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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 모델 역사 새로 쓴 혜박…계속되는 ‘꿈’의 런웨이
[헤럴드경제=박동미 기자]‘샤넬, 루이비통, 프라다, 크리스찬 디올, 버버리, 발렌시아가, 발망….’ 얼핏 한국 여성이 좋아하는 명품브랜드 순위처럼 보인다. 사실 이 목록은 패션 모델이라면 누구나 걷고 싶은 싶어하는 ‘꿈의 런웨이’다. 그들 중 대부분은(동양인이라면 더 더욱) 평생 한번도 이 무대에 오르지 못한다. 유럽과 미국을 주류로 하는 세계 패션계는 (유럽 브랜드의 매출을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여성들이 가열차게 올려주고 있는 현실과는 별개로) 아시아 디자이너와 모델에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하지만 ‘그들만의 리그’를 경계없이 활보하는 한국 여성이 있다. 세계적인 패션모델 혜박(Hye Parkㆍ27ㆍ본명 박혜림)이다. 2005년 미국판 ‘보그’ 지 촬영 한 번으로 해외 유명 패션쇼에서 7년 동안 꾸준히 ‘워킹’했다. 샤넬, 루이비통부터 가장 최근(2011년) 발망까지 총 30개 무대가 모두 동양인 모델 ‘최초’라는 기록을 세웠다. 박 씨를 지난 5일 서울 정동 헤럴드경제 본사에서 만났다. 런웨이 위 카리스마는 온데간데 없었다. 격의없이 표현하자면 좀 ‘깼다’. 소탈한 모습이 무대 위와는 또다른 매력을 풍겼다. 소녀 같은 말투로 수줍게 입을 연 그 이내 유쾌하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4월에 뉴욕으로 갔다가 다시 한 달반 만에 입국했다. 시차 적응은 좀 했나.

▶화장품 광고촬영과 패션쇼를 마치자마자 들어왔다. 나흘째인데, 잠을 잘 못 이룬다. 새벽에 계속 깨고 식사도 불규칙하다. 오늘 저녁엔 방송 녹화도 있다. 피곤하지만 재미있다. 데뷔 후, 줄곧 해외 활동만 했기 때문에, 한국에서 하는 모든 일이 신기할 따름이다. 아, 뭐 좀 먹으면서 이야기해도 되나. 몹시 배가 고프다. (웃음)


-실제로 보니 사진보다 훨씬 더 말랐다. 타고난 건가. 모델이 지금처럼 아무거나 먹어도 되는 건지 궁금하다.

▶난 먹는 걸 매우 좋아하고 아주 잘 먹는 편이다. 특히 한식을 좋아한다. 고기도 잘 먹고. 아버지와 남동생은 180㎝가 넘고 어머니는 160㎝도 안 되지만, 가족 모두 말랐다. 내 몸매도 타고난 부분이 크다. 물론 쇼나 화보촬영 일정이 잡히면 지독하게 관리한다.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고, 곡물 시리얼 등으로 끼니를 대신한다.


-2005년 미국 ‘보그(VOGUE)’지로 데뷔 후 아시아 모델 최초로 런웨이에 오른 패션쇼가 상당하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 동양인 모델 위상은 어떠한가.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섰던 쇼 중 29개가 모두 아시아 모델로 최초였다. 당시 세계 패션계에서 아시아 모델이 얼마나 소외받았는지 보여준다. 지난해 오른 발망 무대도 동양인 최초라고 하더라. 여전히 백인 모델만을 고집하는 디자이너와 브랜드는 있다. 하지만 7년 전과 비교하면, 동양인 모델이 꽤 늘었다. 한 쇼에 5~6명까지 보인다. 중국 등 ‘큰손’으로 떠오른 아시아시장을 겨냥한 이유도 있고, 미국ㆍ유럽 무대에서 동양계 디자이너의 영향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동양인으로 최초면서 유일한 쇼가 많다. 그만큼 외로웠을 텐데, 지금은 어떤가.

