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이영란 선임기자의 art & 아트> 심장이 뛰는 기계…복제 · 번식하며 인간세계를 엄습하다
‘키네틱 아티스트’ 최우람 10년만에 국내 개인전
갑자기 도로위 자동차들이
질주하는 야생 물소떼처럼 보였다
일종의 환각이었다
그 이후 기계문명의 모든 것은
살아 꿈틀대는 생명체가 됐다



정교하게 움직이는 기계생명체 작품으로 세계로부터 주목받는 작가 최우람(42). 그는 어릴 적부터 기계에 빠져 지냈다. ‘마징가Z’와 ‘로보트태권V’의 열혈팬이었던 그는 로봇보다는 로봇을 만드는 김 박사에 더 매료되어 과학자를 꿈꿨다. 그리고 30년 후 기계생명체를 만드는 미술가가 됐다.

한국을 대표하는 ‘키네틱 아티스트’ 최우람이 서울 사간동의 갤러리현대(대표 조정열)에서 11월 1~30일 개인전을 연다. 해외 각국에서 작품 의뢰 및 전시 제의가 줄을 이어, 국내 개인전은 꼭 10년 만이다.

이번 전시에는 움직이는 조각작품의 시작점이 된 어린 시절 드로잉부터 작가로서 이름을 알린 기계생명체 시리즈, 새로운 담론을 보여주는 신작 등 총 8점의 움직이는 조각이 나온다. 또 드로잉 50여점도 내걸린다.

최우람은 첫 개인전을 6개월쯤 앞둔 대학원 시절,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들이 갑자기 야생을 질주하는 물소 떼로 보였다. 일종의 환각이었고, 이후 주변의 기계문명들이 살아 꿈틀대는 생명체처럼 보이곤 했다.

“서울 대치동 집 창밖으로 건물이 신축되는데 쑥쑥 자라나는 생명체처럼 느껴졌어요. 아, 우리가 ‘기계의 정글’에서 살아가는구나 했죠”.

이후 작가는 상상의 기계장치 생명체를 만든 다음 이를 움직이게 했다. 물론 시행착오도 많았다. 제작비가 모자라 피를 말린 적도 여러 번이다. 그러나 그의 남다른 상상력과 투지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놓았고, 지금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키네틱 아티스트로 자리 잡는 중이다. 기계문명에 대한 깊은 성찰을 바탕으로 뛰어난 조형성과 고도의 정밀성을 지닌 작품을 잇달아 내놓으며 스타덤에 오른 것. 

현대 문명사회에 숨통을 틔워주던 바다사자의 죽음을 표현한 최우람의 대작‘ 쿠스토스 카붐(Custos Cavumㆍ2011)’. 금속 뼈만 남긴 채 죽은 거대한 바다사자에서 피어난 나뭇가지가 천천히 움직이며 문명의 종말을 은유하는 작품이다.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최우람은 타고난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자신의 작품에 딱 들어맞는 신화를 잘도 빚어낸다. 유사 학명도 만들어내 명명한다. 거대한 바다사자와 식물로 이뤄진 ‘쿠스토스 카붐(Custos Cavum)’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아주 오래전 작은 구멍으로 연결된 두 개의 세계가 있었다. 그런데 그 구멍은 자꾸 닫히려는 성질이 있어, 쿠스토스 카붐이라는 수호자가 앞니로 구멍을 만들곤 했다. 그러나 소통을 원치 않는 인간 때문에 카붐은 하나 둘 죽어갔고, 결국 두 세계는 영영 분리됐다. 어젯밤 나의 작은 마당에는 마지막 남은 카붐 뼈에서 유니쿠스(Unicus)라는 식물이 돋아났다.”

금속 뼈만 남긴 채 죽은 거대한 바다사자에서 피어난 나뭇가지는 천천히 움직이며 이 같은 신화를 속삭인다. 차가운 기계생명체는 기묘한 상상력과 정밀한 테크놀로지에 힘입어 실핏줄에 피가 돌며 살아 꿈틀댄다.

그리스어로 ‘꼬리를 삼키는 자’를 뜻하는 ‘우로보로스(Ouroboros)’라는 작품도 흥미롭다. 커다란 금속 뱀이 자기 꼬리를 삼키며 끝없이 회전하는 모습은 인간 역사의 순환을 형상화한 것. 이 작품에도 물론 신화가 곁들여 있다.

이번에 최우람은 기존의 기계문명을 성찰한 작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삶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새로운 작업을 선보인다. ‘회전목마’라는 신작은 음악에 맞춰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며 빙글빙글 돌아가지만 인간이 다가가면 도는 속도와 음악이 빨라져 형상을 가늠하기 어려워진다. 사람들을 현혹하는 세상의 것들이 어쩌면 우리가 원하는 것과 실체가 다를 수 있다는 깨달음을 전하는 작품이다. 천사가 호위하는 ‘파빌리온’이란 움직이는 조각 또한 인간의 우매함을 풍자한 신작이다.

최우람은 벌레ㆍ곤충 형상의 기계생명체를 즐겨 만드는데, 이는 만물의 영장으로서 인간의 교만과 폭력이 가져올 미래의 모습을 예고하기 위해서다. 인간의 그칠 줄 모르는 만용과 이기심이 자기 증식의 단계에 접어든 기계생명체의 변종을 앞당길지 모른다는 것. 그가 만든 기계생명체는 관절과 심장을 지닌 것처럼 섬세하게 움직인다. 각각 탄생설화까지 지닌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러한 기계생명체가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지 않을까’ 하고 상상하게 만든다.

yrle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