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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신의 이름으로 장르가 된 춤꾼”
진옥섭 예술감독이 본 故공옥진 여사
“공옥진이란 이름이 곧 공연이고 브랜드죠.”

진옥섭 한국문화의집 예술감독은 공옥진 여사는 자신의 이름으로 한 장르가 된 분이라고 평가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광대, ‘병신춤’이란 요사스러운 이름으로 불렸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그는 1인 창무극을 만들었다. 창과 춤, 극이 한데 어우러진 그의 공연은 기본적인 뼈대만 있을 뿐 수시로 형태를 바꾸는 트랜스포머였다. 특히 즉흥성이 그날의 공연을 좌우했다. 동물춤이 들어가기도 하고, 유행가가 끼어들어가기도 했다. 객석과 무대가 따로 없었다.

1996년 1월 서울두레극장에서 공연할 때 공 여사가 객석에 앉아있던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대표를 불러세웠다. 공 여사의 춤에 빠져 있던 박 대표는 얼떨결에 불려나와 노래 한토막을 불렀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젓는 뱃~사공.”

공옥진을 발굴한 건 무용평론가 정병호 씨다. 심청전 맹인잔치 대목에서 그가 풀어놓은 병신춤이 가관이었다. 배를 잡고 모두 웃었다. 그 대목만 뽑아낸 게 그의 공연의 대명사가 됐다. 그의 춤은 1978년 개관한 공간사랑의 고정 레퍼토리가 되다시피했다. 그러나 병신춤은 사회적 비난을 얻기도 했다. 그 때문에 공 여사는 많이 힘들어 했다.

진 예술감독은 “그의 창무극은 스스로의 인생과 심청전의 처지가 딱 맞아떨어져 공감이 컸다”고 얘기한다.

계보가 있는 이에게 공부삼아 배운 게 아니라 자신이 겪은 일을 바탕으로 창조한 노래와 춤이었기 때문이다. 몸에 응축된 천대와 멸시, 흥과 한이 그의 해학적인 춤을 통해 풀어져 나온 것이다.

그의 창무극은 심청전 외에도 흥부전ㆍ장화홍련전까지 확장됐다. 공 씨의 1인 창무극 심청가는 전통춤이 아니라는 이유로 평가받지 못하다가 2010년 지방무형문화재로 지정받았다.

진 예술감독은 “공 여사가 동물춤과 걸죽한 입담, 해학으로 관객과 밤새 어울려 꾸민 공연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고 회고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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