물역사에 검은 블라인드를 도열하다= 베를린과 서울을 오가며 작업하는 양혜규(41)의 신작이 설치된 곳은 카셀 중앙역 뒤편의 을씨년스런 옛 화물역사였다. 한때 나치의 전차 등 군수물자를 실은 열차가 분주히 오갔던, 200년 된 이 폐허에 양혜규는 폭 2m의 검은 블라인드 100여개를 두 줄로 늘어뜨렸다.

검은 커튼처럼 낮게 드리워진 블라인드는 기차가 정적을 울리며 역사로 진입하듯 ‘착착, 칙칙’ 소리를 내며 차례로 오르내린다. 마치 잘 짜인 카드 섹션처럼, 열과 오를 맞춰 행진하는 군대처럼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는 것. 블라인드에 모터를 연결하고, 직접 개발한 소프트웨어로 조정한 이 키네틱아트(움직이는 미술)의 작품명은 ‘진입: 탈 과거시제의 공학적 안무’. 검은 블라인드들이 펼치는 기계적 움직임은 20세기 세계를 휩쓸던 전체주의를 연상케 한다. 근대화를 기치로 번영을 갈구하며 개인의 자유를 속박했던 우리 윗세대의 삶과 역사가 저절로 반추된다.

난해하기 짝이 없는 제목에 대해 작가는 “유토피아를 목표로 ‘더 많이, 더 빨리’를 추구했던 근대의 산업화는 세계인들이 똑같이 경험했던 것이다. 과거 엄청난 번영을 누렸던 화물역사가 오늘날 초라하게 방치된 현장을 보고, 근대화는 되돌아갈 순 없으나 아직도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임을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도시의 독자적 색깔은 희미해지고, 이를 대체할 신(新)산업은 찾지 못한 카셀의 구역사와 잘 맞아떨어진 양혜규의 작업은 독일 공영 TV와 신문들이 일제히 머리기사로 보도할 정도로 호평받고 있다.

양혜규는 공연 연출에도 도전했다. 7일(현지시간) 카셀 주립극장에서 프랑스의 지성파 여배우 잔 발리바를 기용해 연극 ‘죽음에 이르는 병’(뒤라스 원작)을 연출해 올린 것. 원작 각색과 조명, 영상, 연출, 오브제 설치를 도맡으며 사랑의 유한함을 다뤄 갈채를 받았다.

캐롤린 크리스토프-바카기예프 감독은 각국 기자 500여명이 운집한 기자회견에서 양혜규를 거론하며 “예술은 파괴된 현장, 버려진 공간을 다시 돌아보게 하고, 동시에 큰 영감을 준다”고 평했다.       

문경원 & 전준호 팀의 아트 프로젝트 ‘뉴스 프롬 노웨어’ 중 영상작품. 오늘날 예술은 과연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미래를 통해 탐구했다. [사진=(카셀,독일) 이영란 기자]

▶문경원 & 전준호 팀, 메인 전시장에 영화를 틀다= 동갑의 작가가 팀을 이룬 문경원(43)ㆍ전준호(43)는 카셀 도쿠멘타의 메인 전시장인 도쿠멘타 할레에서 2편의 영화를 연속적으로 상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건축ㆍ패션ㆍ과학 등 국내외 전문가들과 협업하에 완성한 5점의 설치작품과 각계 인사와의 인터뷰를 집적한 책 등 다각적인 프로젝트를 시현했다.    

타이틀은 ‘뉴스 프롬 노웨어(News from nowhere)’. 오늘날 예술은 과연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그 사회적 기능과 역할, 미래를 천착해본 지극히 방대하고 모험적인 프로젝트로, 제목은 19세기 영국의 전방위작가 윌리엄 모리스의 미래 소설에서 따왔다. 두 작가의 메인 작품(영상) ‘세상의 저편’ 또한 지구 종말 직전의 예술가와 그 이후 새롭게 태어난 신인류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이 특징. 영상 작업에는 이정재와 임수정이 노개런티로 출연해 화제가 됐다.

전준호는 “내 작업에만 몰두하다가 ‘과연 예술은 지금 이 시점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질문을 하게 됐다. 예술의 본질을 찾아 타 예술과의 접점을 찾아나선 방대한 프로젝트라 회의적인 시선이 많았는데 카셀 측으로부터 제의를 받고 밀어붙여 꿈을 이뤘다”고 했다.

이들은 프로젝트의 이론적 얼개를 구축하기 위해 고은 시인, 이창동 감독, 최재천ㆍ정재승 교수 등과 다각적인 대화를 나눴다. 설치작품은 일본 건축가 이토 도요, 디자인그룹 타크람, 한국의 디자이너 정구호 등과 협업하에 제작됐다. 이처럼 여러 장르를 넘나든 입체적인 실험과 도전적인 내용, 완성도 등이 비평가그룹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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