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대표하는 ‘키네틱 아티스트’ 최우람이 서울 사간동의 갤러리현대(대표 조정열)에서 11월 1~30일 개인전을 연다. 해외 각국에서 작품 의뢰 및 전시 제의가 줄을 이어, 국내 개인전은 꼭 10년 만이다.
이번 전시에는 움직이는 조각작품의 시작점이 된 어린 시절 드로잉부터 작가로서 이름을 알린 기계생명체 시리즈, 새로운 담론을 보여주는 신작 등 총 8점의 움직이는 조각이 나온다. 또 드로잉 50여점도 내걸린다.
최우람은 어릴 적부터 기계에 빠져 지냈다. ‘마징가Z’와 ‘로보트태권V’의 열혈팬이었던 그는 로봇 자체보다는 로봇을 만드는 김 박사에 더 매료돼 과학자를 꿈꿨다. 그리고 30년 후 기계생명체를 만드는 미술가가 됐다.
첫 개인전을 6개월쯤 앞둔 대학원(중앙대) 시절 그는 이상한 체험을 했다. 도로를 쌩쌩 달리는 자동차들이 갑자기 야생을 질주하는 물소떼로 보인 것. 일종의 환각이었고, 이후 주변의 기계문명들이 살아 꿈틀대는 생명체처럼 보이곤 했다.
“서울 대치동에 살았는데 집 창밖으로 건물이 신축되고 있었어요.그런데 건물이 쑥쑥 자라나는 생명체처럼 느껴졌어요. 아, 우리가 ‘기계의 정글’ 속에서 살아가는구나 했죠”.
이후 작가는 상상의 기계장치 생명체를 만들고, 모터를 달아 움직이게 했다. 그러나 초기에는 시행착오가 엄청 많았다. 예술적 감수성은 남달랐지만 그 개념을 실제 작품에 완결성있게 구현해내는 것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누군가 가지 않은 길이었기에 그 길은 더욱 험난했다. 제작비가 모자라 피를 말린 적도 여러 번이다. 그러나 그의 남다른 상상력과 투지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놓았고, 지금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키네틱 아티스트로 발돋움하는 중이다. 기계문명에 대한 깊은 성찰을 바탕으로, 뛰어난 조형성과 고도의 정밀성을 지닌 작품들을 잇달아 내놓으며 스타덤에 오르고 있는 것.
최우람은 타고난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자신의 작품에 딱 들어맞는 신화를 잘도 빚어낸다. 유사 학명도 만들어내 작품에 명명한다. 거대한 바다사자와 식물로 이뤄진 대작 ‘쿠스토스 카붐(Custos Cavum)’에 깃든 이야기를 살펴보자.
“아주 오래전 작은 구멍으로 연결된 두 개의 세계가 있었다. 그런데 그 구멍은 자꾸 닫히려는 성질이 있어, 쿠스토스 카붐이라는 (바다사자 모양의) 수호자가 앞니로 구멍을 만들며 숨통을 틔워주곤 했다. 그러나 서로간 소통을 원치 않는 인간 때문에 카붐은 하나 둘 죽어갔고, 결국 두 세계는 영영 분리됐다. 어젯밤 나의 작은 마당에는 마지막 남은 카붐 뼈에서 유니쿠스(Unicus)라는 식물이 돋아났다.”
금속 뼈만 남긴 채 죽은 거대한 바다사자에서 피어난 가느다란 나뭇가지들은 천천히 움직이며 이같은 신화를 관객 앞에 펼쳐 보인다. 차가운 기계생명체는 기묘한 상상력과 정밀한 테크놀로지에 힘입어 마침내 심장이 뛰고, 실핏줄에까지 피가 돌면서 살아 꿈틀댄다.
그리스어로 ‘꼬리를 삼키는 자’를 뜻하는 ‘우로보로스(Ouroboros)’라는 작품도 흥미롭다. 커다란 금속 뱀이 자기 꼬리를 삼키면서 360도로 회전하는 모습은 인간 역사의 순환을 형상화한 것. 이 작품에도 물론 신화가 곁들여 있다.
이번에 최우람은 기존의 기계문명을 성찰한 작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삶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새로운 작업을 선보인다. ‘회전목마’라는 신작은 음악에 맞춰 완벽한 형상의 회전목마가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며 빙글빙글 돌아가지만, 인간이 가까이 다가가면 도는 속도와 음악이 너무 빨라져 형상을 가늠하기 어려워진다. 사람들을 현혹하는 세상의 화려한 것들이 어쩌면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 다를 수 있다는 깨달음을 전하는 작품이다. 천사가 호위하는 ‘파빌리온’이란 움직이는 조각 또한 인간의 우매함을 풍자한 기발한 작품이다.
또 검은색 전선들을 뭉쳐서 만든 4m 높이의 ‘허수아비’는 쇼셜네트워크 서비스(SNS)에 과도하게 빠져드는 현대의 집착에 주목한 작업이다. 사람이 아니면서도 사람 형상을 하고 벌판에서 새를 미혹하는 허수아비처럼, 우리 현대인도 실체가 없는 네트워크의 세계에 지나치게 미혹되는 건 아닌지 묻고 있는 것.
최우람은 벌레ㆍ곤충 형상의 기계생명체를 즐겨 만든다. 이는 만물의 영장으로서 인간의 교만과 폭력이 가져올 미래의 모습을 예고하기 위해서다. 브레이크 없이 달려가는 인간의 만용과 이기심이 어쩌면 자기 증식의 단계에 접어든 기계생명체의 변종을 앞당길지 모른다는 것.
그가 만든 기계생명체는 관절과 심장을 지닌 것처럼 섬세하게 움직인다. 각각의 탄생설화까지 지닌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러한 기계생명체가 우주 어딘가에 정말로 존재하는 건 아닐까’ 하고 아득한 상상에 빠져들게 된다. 02)2287-3500
/yrlee@heraldcorp.comㆍ사진 박해묵 기자/moo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