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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인호의 전원별곡]제4부 자연과 사람⑦ 강원도 산골에서 ‘약된장’만드는 김흥년·장춘희 부부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지요”
산 좋고 물 좋다는 청정지역 강원도에서도 재래식 유기농 된장을 만나리란 쉽지 않다. ‘맛의 고장’ 전라도 등 다른 지역에 밀려서 일까? 애당초 강원도에선 유기농 된장을 만들어 파는 곳이 별로 없다.

행여 있다고 해도 스스로 ‘나 여기 있소’하고 자랑할 줄도, 자랑하는 방법(홍보·광고)도 잘 모른다. 그저 묵묵히 그 옛날 조상대대로 내려오던 방법대로 전통 된장을 만들어, 사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팔 뿐이다.

강원도 홍천군 서석면 청량리에서 직접 유기농 된장을 만드는 김흥년(68)·장춘희(65) 부부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춘희식품’이란 상호를 사용한지는 꽤 되었지만 주변 도로에 안내판도, 제조장엔 간판도 없다. 노부부가 함께 만든 된장을 직접 차에다 싣고 가서 서울 등 도시의 지하철역이나 관청 앞마당, 전시장 등의 도농 직거래 장터에서 판다. 물론 전화로 주문하면 택배로 부쳐주지만, 인터넷을 뒤져도 ‘춘희식품’ 또는 ‘춘희된장’의 연락처나 광고·홍보 안내문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 흔한 인터넷 블러그나 카페를 이용한 직거래 판매도 이들에겐 먼 나라 얘기다.

강원도 유기농 된장의 ‘숨은 옛맛’

이렇듯 전통 5일장 판매방식에 의존하던 이 노부부는 몇 년 전 국내 유수 신문에서 강원도 유기농 된장의 ‘숨은 옛맛’으로 널리 소개하면서 일약 관심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역시도 희미한 추억이 되어 버렸다.

“그게 아마 2009년 3월이었던 것 같아요. 당시 ○○일보에서 기자 두 분이 찾아와 이것저것 묻고 사진까지 찍어 갔는데, 나중에 신문을 보니 우리 부부가 만든 된장을 (오리지널) 전통 된장으로 크게 소개해주었더군요. 이후 밀려드는 주문량 폭주로 귀가 아파 전화를 받지 못할 정도였어요.”

하지만 인터넷과 전화 등 온라인 거래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 노부부에겐 이는 그저 한때 스쳐지나간 열풍이었다. 지금도 이 부부는 자신들이 온갖 정성을 들여 고생스럽게 만든 된장을 차에다 싣고 도시로 나가 직거래 장터에 풀어놓고 파는 방식을 반복하고 있다. 강원도 산골에 숨어있는 오리지널 된장으로 소개될 만큼 그 특별한 맛을 인정받았지만, 인터넷을 다룰 줄 모르는 이 노부부에겐 달리 별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강원도 깊은 산골에서 신실한 신앙생활 속에 옛 방식대로 손수 유기농 된장을 만들어 파는 김흥년·장춘희 부부.

손맛·단맛·고소한맛 ‘3색의 맛’지녀

이 노부부가 갖고 있는 자신들만의 장맛 비결은 뭘까? 이들은 이에 대해 자신들의 ‘손맛’, 유기농 콩과 3년의 숙성과정에서 빚어진 ‘단맛’과 ‘고소한 맛’을 든다.

“거 참 희한해요. 아무리 똑같이 장을 담가도 다른 사람이 담그면 우리(부부)가 담그는 그 맛이 안 나는 거예요. 그래서 메주를 만드는 것 까지는 다른 일꾼들과 함께 하지만 이후 장을 담그는 과정은 우리 부부가 직접 해요.”

