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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일럿과 화가를 꿈꿨던 사내,마침내 그 꿈을 이루다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어린 시절 파일럿과 화가를 꿈꿨던 이 사내. 그러나 그 꿈을 접고,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해 자동차 디자이너로 세계를 누비고 있는 사내. 그 사내가 마침내 어린 시절 소망했던 작가로 데뷔했다. 아티스트로서의 예술적 기량과 작품의 완성도는 좀 더 논의가 필요하지만 그는 낯선 땅 한국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자신만의 개인전을 꾸몄다.

기아차동차의 쏘울, K5, K7,K9, K3 등을 디자인한 피터 슈라이어(Peter Schreyer, 59) 기아자동차 부사장(CDO:최고 디자인책임자). 그가 작가로 데뷔했다. 슈라이어는 기아자동차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작가로 첫 걸음을 내딛는 첫 개인전을 오는 22일부터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갤러리현대 강남(대표 조정열)에서 갖는다. ‘Inside Out’이라는 타이틀로 오는 11월 2일까지 이어지는 전시에 그는 회화, 드로잉, 설치작품 등 총 60여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작품 중에는 전남 담양의 조선시대 정원 소쇄원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설치작업이 포함됐으며 회화, 오브제, 드로잉 등 다양한 장르의 작업이 망라됐다 .


전시 개막에 앞서 19일 낮 기자들과 만난 그는 “정직하게 숨김 없이 나를 보이고 싶다. 자동차 디자이너가 아닌 ‘인간 피터 슈라이어’를 드러내고 싶다. 그리고 나머지는 관객의 자유로운 해석에 맡기겠다”고 했다. 자동차 디자인 부문에서는 세계 정상을 달리고 있지만 순수 아티스트로서는 첫 걸음을 내딛는만큼 모든 걸 내려놓고, 내밀한 부분까지 가감없이 보여주겠다는 것.
이어 “꽤 오래 전부터 그려온 내 그림과 드로잉을 접한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개인전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해와 이렇게 서울서 처음으로 작품전을 열게 됐다. 어제 작품 설치를 마치고 전시장을 둘러봤는데 내 감정과 경험이 녹아든 작품들을 한데 내걸게 돼 무척 감개무량하다”고 했다.

그의 작품에는 ‘속도’를 다룬 그림들이 여럿이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앤틱 비행기를 그린 그림에서부터 조종사가 등장하는 그림, 봅슬레이를 타며 영감을 얻어 제작한 그림과 오브제가 그 것.
슈라이어는 어린 시절부터 그를 살뜰히 챙겨준 조부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화자이자 예술가, 비행기 조종사였던 조부를 따라 그 역시 파일럿을 꿈꿨고, 실제로 1983년부터는 경비행기를 직접 조종했다. 자신과 함께 경비행기를 탔던 절친한 친구(작고)를 그린 대형 인물화도 출품했다. 또 재즈 뮤지션인 마일스 데이비스에게서 영감을 얻어 그린 회화도 내걸었다.

그러나 정작 자동차가 등장하는 그림은 단 한 점 뿐이다. “왜 전공과목인 자동차를 그리진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자동차 디자인은 직업이다. 미술은 일에서 느끼는 스트레스에서 해방되기 위해 하는 건데 자동차를 그린다면 월화수목금토일 내내 일만 하는 게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10대 시절에는 초현실주의, 다다이스트 등을 좋아했고, 지금은 사이 톰블리, 리처드 세라같은 작가의 작업을 좋아한다”는 슈라이어는 “한국 작가 중에서는 서도호와 전광영의 작품을 좋아한다. 그들의 작업은 무척 독창적이다. 어제 저녁에는 서도호가 덕수궁에서 펼치는 덕수궁 프로젝트를 보기 위해 덕수궁을 찾았다. 많은 한국 작가들이 덕수궁에서 인상적인 작업을 펼치고 있더라”고 했다.

사실 슈라이어가 한국서 작품을 선보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2009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 초청돼 조선시대 정원의 원형을 보여주는 담양 소쇄원과 대숲에서 영감을 얻은 ‘레스트(Rest)’라는 설치작업을 시도한바 있다. 이번 전시에도 이 작품이 포함됐다.

평소 ‘감성디자인’을 추구해온 슈라이어는 “디자인의 시작점이자 원천은 순수예술”이라며 “미술, 음악, 건축 등에서 디자인의 영감을 얻곤 한다”고 강조했다.
또 “디자이너로서 성공하게 된 이유 중에는 예술적인 부분과 기술적인 부분을 함께 지니고자 노력한 것도 포함된다”며 “미술은 항상 내 사고 안에 내재되어 그 덕분에 내가 그 어떠한 제한이나 억압 없이 디자인이라는 영역 안에서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6년간 기아차와 일하면서 한국을 수시로 드나들었다는 그는 “최근 경주를 다녀왔는데 왕릉의 곡선은 언제 봐도 아름답고 황홀하다. 한국 도자기의 곡선도 그렇다”며 “(디자인 작업에서)한국의 영향을 피할 수 없고 내게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물론 독일서 나고 자라며 느끼고 경험한 것들이 거기에 곁들여졌을 것이다. 동양과 서양이 내게서 한덩어리가 되며 나온 게 오늘의 내 디자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작품에 적힌 ‘No guts, no glory(배짱이 없으면 영광도 없다)’라는 글귀에 대해 “오래 된 전투기에서 발견한 경구로, 지금의 내게도 매우 중요한 경구다. 일하는데 가장 큰 모험(risk)은 아무런 모험(risk)도 하지 않는다는 거다. 매 순간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해야 남보다 앞서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전시는 11월2일까지. 무료관람. 작품사진 제공=갤러리현대. 02)519-0800

/yrlee@heraldcorp.com, 사진=안훈 기자/rosed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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