▶든든하면서 긴장도 된다. 이제 독보적인 존재가 아니지 않은가. 나보다 키 크고 더 마른 14~15세 어린 모델들이 치고 올라오는 걸 보면 무섭다. (웃음)


-‘독보적’이란 말을 했는데, 동양인이라서 차별보다 유리했다는 이야기인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후엔 동양인이라서 유리한 부분도 있었다. 수명이 짧은 모델 세계에서 7년간 꾸준히 쇼에 오른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초창기엔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오디션조차 볼 수 없는 경우도 많았다. ‘우린 동양인은 쓰지 않는다’ 고 딱 잘라 말하더라. 당시엔, 흑인모델을 쓰는 것도 아주 특별한 케이스에 해당했다. (프라다의 경우 1997년 나오미 캠벨을 패션쇼에 세워 화제가 됐다. 혜박은 2005년 캠벨에 이어 프라다 런웨이에 오른 백인이 아닌 유일한 모델이다.)


-오디션조차 거부한 그 디자이너가 궁금하다.

▶비밀이다.(웃음) 후에 그 디자이너 무대도 ‘아시아인 최초’라는 타이틀로 섰다. 지금은 날 가장 아껴주는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당시 패션계 분위기를 이해한다. 변화란 쉬운 게 아니다. 늘 새로움을 추구하는 예술가에게도 말이다.


-한국인 최초ㆍ아시아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지만, 어릴 때 이민을 가서 미국을 생활 기반으로 해외 패션계 진출에 수월했던 게 사실 아닌가.

▶인정한다. 내가 한국을 기반으로 활동했다면, 과연 스티븐 마젤(세계적인 사진작가로, 혜박은 2005년 ‘보그(미국판)’ 촬영 때 마젤과 만나 모델로서 정식 데뷔를 했다)에게 발탁됐을지 의문이다. 당시 그는 급하게 동양인 모델을 구했고, 한국에서 온 모델과 내가 오디션을 봤다. 마젤은 내가 백인이 95%인 유타주에 사는 걸 흥미로워했고, 영어를 잘한다는 걸 높이 샀다. 작가와 모델의 대화는 아주 중요하다.


-사진작가 스티븐 마젤을 만난 이후로 승승장구했다. 영어 말고 또다른 성공 비결은 뭐라고 생각하나. 외모인가.

▶적극적인 성격이다. 나는 먼저 다가가는 편이다. 백스테이지에서도 굉장히 활달하다. 웃고 떠들다가 ‘흉한’ 사진도 많이 찍혔다. 한국에서 ‘굴욕 사진’ 이라고 하나. (웃음) 대부분 사람은 인기를 얻으면 만나고 어울리는 사람을 구별한다. 아무래도 더 잘 보이고 싶은 사람,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이 은연중에 보일 테니까. 사람 가려서 사귀는 모델은 금세 내리막길이더라. 난 누구나 똑같이 대한다. 그래서 친구도 많다. 



-세계적인 사진작가, 디자이너, 아티스트들과 함께 일했다. 영어, 성격 외에 외모 경쟁력은 없었단 말인가.

▶내 키(178㎝)는 큰 편도 아니다. 서양 모델들은 대부분 185㎝가 넘는다. 팻 맥그래스(루이비통, 크리스찬 디올 등 유명 컬렉션의 분장을 담당하는 세계적인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미국 ‘보그’ 인터뷰 때 내 얼굴에 대해 ‘도화지 같다’고 했다. 그 말처럼 매 쇼마다 변신 가능한 ‘안 예쁜’ 얼굴이 경쟁력인 것 같다. (손으로 이마를 만지며) 아, 넓은 이마는 콤플렉스인데. 하하.


-7년 동안 꾸준히 무대에 올랐다. 각별한 디자이너가 생겼을 법도 하다.

