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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 창작발레 ‘아름다운 조우’ 27일부터…가야금 명인 황병기 곡을 세 안무가 니콜라 폴 · 박일 · 정혜진이 발레로 형상화
발레의 아름다운 몸짓이 국악의 고아한 선율과 만났다. 올해로 창단 50주년을 맞은 국립발레단은 지난 6월 창작발레 ‘포이즈’에 이어 이번엔 국악과의 접목을 시도한 형식 파괴적인 ‘아름다운 조우’로 발레의 지평을 넓힌다.

‘아름다운 조우’는 세계 무대에 한국의 발레를 알리겠다는 포부로 기획한 작품. 국악을 이용한 창작발레는 최태지 국립발레단장의 야심작이다.

27~28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아름다운 조우’는 가야금 명인 황병기의 곡을 발레에 끌어들여 니콜라 폴, 박일, 정혜진 등 세 안무가가 발레로 형상화한 작품. 한국적 정서를 서양춤의 몸에 어떻게 담아낼지 관심사다.

작품은 서로 다르지만 ‘아름다운 조우’는 황 명인의 음악이 가진 단순한 규칙성, 멜로디와 절제의 미를 관통하며 하나로 어우러진다.

▶파리오페라발레단의 니콜라 폴이 만든 ‘Nobody On The Road(노바디 온 더 로드)’=길 위에 아무도 없다. 어쩌면 많은 사람이 가지 않은 길을 새로운 마음으로 가야 하는 안무가 폴의 마음을 담은 몸짓일지도 모른다. 

폴은 1996년 파리오페라발레단에 입단한 무용수 출신이다. 안무에 두각을 나타내 2001년부터 파리오페라발레단 예술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 공연은 최 단장이 직접 파리에 가 안무를 제안해 성사됐다. 한국 전통음악을 들어본 경험이 없는 그에게 황병기의 음악은 마음을 흔드는 곡이었다. 이번에 그는 ‘Nobody On The Road’에 황병기의 음악 ‘비단길’을 사용한다. 음악이 마음에 와닿지 않으면 안무가 불가능하다고 밝히기도 했던 그는 ‘비단길’에 대해 “엄격한 틀이 있지만 여러 감정을 깊이 있게 표현한다”며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국립발레단 발레마스터가 만드는 김삿갓의 풍류, ‘미친 나비 날아가다’=김삿갓의 운명적인 삶을 담은 ‘미친 나비 날아가다’는 국립발레단 발레마스터 박일 안무가의 작품. 양반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조부의 죽음으로 방랑의 길을 떠나는 김삿갓과 그의 삶을 짤막한 극으로 만들었다.

1장은 과거 시험에서 조부를 조롱해 죄책감을 느끼는 김삿갓과 사람들의 비난, 긴 방랑 생활의 고독과 그의 친구가 되어준 자연의 모습을 표현했다. 2장에선 방랑길의 어려움을 시를 읊으며 재치와 해학으로 극복하는 김삿갓의 모습을 그렸고, 3장은 술을 좋아하는 김삿갓이 기생과 술을 즐기는 모습을, 4장에선 죽음에 이른 김삿갓이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그의 회한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등을 춤으로 담았다.

‘미친 나비 날아가다’에는 황병기의 ‘아이보개’ ‘전설’ ‘차향이제’ 등 3곡이 쓰였다.

박 안무가는 “작품의 주제가 무엇인지 왜 작곡을 했는지 알아보고 곡의 느낌을 최대한 살려보려 했고, 운 좋게 작품과 맞는 부분이 있어서 이 곡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휴가를 가서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어봤다는 그는 곡이 가진 느린 비트와 정확히 끊어지는 가락, 가야금 산조의 미니멀한 느낌을 발레에 맞춰 현대적으로 해석하려 했다. 

27~28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아름다운 조우’는 가야금 명인 황병기의 곡을 발레에 끌어들여 니콜라 폴, 박일, 정혜진 등 세 안무가가 발레로 형상화한 작품. 한국적 정서를 서양춤의 몸에 어떻게 담아낼지 관심사다.                                                                           [사진제공=국립발레단]

그는 “발레는 동작이 정해져 있지만 이건 음악에 맞춰서 내 동작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보다 쉽게 작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 안무가가 작품을 준비하며 인간 김삿갓에 주목한 건 방랑의 시작은 김삿갓의 한(恨)이고 죽음을 맞으면서 자신의 인생을 돌아봤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무대 위엔 김삿갓의 삿갓을 구조물로 크게 형상화할 예정이다. 그는 “죽음은 새로운 탄생 등 여러 의미가 있는 것이고 공중에서 내려오며 김삿갓을 덮는 대형 삿갓은 무덤이란 의미를 갖는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정혜진 감독의 ‘달’, 태평무가 발레와 만났다=이번엔 전통무용이다. 작품 ‘달’의 안무를 맡고 있는 정혜진 서울예술단 예술감독은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이수자다.

여성을 상징하는 달을 주제로 작품을 준비한 정 감독은 빛과 어둠, 기원과 좌절의 대상이었던 달의 양면성, 달을 향한 과거 여성의 감성을 담고자 했다.

정 감독은 황 명인의 ‘밤의 소리’와 ‘침향무’ 두 곡을 작품에 사용했다. 그는 “황 선생님의 음악이 전통악기를 이용하지만 현대적인 느낌이 있다”며 “우리의 정서도 물씬 풍김과 동시에 빠르게 흘러가는 선율 등이 발레 동작과도 어울린다”고 말했다.

정 감독에게 쓰는 근육이 다른 서양의 고전무용 발레와 전통무용을 접목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였다. 이번 작품에선 무용수가 토슈즈를 벗지 않고 무용을 한다.

발레의 원칙을 무시하려 한다는 정 감독은 “상체는 한국무용을, 호흡은 두 장르가 함께하고 하체는 발레를 하는 작품이 될 것”이라며 “한국적인 라인을 잘 살리도록 돕는 스텝을 만들기로 했다”고 밝혔다.

‘달’은 강강술래 등 민속무용의 형식을 끌어들였다. 의상은 한국 전통의상과 현대의상의 경계를 오고 간다. 의상으로 발레 동작과 어울리면서도 한국적인 특징을 살리고자 했다고 정 감독은 밝혔다. 상체의 배래선이나 끝동, 깃 등 전통적인 부분은 잘 살리고 치마는 발레 동작이 잘 보이도록 길이는 짧게 만들었지만 선을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도록 해 가볍게 보이지 않도록 했다.

정 감독은 국립발레단의 이런 콜라보레이션이 꼭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동안 발레가 서양 것이어서 우리만의 색깔이 드러나지 않는 점이 아쉬웠는데 ‘아름다운 조우’를 통해 우리 문화가 전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문영규 기자/ygmo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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