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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꿈을 찾는 미친 놈’ 그는 나다
다시 막오른 뮤지컬 ‘맨오브라만차’…400년이 지나도 바래지 않은, 희망·도전에 관한 찬가
돈키호테가 뒤집어 쓴 면도대야
그것은 맘브리노의 황금투구
마굿간의 작부 알돈자는
아름다운 聖女 둘시네아…
모두가 비웃고 조롱하지만
그는 정의와 사랑을 위해 싸운다

세상에서 가장 미친 짓은
현실에 안주하고 포기하는 것
이상을 버리지 않는 세르반테스
그는 바로
우리시대의 멘토, 돈키호테다


‘그 꿈 이룰 수 없어도/싸움 이길 수 없어도/슬픔 견딜 수 없다 해도/길은 험하고 험해도’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사랑을 믿고 따르리라/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힘껏 팔을 뻗으리라’

라만차의 기사 돈키호테, 그가 마지막 순간을 맞을 때까지 원하던 건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과연 그는 원하는 걸 얻고 마지막 순간을 맞았을까. 풍차에 돌진하면서도, 집시들에게 돈을 빼앗기면서도 다른 사람들은 그를 비웃고 조롱하지만 그는 어느 한순간도 진지하지 않은 때가 없었다. 갖은 고난과 고초 속에서도 정의와 사랑을 위해 싸우겠다며 노래하는 돈키호테. 일견 보는 이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은 그를 광인으로 취급하지만 그를 그렇게만 보는 것은 일차원적이다.

400년 동안이나 우리에게 ‘돈키호테는 정말 미쳤나’란 물음을 던져줬던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는 영화, 연극,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로 만들어지며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과 교훈을 주고 있다.

지난달 22일부터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 막을 올리며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는 뮤지컬 ‘맨오브라만차’는 소설 ‘돈키호테’가 주는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하면서도 문학작품과는 조금 다른 구성으로 그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뮤지컬 속 세르반테스와 현실의 작가 세르반테스= 극작가 데일 와서맨(Dale Wasserman)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진 뮤지컬 ‘맨오브라만차’에선 감옥에 갇힌 세르반테스가 죄수들에게 돈키호테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보여주는 형식으로 극을 진행해 간다. ‘돈키호테와 세르반테스가 같은 인물이었을까’라는 호기심 어린 질문으로 시작한 ‘맨오브라만차’는 끝내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는 형제’라는 결론으로 막을 내린다.

작품 속 주인공은 흔히 작가의 화신으로 여겨진다. 세르반테스의 문학작품 ‘돈키호테’ 역시 뮤지컬 ‘맨오브라만차’와 같이 작가와 동일시되기도 한다.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를 완역하고 지난해 스페인 정부 최고 훈장인 ‘카를로스 3세 십자훈장’을 받은 박철 한국외국어대 총장은 “진실한 작품은 작가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세르반테스 화신이 돈키호테라는 것에 대해 동감한다”고 했다.

실제 세르반테스는 뮤지컬과 마찬가지로 감옥에 투옥됐었다. 하지만 뮤지컬과 달리 이단으로 몰려 종교재판을 받기 위해 감옥에 간 것이 아니라 세무관으로 살며 돈문제로 감옥에 들어갔다.

‘맨오브라만차’의 세르반테스는 감옥에서 죄수들로부터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돈키호테’를 이야기한다. 반면 세르반테스의 문학작품 ‘돈키호테’엔 당시 사회에 대한 불만과 개탄의 목소리가 담겨있다. 그는 돈키호테를 통해 절대왕조와 세습되는 계급사회, 종교의 자유, 출판의 자유가 억압된 시대에 대한 도전정신과 불만의 목소리를 내뱉었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세르반테스가 극 중 돈키호테를 통해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동일하다. 꿈을 잃지 말라는 것,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겨내라는 것. 돈키호테는 우리 시대의 멘토, 닮고 싶은 사람이다.

뮤지컬‘ 맨오브라만차’의 한 장면.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를 극중극 형식의 뮤지컬로 옮긴 ‘맨오브라만차’는 규모 있는 무대장치와 웅장한 음악으로 감동을 전한다.                                                                          [사진제공=오디뮤지컬컴퍼니]

▶세르반테스가 그린 작품 속 인물들= ‘맨오브라만차’는 소설의 여러 부분들을 적절히 이용해 새롭게 각색했다. 종교가 사회를 지배한 16, 17세기 스페인. 종교재판을 피하기 위해 세르반테스가 문학작품 속 돈키호테를 미친 사람으로 희화화해 묘사했다면 ‘맨오브라만차’의 돈키호테는 감옥 속 죄수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한 주인공이 됐다.

