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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병기 선임기자의 대중문화비평> 위로 받고, 위로 하자는 ‘힐링’…웃음이 지나치다
SNS 등 소통 도구 발전했지만
진정한 마음 나누는 대화 부족

‘안녕하세요’ 등 힐링 프로그램
시청자들과 고민 공유 큰 인기

치유 효과 나타나기도 하지만
선정적 전개로 ‘쇼’ 전락 우려


요즘 방송가 최고의 소재는 ‘힐링(healing)’이다. 장르를 망라하고 힐링을 표방한 프로그램들이 생겨나고 있다. 몸과 마음을 치유한다는 힐링은 이미 오래전 출판계에서 나왔다. 종교, 명상, 요가, 참선, 기공과 같은 분야에서 힐링에 관한 출판물들이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안내서 형태로 꾸준히 출간됐다.

하지만 방송계에서 힐링 프로그램이란 몸과 마음을 편히 내려놓은 분위기에서 진솔한 토크를 통해 마음의 평안을 지향하는 프로그램이다. 형식은 비교적 다양하다. 질문과 대답이라는 가장 일반적인 토크쇼의 형식을 취하는 ‘힐링캠프’, 가족 갈등을 겪는 사람을 초대해 전문가와 일반인에게 어떤 삶을 택하는 게 도움이 되는지를 알아보는 ‘아침마당’ 수요가족탐구 등 다양하다. 실화에 바탕을 둔, 부부ㆍ고부 간 갈등을 다루는 단막극을 보여준 후 성의학 상담사, 변호사, 정신과 전문의로 구성된 솔루션 위원회에서 해결책을 제시하는 ‘부부클리닉-사랑과 전쟁’도 오래된 힐링 프로그램이다.

솔루션을 구하기보다 고민을 공개적으로 털어놓는 데 방점이 찍혀 있는 ‘안녕하세요’, 일정 기간 전문가에게 클리닉과 멘토링을 받는 ‘달라졌어요’ 시리즈, 강연 형태를 취하는 ‘이야기쇼 두드림’ ‘강연 100도씨’ 등도 힐링을 다룬다. 이를 통해 게스트도 치유받고 시청자들도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인터넷, 모바일, SNS 등 소통도구는 급속히 발전했지만 소통이 잘되고 있지는 않다. 어떤 의미에서는 소통과다다. 소통의 양보다 질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힐링 프로그램은 주로 소통을 강화하는 형태를 띤다.
 
방송에서의 힐링 프로그램들이 당사자 간의 문제점만 부각돼 단순한 흥밋미거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사진은‘ 안녕하세요’의 한장면.

감동과 위안이 있는 힐링 프로그램들이 큰 인기라는 사실은 그만큼 힘들고 피로한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다. 인간들은 함께 부대끼면서 오해와 질투, 선망, 이런 것들로 인해 서로들 힘들어한다. 학교에서는 따돌림, 직장에서는 시기와 음해, 인터넷 환경에서는 악플 등으로 우울증이 늘어난다. 그럴수록 우리는 소통을 갈구한다. 세상에서 고립됐다는 느낌이 드는 사람이 많으면 사회는 불행해진다. 하지만 방송에서의 힐링 프로그램들이 힐링은 되지 않고 당사자 간의 문제점만 부각돼 선정적이고 자극적으로 흘러가며 문제를 단순한 흥밋미거로 만드는 경향도 있다. ‘힐링’이 아니라 ‘쇼잉’이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사랑과 전쟁’에 소개되는 부부 갈등의 에피소드를 보면서 “저런 부부도 있구나. 나 정도는 참고 살아야 되겠다”며 자기위안을 삼을 때도 있다. 이건 분명 긍정적인 효용 가치다. 특히 ‘사랑과 전쟁’은 시즌2로 접어들면서 변화된 시대상도 적절히 반영하고 있다. 요즘은 재산문제, 금전갈등이 많고 장모와 사위 갈등도 자주 보여준다. 하지만 간혹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막장적 에피소드가 나와 불편할 때도 있다.

2년간 엄마와 대화를 단절한 채 살아가는 종구 군이 ‘안녕하세요’에서 사연을 털어놓아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누나의 못된 손’이라는 제목으로 누나가 고3 남동생의 주요 부위까지 만진다고 해 시청자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런 장면이 방송으로 나가면 나타날 파급효과를 생각해야 한다. 더구나 고민을 상담하는 당사자들의 얼굴을 모두 공개하는 무리수를 범했다.

힐링을 표방하는 프로그램들은 고민을 털어놓고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치유가 될 수 있다. 매번 전문가가 “이렇게 하십시오”라고 하는 게 효율성이 있는 것 같지만 같이 대화하는 것으로도 치유효과가 높기 때문에 대화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도 필요하다. 대화를 잘한다는 건 매우 어려운 기술이다.

고려대 사회학과 황명진 교수는 “힐링은 사회의 문제를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로 고착화시키는 오류를 범할 우려가 있다. 특히 방송매체의 특성상 문제를 보다 극적으로 부각시키거나 출연자의 목소리가 아닌 사회자의 주도로 대화나 프로그램이 전개되어갈 우려가 있다”면서 “가정폭력이나 가족간의 인권유린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흔히 일어날 수 있는 문제를 크게 문제시하는 ‘몰아가기’식 전개가 간간이 보인다. 노출기법으로 이야기를 풀어놓더라도 수습, 치료와 방법에 입각해서 정교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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