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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에서 만난사람] 이지승 감독 “‘아줌마’로 모성애의 끝 담았다”
‘공정사회’는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 소외당한 이들을 향한 외면, 이로 인해 극한으로 치닫는 모성애를 담아낸 영화다. 잔혹한 스릴러라기에는 드라마다. 가슴 찡한 울림이 있고, 권력과 명예가 없어도 딸을 지키고자 하는 이 시대 어머니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작품을 연출한 이지승 감독은 성폭행한 딸을 둔 어머니인 일명 ‘아줌마’를 통해 이 사회가 얼마나 불공평한지를 세밀하게 표현했다.

이지승 감독은 ‘색즉시공’, ‘낭만자객’, ‘청춘만화’, ‘해운대’, ‘통증’의 프로듀서로 활동했다. 또 현재는 영화진흥위원회 부설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장편 총괄 책임 교수로 재직 중이다. ‘공정사회’는 그의 감독 데뷔작이다.


이 감독은 제 17회 부산 영화제 ‘한국 영화의 오늘’ 섹션에 초청돼 부산에 방문했다. 그를 부산 해운대 모처 카페에서 만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 영화는 실화를 모티브로 했다. 이 감독은 “실화가 기본 바탕이 됐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한 기사를 보게 됐다”고 말했다.

“‘딸 성폭행한 범인 직접 찾아낸 엄마의 40일 추적기-세상의 모든 엄마가 울었다’라는 기사를 보게 됐어요. 기사의 출처가 명확하지 않아 피해자의 어머니를 만나보고 싶어도 만날 수가 없었죠. 또 이런 성범죄 사건은 요즘 너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잖아요. 그 기사를 보고 제가 상상하고, 이야기를 만들게 된 거죠.”

영화의 실질적인 촬영 기간은 단 15일이었다. 굉장히 짧은 기간이지만 검증된 배우들의 연기력, 한 시도 긴장을 놓칠 수 없는 빠른 전개가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 작품의 타이틀롤 장영남을 비롯해 마동석, 황태광, 배성우는 모두 개런티를 받지 않고 참여했다.

“(장)영남 씨나 (마) 동석씨나 저와 함께 작업했던 분들이었죠. 이 영화의 예산은 5천만원 밖에 되지 않죠. 그런 상황에서 영남 씨, 동석 씨에게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고 두 분 모두 흔쾌히 승낙했어요. 두 사람에게 촬영 전 총 10회차 안에 찍겠다고 약속했어요. 왜냐면 두 분다 다작 배우잖아요. 동석 씨는 ‘공정사회’ 포함해서 총 네 작품에 출연 중이었고 영남 씨도 세 작품을 촬영 중이었어요. 약속대로 진행했고 총 9회차 만에 모든 촬영이 끝났죠.(웃음)”

그는 “배우들의 연기력도 탁월했지만 황우석 촬영 감독의 실력이 뒷받침해줬기 때문”이라며 공을 돌렸다.

극을 이끌어가는 중심축은 장영남이다. 그동안 다수의 작품 속에서 압도적인 연기력으로 존재감을 발산하는 그이지만 주연을 꿰찬 적은 없었다. 이 감독은 “장영남 아니면 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장영남 씨라면 이 캐릭터를 완벽히 소화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또 마음속에 진 빚도 있고요. ‘통증’에서 장영남 씨가 통편집 됐거든요. 같이 작업한 사람으로서 어쨌든 빚을 진거죠. 이 작품을 통해 갚고 싶었어요. 제가 장영남 씨에게 ‘우리 한 번 도전 정신을 가지고 해 보자’고 했죠. 영남 씨가 처음부터 끝까지 ‘원탑’으로 이끌고 온 작품은 없잖아요. 저도 한 번 감독으로서 제 능력을 테스트 해 볼테니 영남 씨도 ‘원탑’으로 한 번 해보자고 했죠.”

그는 장영남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정말 소녀 같은 분이에요. 제가 제안을 하고 나니 다음 날 저에게 문자 피드백이 왔어요. ‘감독님 정말 너무 하고 싶어요. 과연 제가 할 수 있을까요’라고요. 아무래도 ‘원탑’인 작품은 처음이니 떨리셨던 거죠. 열기와 에너지가 가득하신 분이에요. 첫 장면 범인와의 격투신도 더 리얼하게 가겠다고 고집했을 정도니까요.”

장영남이 분한 ‘아줌마’는 부실한 수사를 이어가는 경찰, 딸에게는 무관심하고 유명세에 어깨에 힘만 들어간 치과의사 남편에게 분노를 느끼고 직접 범인을 찾아 복수를 이어간다. 범인을 향한 그의 끈질기면서도 서슬 퍼런 복수를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아려 온다. 범인을 응징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아줌마’의 모습은 ‘악마를 보았다’의 수현과도 닮았다.

“어느 정도 그렇죠. ‘악마를 보았다’에서 내레이션이 ‘그렇게 나는 괴물이 되었다’잖아요. 결국 사회가 한 인간을 어떻게 망가뜨릴 수 있는지 보여주는 거죠. 정말 미치고 싶은 일이 발생한 거잖아요. 누구라도 그 상태 그 ‘아줌마’라면 순간적으로 괴물이 될 수 있죠. 사회에 대한 비판도 있고 범인에 대한 복수도 담았죠.”

특히 배성우가 분한 남편은 그야말로 ‘진상’이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딸을 방관하고, 그저 타인의 시선만을 의식한다.

“배성우 씨 캐릭터가 정말 좋았죠. 남들에게는 누구보다 화려하고 멋져 보이려 하지만 집에서는 완전 못됐잖아요. 촬영 전 제가 성우 씨에게 ‘네 성공을 위해서 가장 소중한 것도 버릴 수 있는 캐릭터다. 그건 네 딸이다’라고 이야기 했어요. 성우 씨도 캐릭터에 완벽히 몰입된 연기를 펼쳤죠.”

이 감독은 잔혹하거나 리얼한 묘사를 담지 않았다. 대부분의 범죄 영화는 눈을 가릴 정도로 사건을 리얼하게 묘사하는 것에 반해 ‘공정사회’는 상징적인 의미가 강하다.

“거대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영화는 절대 아니에요. 피해자 가족의 입장에서 만든 영화고요. 저는 리얼리즘을 개인적으로 싫어해서 표현적으로 관객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생각했어요. 그래서 범죄 행위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죠. 굳이 리얼하지 않아도 영화적인 광경을 표현할 수 있잖아요. 현실적으로 ‘아줌마’가 범인을 잡고 복수하는 것은 힘들죠. 이 ‘아줌마’의 모습을 통해 피해자 가족에게 안도와 카타르시스를 주고 싶었어요.”

‘공정사회’는 미국 위스콘신 영화제에 초청됐다. 출품명은 ‘AJOOMMA(아줌마)’이다. 이 감독은 ‘아줌마’의 힘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길 원했다.

“‘아줌마’로 모성애의 끝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페어 소사이어티’로 직역을 할까 하다가 그냥 ‘아줌마’로 밀어붙였죠. ‘아줌마’의 의미가 뭔지 해외 사람들이 많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양지원 이슈팀기자/jwon04@ 사진 황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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