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부터 혜원까지, 천재화인열전’이란 제목으로 오는 9월 25일까지 열리는 전시에는 조선문화사에서 가장 찬란했던 황금기로 꼽히는 조선 후기에 제작된 그림과 글씨가 한데 모였다. 조선 후기는 우리의 산하를 독자적으로 그려낸 진경산수와 섬세한 묘사가 돋보이는 영모화, 신선그림인 도석인물, 문인들의 격조 높은 시서까지 다양면에 걸쳐 높은 예술적 수준을 보였던 시기다.
이에 전시는 ‘관(觀) 경(景) 속(俗) 도(道)’등 네 파트로 관념산수화, 진경산수화, 풍속화, 문인화가 두루 나왔다. 석봉 한호, 공재 윤두서,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등 우리에게 낯익은 작가는 물론 호생관 최북, 표암 강세황, 화재 변상벽 등 조선후기를 풍미했던 29명 작가의 작품 44점이 내걸린 것.
중국의 산수화와는 달리 한국적 산수, 우리 눈 앞에 펼쳐진 산수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며 ‘진경산수’ 시대를 활짝 열어젖힌 겸재 정선(1676~1759)의 작품은 금강산을 그린 ‘단발령도(斷髮嶺圖)’와 ‘백악부아암도’(白岳負兒岩圖) 등이 나왔다. 우리 산천의 골산은 필선으로, 토산은 먹의 번짐으로 표현하며 조선 회화의 어엿함과 긍지를 유감없이 드러낸 그림들이다.
금강산을 여러 번 답사하고, ‘구룡폭포에 뛰어들어 죽겠다’는 일화까지 남겼던 호생관 최북(1712~1786?)의 금강산 그림도 주목할만한 작품이다. 그토록 금강산을 예찬했으나 정작 최북의 금강산 그림은 몇점 전해지지 않는데 이번 전시에 나온 ‘혈성루망금강도(歇惺樓望金剛圖)’는 백분을 칠한 흰 바위산과 먹을 듬뿍 쓴 흙산이 대비를 이룬 것이 겸재의 영향을 엿보게 한다.
겸재와는 반대로 중국의 남종화풍을 계승 발전시켰던 현재 심사정(1707~1769)의 산수화 ‘방예운림산수도(倣倪雲林山水圖)’도 놓쳐선 안될 그림이다. 고졸하면서도 은은한 기품이 멋드러지게 감도는 수작이다. 또 표암 강세황의 ‘금강산 비홍교도(金剛山 飛虹橋圖)’ 역시 겸재의 그림과 궤를 달리 한다. 겸재의 진한 먹 사용을 탐탁치않아 했던 표암은 멀리 바위산을 푸른 색으로 처리하며 남종화풍을 여유롭게 잇고 있다.
도화서 화원으로 남다른 역량을 선보였던 단원 김홍도(1745~?)의 ‘임수간운도(臨水看雲圖)’와 혜원 신윤복(1758~?)의 ‘수조도(樹鳥圖)’도 만날 수 있다. 또 단원과 함께 서직수 초상을 함께 그린 ‘조선 초상화의 귀재’ 화산관 이명기(?~?)의 ‘산수인물도(山水人物圖)’는 세명의 선비들이 입은 중국식 의복과 인물 표정,소나무의 표현 등이 단원과 연장선상에 있다.
김석신(1758~?)의 그림 ‘고승한담도(高僧閑談圖)’에서도 단원의 화풍이 엿보인다. 김홍도와 도화서에서 한솥밥을 먹던 김응환의 양자였던 김석신의 이 그림은 바깥에서부터 짧게 사선으로 치고 들어가는 나뭇가지와 산의 흙 주름에 덧대 입체감을 나타내는 기법, 선비의 뒷모습이 영락없는 단원 유파이다.
윤철규 한국미술정보개발원 대표는 “조선 후기 그림은 크게 정선 화풍, 중국 화풍, 김홍도 화풍, 추사가 지향했던 고도의 문인화풍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번 전시는 그 중 겸재 정선이 창안한 금강산 그림과 그 유파, ‘그림으로 시(詩)를 썼다’ 할만한 김홍도 유파 등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다”며 “한국 회화를 요령껏 설명하는 전시가 드문 상황에서 반가운 전시”라고 평했다.
한편 서예작품도 여럿 나왔다. 다산 정약용, 석봉 한호(1543~1605), 미수 허목(1595~1682), 추사 김정희(1786~1856)의 글씨도 음미할 수 있다. 미술관측은 일반인들이 옛 그림을 좀 더 재밌게 즐길 수 있도록 현대의 미감을 살린 새로운 설치방식을 시도했다. 무료관람. (02)3457-1655 사진제공=포스코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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