▶모든 디자이너가 인상깊다. 샤넬의 칼 라거펠트는 워낙 말이 없다. 좋다, 싫다, 예쁘다 정도인데, 그가 ‘예쁘다’ 고 한마디 하면 굉장한 칭찬이다. 웨딩 드레스로 유명한 디자이너 오스카 드 라 렌타는 내 결혼식 드레스도 만들어줬다. 데뷔 후 여름 리조트 컬렉션까지 5년간 모든 쇼에 참여한 발렌시아가의 디자이너 니콜라스 게스키에르와 버버리의 크리스토퍼 베일리도 친하다.


-2006년 크리스찬 디올 패션쇼에서 굽이 부러진 사건이 유명하다. 혜박 연관 검색어에 ‘투명굽’과 당시 동영상이 함께 뜰 정도다.

▶첫 번째 디올 쇼 무대였다. 관객석에서 ‘힐이 부러졌다’고 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신을 벗고 싶지 않았다. (보통 모델들은 굽이 부러지면 구두를 벗고 걷는 경우가 많다) 발 끝을 세워서 굽이 있는 것처럼 걸었다. 런웨이 돌발상황 땐 태연한 게 미덕이다. 구두를 벗으면 다른 모델들보다 키가 작아지지 않나. 피날레 무대에 나가기 위해, 신발 교체를 문의했더니 존 갈리아노(크리스찬 디올의 디자이너)가 ‘어, 굽 나갔어? 전혀 티 안 났는데’라며 ‘여벌이 없으니 벗고 나가라’고 했다. 나는 워킹 때와 마찬가지로 ‘투명굽’으로 나갔다. 키 작아지는 건 정말 싫다. (웃음)


-가장 기억에 남는 패션쇼는 어떤 무대였나.

▶지난해 봄에 참석한 발망의 가을ㆍ겨울 컬렉션이다. 발망의 쇼는 캐스팅 오디션 자체가 없다. 그 시즌에 가장 돋보이는 모델 등 디자이너가 직접 지목해서 알려준다. 이제껏 동양인을 세운 적도 없다. 기회를 주지 않으니 더욱 간절히 원하게 되더라. 결혼 후 2008년부터 세 시즌을 쉬고 복귀한 무대다. 수년 만에 ‘동양인 최초’ 모델을 또 한 번 기록하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다시 런웨이에 서서 행복했던 것 같다. 무엇이 그렇게 당신을 흥분시키는가.

▶환희다. 엄청난 긴장과 함께 밀려오는 감동이다. 런웨이는 객석과 아주 가깝다. 음악이 아무리 크게 울려도 관객들 말소리가 들린다. 내가 입은 옷이 아름다울수록 박수 소리도 커지고, 카메라 플래시도 많이 터진다. 늘 그 기쁨을 상상한다. 음악이 마음에 들면 더 즐겁다. 모든 시선이 나에게만 집중되는 그 찰나가 좋다.


-디자이너는 옷을 창작한다. 그에 비하면 모델은 수동적인 직업 아닌가.

▶모델은 디자이너와 패션계에 굉장히 중요한 존재다. 창작자의 첫 작품을 가장 먼저 입고 선보이는 사람이다. 모델의 얼굴, 몸, 이미지, 걷는 모습과 분위기가 그 옷을 더욱 돋보이게도 하고 평범하게 만들기도 한다. 가장 기쁠 때는 ‘혜박이 입었던 옷이 가장 예뻤다’고 할 때다. 실제로, 발렌시아가 쇼 때 입었던 꽃무늬 미니 원피스는 그해 화보 촬영에 가장 많은 요청을 받았고, 광고에도 쓰일 만큼 반응이 좋았다. 그때 모델로서 보람도 많이 느꼈고, 내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디자이너에게 의견을 말하기도 하나. 모델로서 옷에 대한 이해가 있을 텐데.

