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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남, 폴란드의 얼굴이 되다
10세기 성채 가득한 폴란드 最古도시…한국인 작가, 포즈난 국제 신공항에 ‘풍경의 알고리듬’ 영구 전시
폴란드는 요즘 ‘2012유럽축구대회’(약칭 EURO 2012) 개최로 세계의 이목을 한몸에 받고 있다. 특히 폴란드의 제2도시 포즈난(Poznan)에는 신(新)공항이 멋진 위용을 자랑하며 개항해 축구팬의 발길이 줄을 잇는 중이다.

우리에게 포즈난이란 도시는 좀 생소하다. 하지만 독일 베를린에서 차로 4시간반 거리의 포즈난은 유럽인들에겐 ‘10세기 성채들이 늘어선 폴란드 최고(最古)의 도시’ ‘죽기 전에 꼭 가 봐야 할 곳’으로 꼽힌다. 15~16세기 유럽교역의 중심지였고 금속·기계·고무·식품·화학산업이 강세여서 소득도 높다. 삼성전자의 대형 공장도 인근에 위치해 있다.

아름다운 중세 성당과 박물관, 미술관이 포진한 폴란드 서부의 중심지 포즈난의 신공항에 한국 작가의 대형 작품이 설치될 예정이어서 주목된다. 뉴욕을 무대로 활동하는 재미(在美)작가 이상남(Lee SangNamㆍ59)은 포즈난 공항에 가로 73m, 폭 3m의 초대형 벽화를 오는 9월 설치한다.

이상남은 당초 공항 벽화를 제작키로 했던 건 아니다. 그는 9월 14일부터 10월 14일까지 포즈난에서 열리는 ‘제3회 미디에이션 비엔날레’(2012 Mediations Biennale-Poznan)의 메인섹션에 초대돼 회화작품을 선보일 참이었다.

미디에이션 비엔날레는 유럽-아시아-미주를 잇고 다양한 장르 간 융합을 보여주기 위해 2008년 첫 회가 열린 국제미술제다. 3회째 접어든 올해에는 4명의 큐레이터가 미주, 유럽, 아시아에서 100여명의 작가를 선정해 펼친다. 요셉 보이스, 아니쉬 카푸어, 빌 비올라 등 쟁쟁한 작가들이 참여하며, 재미작가인 이상남은 미주 쪽 작가 큐레이팅을 맡았던 드니즈 카르발로에 의해 선정됐다.

이상남은 이번 비엔날레에 대형 회화를 내걸기로 하고, 올 초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큐레이터 및 건축가와 함께 시내 곳곳 뮤지엄, 시청사 등을 둘러봤다. 그러던 중 포즈난 신공항의 너른 벽면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아, 이곳이면 정말 좋겠다’는 느낌이 왔고, 그의 한국에서의 회화 프로젝트 자료를 점검한 건축가 피요트르 바렐콥스키의 적극적인 추천과 함께 일사천리로 결정됐다.

이에 따라 이상남의 출품작은 단순히 ‘비엔날레를 위한 1회성 전시’에 그치지 않고, 포즈난 신공항 메인 로비에 영구히 남게 됐다. 신공항 중에서도 가장 핵심지역에 초대형 회화를 내걸게 된 것.


폴란드의 유명 건축가로 공항 등 많은 건축물을 설계한 피요트르 바렐콥스키는 “이상남의 사이보그하면서도 고전적인 회화는 포즈난 신공항과 더없이 잘 어울릴 것이다. 기대가 크다”고 했다.

이상남은 공항을 이용하는 전 세계인들이 자신의 벽화를 음미할 것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고 했다. 동양의 한 작은 나라의 아티스트가 세계인들이 수없이 오가는 국제공항에 대형 회화를 설치하고 소통한다는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2000년 재미작가 강익중이 샌프란시코 국제공항에 벽화를 영구 설치한 데 이어 한국작가 작품이 국제공항에 설치되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이렇듯 세계적 요지에 작품이 설치되는 것은 작품이 미술관에 소장되거나 기업 컬렉션이 되는 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공공장소에서, 그것도 공항에서 무수한 국적의 사람들에게 한국작가의 예술적 경쟁력을 입증해 보인다는 것은 엄청난 돈을 들여 한국예술을 홍보하는 것 이상으로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상남은 “작가가 공공의 장소에 작품을 설치하는 것은 흔한 일이 돼 버렸지만 국제공항은 연간 수백만, 수천만명이 이용하는 다중시설이어서 의미가 크다고 생각해요. 요즘 들어 K-팝이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모으는데 미술로 ‘예술한류’를 일으키는 데 일조하게 돼 기쁩니다”고 했다.

세계를 유목민처럼 누벼온 그가 주력하는 작업은 ‘설치 회화’다. 분명 그림이긴 하나 액자에 넣어두고 감상하는 게 아니라, 건물의 일부로 벽면 또는 통로에 설치하는 방식이다. 그는 사진이나 설치미술, 미디어아트에 밀려 입지가 날로 좁아드는 회화가 다시 살아나려면 대형 스케일의 회화 설치가 활발해져야 한다고 믿는다. 

폴란드 서부의 최대 도시 포즈난의 신설 국제공항에 설치될 작가 이상남의 가로 73m의 대형벽화 ‘풍경의 알고리듬’. 이 작품은 유로컵 축구대회로 유럽의 또 다른 관문으로 부상한 포즈난 국제공항의 새로운 명물이 될 전망이다.

2006년 서울 역삼동 LIG손해보험 본사 사옥에 설치한 대형 그림들이 큰 호평을 받는 바람에 이상남은 2010년에는 안산의 경기도미술관에 국내 최대 규모의 벽화(길이 46m)를 설치했다. 작년에는 경남 사천의 LIG손해보험 연수원에 또다시 36m짜리 초대형 회화를 내걸었다. 특히 경기도 미술관의 스펙터클한 회화는 건조했던 미술관에 큰 생기를 불어넣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번 포즈난 신공항에 이상남은 ‘풍경의 알고리듬(Landscapic Algorithm)’연작을 선보이는데, 기존 작업에선 볼 수 없었던 태양을 연상케 하는 기호 등 새 아이콘들이 배치돼, 보다 다이내믹하고 산뜻해질 전망이다.

그의 그림은 컴퓨터로 작업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알루미늄 또는 철제 패널에 손으로 무수히 덧칠해 완성한 작품이다. 공간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축적된 생각과 아이디어로 생성된 기하학적 이미지들은 ‘1㎜의 전쟁’이라고 표현할 만큼 정교하고 섬세하다. 단연 엄청난 공력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

“작품 표면에 매끄러운 빛이 흐르게 하고 싶어 재료에 굉장히 신경을 쓰는 편이고, 50~100회씩 칠하고 갈아내길 반복합니다. 남들이 보면 도 닦는다고 하죠.”

이상남은 “내 아이콘들은 직선과 원으로 이뤄지죠. 직선은 죽음이요, 원은 삶입니다. 나의 예술은 직선과 원이 무화(無化)되는 곳에 자리잡고 있고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합리와 비합리,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의 샛길을 걷는 내 작업이 사람들의 영혼을 불러냈으면 좋겠어요. 아, 이제 그 대상이 세계인으로 넓혀졌네요”라고 덧붙였다.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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