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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형석의 상상력 사전> 사랑도 영혼도 사고 파는…‘돈의 시대’ 슬픈 자화상
물질 만능 거대 자본주의 사회
인간도 가격표가 매겨지는 세상

돈은 분노·증오·질투의 근원
영화 ‘피에타’ 멍멍한 충격 전달


“돈이 뭐예요?”

“돈?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이지. 사랑, 명예, 폭력, 분노, 증오, 질투, 복수…ㆍ”(이상 ‘피에타’ 중)

“뱃속에 아 귀들이 사는지 먹어도 먹어도 더 먹으려 해. 찌끄러기 돈으로 부자 되는 것도 아닌데 판사, 검사, 기자, 교수 나부랭이들까지 왜들 그렇게 난리인지….”

“돈에 중독돼서 끊기가 무서웠다. 원없이 펑펑 썼지. 근데 그게 그렇게 모욕적이더라.”(이상 ‘돈의 맛’ 중)

돈이 문제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는 300만원의 빚을 얻어쓰고 순식간에 불은 이자로 3000만원을 갚아야 되는 세상, 그래서 탕감할 능력 없는 이가 팔이나 다리를 보험금과 맞바꿔야 하는 시대의 처절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 ‘강도’는 고리사채업자에게 빌붙어 사는 인생이다. 기한 내에 빚을 갚지 못한 채무자들을 찾아다니며 신체를 훼손해 미리 가입한 보험금을 챙기는 악질적인 깡패다. 비빌 언덕이 없어 인생의 벼랑길에서 악덕 사채업자에게 손을 벌렸던 청계천의 가난한 인생들은 프레스에 걸린 몸처럼 무참히 짓이겨진다. 강도는 돈 대신 살을 베는 현대판 샤일록의 대리인이다. ‘피에타’에서 자본주의 사회는 ‘베니스의 상인’들이 지배하는 ‘지옥’이다. 이 지옥도에는 악취가 진동한다. 김기덕뿐이고 청계천뿐이랴.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은 금융자본의 성지 뉴욕 월스트리트를 지옥도로 묘사한다. 성공하거나 좌절한 욕망의 거대한 쓰레기장이 된 뉴욕의 풍경엔 광기가 어렸고, 호화로운 금융가의 뒷거리에는 악취가 진동했다. 1%를 위해 99%가 빼앗겨야 하는 부조리한 제로 게임의 금융자본주의는 ‘코스모폴리스’에서 막다른 골목으로 묘사된다. 이 영화의 첫 장면에 뜨는 자막은 ‘쥐가 통화의 일부가 됐다’다. 돈에서 살이 썩고, 쥐떼가 모인 냄새가 난다. 

돈이 문제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는 300만원의 빚을 얻어쓰고 순식간에 불은 이자로 3000만원을 갚아야 되는 세상, 그래서 탕감할 능력 는 이가 팔이나 다리를 보험금과 맞바꿔야하는 시대의 처절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대규모 자본을 동원해 거액 몸값의 스타를 동원하고 거대 유통망으로 배급하는 가장 자본주의적인 예술. 영화가 자본주의를 걱정하는 것은 차라리 아이러니컬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위기에 처한 삶과 관계를 걱정하는 거장 감독으로는 다르덴 형제 감독을 빼놓을 수 없다. ‘로제타’에선 한 남자의 도움으로 일자리를 얻은 젊은 여성이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 ‘로르나의 침묵’에선 돈과 취업 때문에 결혼과 국적을 사고 판다. ‘더 차일드’에선 한 소매치기 남자가 돈을 받고 갓난아들을 팔아버린다.

노동력을 매매하는 것을 넘어 몸과 성(性), 영혼과 생명에 값을 매기는 것이야말로 영화가 가장 걱정하는 자본주의적 삶의 본성이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선 한 중학생의 죽음을 두고 가해자들이 ‘500만원이면 되냐’ ‘3000만원은 필요하다”며 설왕설래한다. 어떤 이의 성(性)이나 목숨값을 흥정하는 가격표는 ‘시’가 배제된 세상을 표상한다. 

생명의 바탕이 되는 정자나 난자, 자궁도 자본주의에선 ‘상품’이 된다. 엄연하고 합법적인 거래다. 캐나다 영화 ‘미스터 스타벅’은 정자 기증으로 자신도 모르게 수백명의 ‘생물학적 자식들’을 두게 된 한심하고 기구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코미디이지만, 웃음의 이면은 씁쓸하다. 우리의 ‘88만원세대’와 닮았을까? 젊은 시절에 무일푼이었고 직업마저 얻기가 요원했던 주인공은 하루가 멀다 하고 병원을 찾아 정자를 기증했다. 그리고 20년 후 푼돈이나 벌어볼 요량으로 아무 생각 없이 배출했던 정자는 533명의 아이들이 됐고, 그중 142명이 생물학적인 아버지를 찾겠다고 소송을 냈다. 미국과 유럽에선 실제 사례로도 보도된 이 현상의 뒤에는 거대 의료산업의 일부가 된 불임의학과 정자은행제도가 있다. 


모든 것이 ‘상품’이 되고, 합법이든 불법이든 인간의 몸과 영혼에 ‘가격표’가 매겨지는 이 사회에 구원은 있을까? 김기덕 감독은 자신의 영화창작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동시대 한국 사회의 온도”라고 말했다. 그리고 세계의 많은 감독들은 그 온도를 죽음의 이미지로 형상화한다. 그중에는 자기 파괴의 절망적 결말도 있고, 속죄와 대속의 희생도 있다.

희미하게 남은 온기마저 사라지기 전에 스스로를 구원하소서. 스스로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피에타’의 처절하게 아름다운 마지막 장면은 기도이되, 스스로를 향한 기도가 아닐까?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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