▶발렌시아가 꽃무늬 원피스는 매번 단색만 입히는 디자이너에게 ‘나도 화려한 게 입고 싶다’고 건의해서 이뤄졌다. 그만큼 친밀하기 때문에 가능했다. 또 컬렉션 때는 골격만 갖춘 옷을 모델에게 입힌 후 다시 손보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땐 적극적으로 말하는 편이다. ‘셔츠 소매는 접는 게 낫겠다’ 하는 식으로. 때론 디자이너들이 ‘소품은 뭐가 어울릴까’ 하고 묻기도 한다.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아도 난 모든 디자이너의 옷을 존중하다. 늘 옷을 입으면서 ‘잘 걷고, 잘 보여줘야지’ 마음먹는다.


-좋아하는 모델이나 롤모델은.

▶실제로 보고 ‘정말 멋지다’고 감탄한 건 다리아 워보이(29ㆍ캐나다 출신으로 국내에선 최근 한 전자업체 휴대폰 광고로 얼굴을 알렸다)고, 롤모델은 167㎝ 단신으로 유명한 일본계 혼혈 데본 아오키(29)다. 둘 다 카리스마와 개성이 넘친다.


-동양인에게 ‘동양적’이란 표현은 모순이다. 하지만 ‘한국인 비하’로 논란이 된 미국 스타벅스 점원이 묘사한 ‘눈 찢어진 동양인’ 이미지가 강하게 느껴진다.

▶아, 그런가. 나도 인터넷에서 기사를 봤는데, ‘그 점원 참 못났구나’ 생각했다.(웃음) 나는 백인 동네 유타에서 자랐다. 동양인 차별이 심한 곳이다. 무시 당하지 않으려고 열심히 공부한 기억만 난다. 고등학교 때 1등을 했는데 시민권자가 아니라서 2등 장학금을 받았다. 교장선생님이 직접 ‘미안하다(Sorry)’고 했다.


-그래도 학창시절에 늘씬한 외모로 인기가 많았을 것 같다.

▶없었다. 아, 공부 못하는 애들이 좀 좋아하더라. 모르는 거 물어보거나, 그룹 과제할 때 같은 조되면 편하니까 그런 것 같다. (웃음)


-고등학교 땐 공부벌레였고, 대학에선 생물학을 전공했다. 어딘지 패션 모델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모델 에이전시 명함을 많이 받았지만 부모님 반대가 워낙 심했다. ‘대학 들어가면 생각해 보겠다’고 하셔서 패션 디자인으로 유명한 ‘파슨스(Parsons)’와 ‘FIT(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를 지원해 합격했는데, 결국 여기도 반대하셨다. 모델 다음으로 수의사가 되고 싶어서 생물학과에 진학했다.


-결혼을 일찍 했다. 벌써 4년차 주부다. 남편의 ‘외조’는 어떠한가.

▶집은 LA인데 뉴욕에서 쇼와 촬영이 많다 보니 거의 주말부부였다. 이제 한국 활동으로 더 못보게 생겼다. 남편이 종종 패션쇼를 보러 왔다. 내가 아니라 다른 예쁜 모델들을 보러 온 거겠지만.(웃음) 아이는 아직 없다. 아, 시츄 한 마리를 기르고 있다. 그러고 보니 걱정된다. 남편이 밥은 잘 주고 있는지 모르겠다.


-결혼 후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쉬었다. 뭐하며 지냈나.

▶첫 시즌에 100개 쇼에 섰다. 2008년 모델스닷컴(세계 모델 순위를 매기는 사이트로 혜박 외 국내 모델로는 한혜진과 김다울이 50위권에 입성한 바 있다) 16위까지 오르고, 활동이 없던 2009년에도 늘 상위권에 있었다. 데뷔 후 쉬지 않고 달렸다는 의미다. 지치고 머리가 텅 비었다. 주중엔 LA의 한 단과대에 등록해서 수학, 미술 등을 공부했고, 주말엔 남편과 여행을 다녔다. 우린 특히 캠핑을 좋아한다.


-런웨이 위 모델의 수명은 매우 짧다. 7년이면 장기집권 아닌가.

