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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직드라마의 시행착오 요소 ‘멜로’…골든타임 · 추적자 · 유령 등 치열한 스토리 전개속 한국형 모범답안은…
미국과 일본에서 시작된 전문직드라마가 한국에서도 이미 정착됐다. ‘추적자’ ‘유령’ ‘골든타임’ 등 최근 방송되고 있는 장르 드라마들은 호평을 받고 있다. 별 내용 없는 멜로드라마보다 사건을 파고드는 경찰과 검사 이야기, 삶과 죽음이 오가는 의료현장을 맞닥뜨리는 의사들의 이야기가 훨씬 더 많은 설득력을 제공했다.

장르 드라마에서는 인기가 높은 스타 배우들을 섭외하기보다는 지명도는 떨어져도 연기로 승부하며 역할에 어울리는 조연급 연기자가 더 큰 빛을 발휘하기도 한다. 이들에게는 ‘주잡조’(주연 잡는 조연)라는 별칭도 생겨났다.

한국형 전문직 드라마에서 시행착오를 겪은 것 중 가장 대표적인 문제는 ‘멜로 가미’ 여부였다. 멜로와 일을 어떤 비중으로 배합하느냐의 문제였다. 이건 매우 중요한 과제였다. 장르 전문직 드라마에 어설프게 멜로가 들어가면 진짜 ‘병맛’이었다. 멜로를 조금 과하게 집어넣으면 병원(또는 경찰서)에서 연애하는 드라마가 돼버렸다. 그렇다고 멜로를 안 집어넣는 것도 뭔가 허전했다. 멜로를 가미하되 적절히, 그리고 이야기의 흐름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는 게 관건이었다.

전문직 드라마는 현장이 치밀하고 바쁘게 돌아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연애 장면이 나오면 이야기의 흐름이 뚝하고 끊어지는 경우가 많다. ‘유령’에서 온라인과 달리 오프라인 세계에서는 멀쩡한 CEO로 행세하는 사이코패스를 잡기 위해 급격히 움직여야 하는데, 소지섭과 이연희의 한가한 연애장면을 보여줄 수가 없었다.

 
▲한국형 장르드라마에서 대표적인 문제는 ‘멜로’다. 러브라인을 가미하되 적절히, 전문직 수행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여야 시청자에게 자연스럽게 각인되기 때문이다. 사진은 MBC 월화드라마 ‘골든타임’.

전문직 드라마가 방송된 초기에는 멜로 부분이 적지 않았다. ‘하얀거탑’(2007년)은 일본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어, 멜로 없는 전문직 드라마가 가능했다. 하지만 ‘외과의사 봉달희’(2007년)는 이범수와 이요원, ‘뉴하트’(2008년)는 지성과 김민정 간의 멜로가 적지 않았다. 그러고도 두 드라마는 성공했다.

하지만 이 같은 신파성 ‘의드’(의학드라마)는 유효기간이 지나갔다. 이제 장르 드라마는 멜로 분량이 많아지면 전문직 드라마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기 힘들게 됐다. 시청자들이 이야기의 깊이와 이야기가 풀려나가는 전개방식에 더 집중하게 됐기 때문이다. 미스터리 수사물 ‘유령’은 집중하지 않고 보다가는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기도 힘들었지만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최근 전문직 드라마에서 멜로는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멜로분량은 극도로 적다. 그러고도 멜로효과는 적지 않게 발휘한다. 이의 모법답안은 최근 범죄수사물인 ‘추적자’가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드라마에서 멜로의 분량은 극히 적지만, 비중이나 강도와 무관하게 멜로가 매력적이었다.

드라마 평론가 신주진은 “‘추적자’에는 세 가지 멜로라인을 볼 수 있었다. 서지수(김성령)와 강동윤(김상중), 신혜라(장신영)의 삼각관계, 최정우 검사(류승수)와 서지원 기자(고준희)의 멜로, 조형사(박효주)와 박용식(조재윤)의 사랑이다”면서 “각각 멜로라인은 그 자체로도 흥미진진하지만, 이것이 단지 드라마의 딱딱함이나 지루함을 달래줄 양념이나 당의정으로 덧씌워진 게 아니라 인물들의 성격과 가치관을 드러내주고, 무엇보다 갈등의 지점들을 명확히 보여주며, 갈등과 대립의 축을 옮겨놓기도 한다. 그러면서 이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백홍석(손현주)과 강동윤의 마지막 대결을 향해 모아지기도 한다”고 ‘추적자’의 멜로를 해석했다.

의학드라마이자 사회고발드라마인 MBC 월화극 ‘골든타임’에서도 멜로가 있기는 하다. 시청자들도 이민우(이선균)와 강재인(황정음), 최인혁(이성민)과 신은아(송선미)의 멜로를 각각 지지해주고 있다. 이 말의 의미를 오해하면 안된다. 무조건 멜로 분량을 늘려달라는 말이 아니다. 전문직 수행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멜로여야 하고 캐릭터와 캐릭터의 관계가 시청자의 공감을 살 정도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야 한다.

아직 이선균과 황정음은 본격적으로 멜로가 나오지 않고 있다. 사람 이름을 붙여주지 않는 ‘인턴’이 어설프게 병원에서 연애하다가는 멜로도 망치고 일도 망칠 수 있다.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이성민과 송선미의 무뚝뚝한 멜로는 정말 그럴 듯하다. 투박한 경상도 말로 툭툭 던지고 틱틱거리지만, 표현을 잘 못할 뿐이지 정감이 있고 진심과 배려가 배어있기에 설렘과 기대감이 생긴다. 전문직 드라마의 멜로는 이렇게 진화하고 있다.

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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