장맛은 손맛이라고 했다. 남편 김 씨는 충청도, 부인 장 씨는 강원도 태백 사람이다. 결혼해 서울에서 살다가 17년 전 홍천으로 이사 왔다. 처음에는 오이 등 각종 농사를 지었지만 빚만 늘어났다. 그래서 부가가치가 높은 가공식품 쪽으로 눈을 돌렸다. 부인 장 씨가 어릴 적부터 즐겨먹었고 또한 자신 있는 된장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친정어머니가 된장을 잘 담그셨는데, 아마 그 손맛을 물려받았나 봐요. 시집 와서도 된장 만드니까 시댁 식구들이 다 맛있다고 칭찬해요. 서울 살 때도 된장 담가서 주변 분들한테 주기도 하고 더러 팔기도 하고 그랬어요.”

남편 김 씨도 장 담그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 부인 장씨는 “나 보다 담그는 기술은 더 낫다”라고 추켜세운다.

장춘희 씨는 “유기농 춘희된장은 뱃속을 편안하게 해주고 개운한 맛을 지녔다”고 말한다.

메주 매달 때 쓰는 짚도 유기농 고집

이들이 만드는 유기농 된장의 재료는 의외로 간단하다. 유기농 콩으로 만든 메주에다 물과 소금이 전부다. 물 좋은 강원도니 물은 말할 것도 없고, 소금은 천일염을 들여와 수년간 보관하며 간수를 싹 뺀다.

메주는 황토방(30평)에서 띄운다. 이 과정에서 짚과 싸리나무와 달걀, 붉은 고추와 대추, 깨, 숯 등이 보조 재료로 쓰인다. 방부제나 발효제는 절대 안 넣는다. 메주를 매달거나 할 때 쓰이는 짚조차도 유기농 벼농사의 부산물만 활용한다.

이렇게 정성껏 만들어진 된장을 독에서 퍼내면 발그스름한 검정빛 간장이 남는다. 간장을 많이 빼면 노란빛이 나고, 덜 빼면 검붉은 색이 된다. 부인 장씨는 “요즘 사람들은 노란 황금빛 된장을 좋아하지만, 맛이나 영양은 아무래도 간장을 덜 뺀 된장이 좋다”고 귀띔한다.

된장은 묵힐수록 좋다. 하지만 그만큼 팔수 있는 양은 줄어든다. 춘희된장은 주로 3년산이다. 이미 만들어놓은 된장이 팔리지 않다 보니까 3년 단위로 사이클이 형성됐다고 한다. 3년 된 된장은 다소 딱딱해지기 때문에 따로 담아뒀던 간장을 부어서 촉촉하게 만들어 판다.

뱃속이 편안하고 개운한 ‘약된장’

춘희된장은 어릴 적 친구네 시골집에 놀러 가면 친구 할머니가 끓여주시던 구수하면서도 달작 지근한 그 맛이 난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개량된장에서는 느낄 수 없는 깊이가 있다. 남편 김씨는 “유기농 농산물은 자연적으로 달고 고소한 맛이 있어요. 제초제를 써서 재배하면 이런 맛이 싹 사라져요. 농약은 그 맛을 없애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좋지 않죠. 우리 된장은 손맛에 더해 이 달고 고소한 맛이 살아있지요.”

서울에서 몇 년 전 이사 왔다는 이웃 주민 윤 모(45) 씨의 평가를 들어보자.

“춘희된장은 뭐랄까 다른 된장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아주 ‘똑똑한 맛’이 있어요. 우리의 입맛에 맞춰진 개량된 맛이 아니고요. 실제로 먹고 나면 뱃속이 편안하고 개운함이 느껴져요.”

홍천군 서석면 청량리 제조장에는 유기농 된장이 담긴 항아리들이 줄지어 놓여있다.

이쯤 되면 그냥 된장이 아니라 ‘약된장’이다.