▶그렇다. 모델들은 유럽 유명 디자이너 무대에 한번 서는 게 대부분이다. 길어야 2~3년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서 런웨이에 오르는 일은 아주 소수의 ‘톱 모델’ 만 가능하다. 난 서양 모델보다 희소성 측면에서 경쟁에 덜 시달린 거 같다.


-모델로서 ‘꿈의 런웨이’는 모두 선 것 같다. 아직 더 해보고 싶은 쇼가 있나.

▶물론이다. 우선, 한국 디자이너 무대에 많이 서고 싶다. 또 해외에선 질샌더와 캘빈클라인이다. 아직 동양인 모델이 선 적이 없다. 그들은 금발에 비쩍 마른 서양인을 선호한다. 그게 브랜드 정체성이기도 하지만. 모델은 늘 오르지 못한 쇼를 갈망한다. 같은 무대에 여러 번 서는 것만큼, 다양한 쇼에 참여하는 것도 중요하다.그리고 가능하면 아주 오래도록 패션쇼에 오르는 모델이 되고 싶다.


-최근 방송인으로도 인지도가 높은 국내 톱모델 장윤주와 같은 소속사다. 지난 4월 한국 에이전시와 손잡은 건 이처럼 활동영역을 넓히기 위한 건가.

▶맞다. 그동안 해외 컬렉션 참가과 결혼으로 국내 활동이 전무하다. 패션과 관계된 일이라면 방송ㆍ광고 등 다양하게 시도할 생각이다. 하지만 가수나 영화배우는 못할 것 같다. 특히 노래엔 영 소질이 없다. (웃음)


▷모델 혜박은=1985년 경기도 출생. 13세에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 후, 2005년 유타주립대 생물학과 재학 중에 세계적인 사진작가 스티븐 마젤에게 발탁됐다. 이때 촬영한 미국판 ‘보그(VOGUE)’ 화보 한 장으로 유명 디자이너들의 러브콜을 받으며 패션 모델로서는 뒤늦은 나이인 20세에 화려한 데뷔를 한다. 2005년부터 2011년까지 7년 동안 샤넬, 루이비통, 발렌시아가, 버버리, 지방시, 발망 등 유명 해외 컬렉션 500여개 런웨이를 밟았고, 이 중 30개가 아시아 모델 최초로 오른 무대다. 또 막스마라, 돌체 앤 가바나, 티파니, 에이치앤엠, 갭 등 10여개 패션 브랜드 글로벌 광고에도 동양인 최초로 활동한 바 있다. 2008년 모델스닷컴의 영향력 있는 모델 16위에 선정된 후 꾸준히 50위권에 올라 있다. 지난 4월 서울패션위크에서 지춘희, 스티브J&요니P의 무대에 깜짝 등장하며 한국 활동을 시작했다.


▷디자이너 요니P가 본 ‘뮤즈’ 혜박=지난 4월 혜박은 모델 데뷔 후 처음으로 국내 최대 패션축제인 ‘서울패션위크’ 무대에 올랐다. 정혁서-배승연 부부 디자이너의 ‘Steve J & Yoni P’ 패션쇼였다. 국내 활동이 전무했던 혜박은 함께 동물보호 활동을 하고 있는 이효리를 통해 배승연 실장과 친분을 쌓았다.

배승연(요니P) 실장은 “세계적인 모델이 우리 무대에 서니 감격스러웠다” 며 “백스테이지에서는 ‘언니, 언니’ 하며 어리광을 피웠는데, 런웨이 위에서 뿜어내는 카리스마엔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고 말했다.

또 동양인 모델 최초로 세계 유명 컬렉션의 런웨이를 활보한 것에 대해서는 “혜박 얼굴에는 동ㆍ서양이 모두 들어있다” 며 “신비롭기만 한 게 아니라 고급스러워서, 유럽 ‘하이엔드(high endㆍ고급)’ 브랜드가 가장 선호하는 이미지”라고 고 평가했다. 


pdm@heraldcorp.com,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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