‘맨오브라만차’에서 돈키호테는 문학작품과 달리 다른 방법으로 최후를 맞는다. 산손 카라스코가 거울의 기사로 등장, 환상 속에 사는 돈키호테에게 있는 그대로의 그의 모습을 보여준다. 돈키호테는 자신의 이상적 세계관이 무너지며 그 충격으로 자리에 몸져눕게 되고 끝내는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실제 돈키호테는 카라스코의 칼에 맞아 부상을 입고 뮤지컬에 등장하는 거울의 기사는 ‘돈키호테’ 2편에 나온다.

돈키호테와 그 곁을 따르는 산초는 우리 인간의 이중성을 드러내는 캐릭터다. 문학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맨오브라만차’에서도 돈키호테의 이상주의와 산초의 현실주의는 항상 부딪히는데 관객들은 “정신 좀 차리세요”라는 산초와, 엉뚱한 행동을 보이는 돈키호테의 모습을 보며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이런 산초가 돈키호테를 따르는 가장 큰 이유는 물질적 보상 때문이다. 문학에선 물질주의의 표상으로 묘사되지만 ‘맨오브라만차’의 산초는 “왜 따라다녀요?”라고 묻는 둘시네아에게 “그냥 좋으니까”라고 노래하며 돈키호테를 칭송한다.

돈키호테는 이런 산초를 친구 혹은 형제로 부르는데 기사와 시종의 관계지만 신분이 높은 돈키호테가 산초를 이같이 부르는 것은 소설과 뮤지컬 모두 작품 안에 평등사상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박철 총장은 문학작품에선 실체가 없는 이상형의 인물인 둘시네아를 실체가 있는 여인으로 묘사한 것, 신부ㆍ카라스코ㆍ안토니아ㆍ하녀가 체스의 말처럼 묘사된 부분 등은 문학에선 볼 수 없는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가미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돈키호테는 광인(狂人)이 아니라 꿈을 찾는 우리 자신= 문학 ‘돈키호테’가 시대상을 풍자하는 의미가 강했다면 뮤지컬 ‘맨오브라만차’는 풍자적인 요소보단 교훈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성격이 더 강하다.

박철 총장은 400년이 지난 작품이 영화, 연극, 오페라, 뮤지컬로 각색되며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는 비결에 대해 “칠전팔기의 불굴의 정신, 자신의 이상을 포기하지 않고 인간이 갖는 희망과 꿈, 내일을 꿈 꿀 수 있는 도전정신 등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상을 버리지 않는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이고 그런 모습을 보며 감정이입하는 관객도 돈키호테”라며 400년 전의 모습과 지금 우리의 모습은 비슷하다고 했다.

‘맨오브라만차’의 프로듀서 신춘수 오디뮤지컬컴퍼니 대표는 “우린 모두 태어날 때부터 돈키호테였을 것”이라며 우리 스스로와 돈키호테를 동일시했다. 우리 모두는 어릴 적 이룰 수 없는 원대한 꿈을 꾼다. 대통령, 위대한 정복자, 과학자 등등… 하지만 현실에 안주하며 꿈을 포기하고 실패를 두려워한다. 신춘수 대표는 ‘세상에서 가장 미친 짓은 현실에 안주하고 포기하는 것’이란 대사를 인용하며 극을 통해 잃어버린 꿈을 찾자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고 했다.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와 형제’라는 황당한 가정은 결국 ‘돈키호테는 우리 자신’이란 결론에까지 이르렀다. ‘맨오브라만차’의 돈키호테는 현실과 맞닥뜨리며 좌절하고 죽음을 맞는다. 꿈을 잃은 자는 죽은 자다. 하지만 돈키호테는 둘시네아에게, 감옥 속의 세르반테스는 죄수들 모두에게 새로운 희망과 꿈을 갖게 해주며 한 사람은 죽음으로, 한 사람은 종교재판으로 사라졌다. 관객 또한 ‘맨오브라만차’의 두 사람을 보며 새로운 자신만의 꿈을 갖게 된다. 이것이 ‘맨오브라만차’가 관객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다.

문영규 기자/ygmo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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