이렇듯 유기농 인증을 받은 춘희된장 맛이 한때 널리 알려지면서 국내 유명 백화점에서 구매 차 방문하기도 했지만, 대량 생산이 안 돼 판매로 연결되지는 못했다. 지난 2009년 10월에는 강원도가 개최한 ‘강원전통장류 품평회’에서 된장부문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당시 3년산 된장이 다 팔려 어쩔 수 없이 그 해 만들어진 된장을 출품해 거둔 성적이다.

독실한 기독교인, 깊숙한 맛은 신앙의 힘?

춘희된장과 함께 판매하는 춘희약과 역시 먹고 나도 속이 더부룩하지 않고 편안하다. 입과 혀를 끄는 맛이 아니라 뱃속이 편안한 맛, 그게 바로 춘희된장, 춘희약과의 진정한 맛이다.

이러한 깊숙한 맛은 이 부부의 신실한 신앙적 삶에서 우러나오는 듯싶다. 독실한 기독교신자인 노부부는 두 아들을 목사와 사회복지사로 길러냈다. 이런 신실함은 된장을 만들 때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항상 기도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된장을 빚지요. 사람들의 건강을 지켜주는데 사실 된장만한 게 어디 있나요?”

그런데 이 노부부에게 요즘 걱정이 생겼다. 인터넷을 다룰 줄 몰라 아예 온라인 판매는 하지 않고 대신 직접 차에 싣고 도시로 나가 직거래장터 등에서 판매해왔는데 올 들어 매출이 부쩍 줄어서다.

“예전에 비해 매출이 크게 줄어 걱정이 많네요. 이젠 둘 다 몸도 예전 같지 않아서 2,3일 가량 도시에 나가 팔고 집에 돌아오면 아주 기진맥진해요. 워낙 원재료인 유기농 콩 값이 비싼 데다 차량 기름 값 등 부대비용도 많이 들어서 가격을 내리기도 어렵고…”

실제로 유기농 콩은 그 수확량이 일반 콩의 절반에도 못 미치기 때문에 가격부담이 만만찮다. 

춘희된장과 춘희약과.

단순하고 경건한 삶 자체가 된장맛

이 노부부의 소망은 아주 소박하다. 신실한 신앙생활을 이어가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된장을 팔아 건강을 선물하고자 한다. 부인 장 씨는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있다. 정식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다.

“결혼식을 올리기로 정한 날을 며칠 앞두고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셔서 결혼식을 하는 둥 마는 둥 약식으로 치르고 바로 상주가 됐어요. 이제껏 살면서 화장 한번 제대로 못해봤어요. 그래서 내년 남편 칠순잔치 때 드레스와 양복 등 예복을 차려입고 정식 결혼식을 올릴까 생각중이에요.”

온화한 성품의 남편 김 씨는 무려 형제가 10명이나 된다. 이들 모두 현재 생존해있다. 김 씨의 말대로 “하나님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순박한 심성과 소박한 소망을 지닌 이 노부부의 삶터는 옛 맛을 지켜가는 그들의 작은 영혼의 곳간이다. 이 노부부의 단순하고 경건한 삶 자체가 정겨운 고향의 구수한 된장 맛 그 자체가 아닐까?

■춘희된장을 만나려면= 강원도 홍천에서도 산골인 서석면 청량리로 굽이굽이 산길을 돌고 돌아 찾아와야 한다. 하지만 도로에 이정표도 간판도 없는 지라 여간 어렵지 않다. 오가는 길에 들려본다 하더라도 결국 전화를 하는 수밖에 없다. 만들어 파는 건강식품에는 된장에 더해 약과도 있다. 또 유기농 된장을 생산하면 당연히 나오는 간장은 양이 적은 관계로 유기농 인증을 받지 않고 그냥 일반간장으로 판매하고 있다. 춘희된장은 1㎏에 2만원, 약과는 20개 한 세트에 1만원이다.

문의는 (033)433-2336, 010-6226-5389

(헤럴드경제 객원기자,전원&토지 칼럼리스트,cafe.naver.com/rm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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