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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품백에 입혀진 쿠사마의 폴카도트 "근데 루이비통은 어디 간거지?"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아티스트 쿠사마 야요이(83.草間彌生)가 루이비통(Louis Vuitton)을 점령했다. 도심 곳곳에 내걸린 루이비통의 광고비주얼에는 쿠사마의 붉은 색 폴카 도트(polka dot, 물방울 무늬)를 차용한 루이비통의 선홍빛 하이힐과 손지갑 등이 빛을 발하고 있다.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루이비통의 한국 내 간판매장인 플래그십 스토어 윈도우에도 쿠사마의 화려무쌍한 꽃 조각들이 폭염 속에서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큼직한 쿠사마의 꽃들과 폴카 도트는 화려하고 강렬하다. 바야흐로 루이비통은 쿠사마와의 콜라보레이션을 기점으로 또다시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좀 심하게 말하면 ‘루이비통은 간데 없고, 쿠사마 야요이만 도드라진다’고 할 정도로 쿠사마의 폴카 도트는 명품브랜드를 완전히 휘어잡았다. 물론 이번 쿠사마와의 콜라보레이션 역시 루이비통의 아트 디렉터인 마크 제이콥스(49)와 그의 팀이 모든 걸 진두지휘했겠지만 과거 스테판 스프라우즈, 무라카미 다카시, 리차드 프린스 때와는 달리 아티스트(쿠사마)의 강렬하고 전복적인 이미지가 그 어느 때보다 두드러진 것만은 사실이다. 루이비통은 일단 1막(여름용 컬렉션)이 시작됐을 뿐이며, 본격적인 콜라보레이션 컬렉션은 곧이어 전개된다고 밝히고 있다. 



15년째 루이비통을 이끄는 천재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는 ‘폴카 도트의 여왕’이자 남다른 조형세계를 구축한 광기의 작가 쿠사마 야요이를 루이비통(Louis Vuitton)의 새로운 협력 아티스트로 모시기(?) 위해 2006년부터 꾸준히 공을 들여왔다. 마크 제이콥스는 바쁜 시간을 쪼개 일본으로 날아가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올초 계약사실을 발표(헤럴드생생뉴스 1월31일 보도 참조)했고, 6월말부터 전세계 매장에서 쿠사마 야요이 컬렉션을 대대적으로 선보이기 시작했다.

이에따라 쿠사마 야요이의 트레이드 마크로 꼽히는 폴카 도트와 호박 그림, 무한증식하는 패턴은 루이비통의 제품 디자인에 고스란히 차용되고 있다. 각종 가방과 의상, 액세서리, 그리고 윈도우 디스플레이에 쿠사마 야요이의 이미지들이 광범위하게 쓰이기 시작했다. 



일각에선 “쿠사마가 루이비통을 삼켰다”고 할 정도로 쿠사마 야요이의 강렬한 붉은 색 물방울 무늬와 죽순처럼 뻗어가는 패턴은 명품부틱의 안팎을 장식했다. 그 것은 너무나 강렬하고 도발적이어서 ‘루이비통은 대체 어디 간 거냐’는 지적도 일부 제기되고 있다.

158년 역사의 프랑스의 명품 패션브랜드 루이비통은 그러면 왜 이렇게 아티스트와 손잡길 열망하고 있을까? 그 이유는 아티스트와의 협업으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루이비통은 마크 제이콥스가 수석 디자이너로 부임한 이래 스테판 스프라우즈(2001년), 무라카미 다카시(2002년), 리차드 프린스(2007년) 등등 세계적인 아티스트와의 협업(콜라보레이션)을 통해 디자인의 혁신과 변화를 추구해왔다.

또 루이비통의 각종 패션상품을 단순히 상품이 아닌, 그 이상의 것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도 예술적 아우라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마크 제이콥스는 “루이비통의 모노그램과 쿠사마 야요이의 물방울 무늬(polka dot)의 공통점은 둘 다 끝이 없이 변주된다는 것, 영원하다는 것”이라며 그 공통점 때문에 쿠사마와 손잡았음을 밝힌바 있다. 20대 중반 작가로 데뷔한 이래 쿠사마 야요이는 60년간 회화, 조각, 퍼포먼스 등의 예술활동을 펼치며 ‘무한증식’, ‘영원(Infinity)’ 등의 테마를 추구했는데 바로 이같은 요소가 루이비통의 각종 패션아이템에 곧바로 적용되며 무한증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테면 쿠사마의 황금빛 호박 조각은 곡선이 도드라진 열쇠고리와 반지, 구두에 그대로 투영됐고, 톡톡 튀는 그의 팝아트인 물방울 회화는 빨간 원피스와 핸드백, 둥근 지갑 등으로 변신했다. 그림과 디자인이 싱크로율 100%라 할 정도로 직설적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 이는 쿠사마의 작업이 디자인으로 언제든 차용될 수 있을 정도로 유머와 반복성, 조형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스물아홉의 나이인 1958년, 보수적인 일본 미술계를 떠나 뉴욕으로 건너간 쿠사마는 특유의 광기(실제로 그는 어린시절부터 편집적 강박증에 시달렸다)를 바탕으로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펼쳤다.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 올라가 ‘언젠가 나는 이 도시를 지배할 예술가가 될 것’이라며 어찌보면 황당무계한 포부를 내질렀던 무명의 아티스트는 마침내 일본의 현대미술가 중 가장 유명한 작가의 하나로 등극했다. 오늘날 그의 예술은 전세계 미술관들이 앞다퉈 전시하길 원하고, 많은 수집가들이 그의 회화와 조각에 주목하고 있다. 아울러 전세계 명품족들의 손에, 자신의 디자인 아이템을 들리게 하기에 이르렀다. 



루이비통은 지난 6월 막을 내린 런던 테이트 모던에서의 ‘쿠사마 회고전’을 후원한데 이어, 뉴욕 휘트니미술관으로 순회된 이 전시를 계속 후원 중이다. 또 아티스트와 손잡고 그의 예술세계를 제품 디자인에 적용함으로써, 지루하게 고여있는 브랜드가 아니라 혁신과 변화를 추구하는 브랜드임을 다시한번 보여주고 있다. 이같은 측면에선 일단 ‘윈-윈’ 중인 셈이다.

이제 초기인만큼 루이비통의 쿠사마 야요이와의 콜라보레이션을 성급하게 예단하는 것은 금물이다. 일부 고객들은 ‘너무 번쩍거리고 가벼워 명품의 격조를 잃었다’고 하지만 여름 시즌에 맞춰 경쾌하고 가벼운 아이템이 가장 먼저 선보여진 것일 수 있다. 과거 무라카미 다카시의 ‘모노그램 멀티컬러’ 때처럼 고객들이 루이비통의 콜라보레이션 아이템들에 열띤 반응을 보여줄지는 좀더 시간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 



‘다소 미지근하고 어정쩡했다’고 평가되는 미국의 미술 거장 리차드 프린스와의 콜라보레이션 작업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루이비통은 루이비통만의 아우라를 효과적으로 살려가며, 그 굳건한 바탕 위에 아티스트와의 콜라보레이션을 전개해야 할 필요가 있다. 파격과 변화도 좋지만 주객이 뒤바뀌는 건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전세계 고객들이 지갑을 열고, 새로운 아이템들을 앞다퉈 사들일 때에만 이 동반적 관계는 롱런할 것이다.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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