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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든 트랙, 오류에서 시작돼 홍보 수단으로 진화
나얼의 첫 번째 솔로 앨범 ‘프린서플 오브 마이 소울(Principle of My Soul)’ CD를 플레이어에 집어넣으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앨범 재킷과 속지에 적힌 트랙의 수는 10개인데 플레이어에 뜨는 트랙의 수는 무려 37개에 달하기 때문이다. 음악 감상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앨범의 마지막곡 ‘스톤 오브 자이언(Stone of Zion)’이 끝나면 고작 7초에 불과한 무음 트랙이 장난처럼 26개나 이어진다. 그렇게 마지막 37번 트랙까지 다다르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노래하는 이국적인 곡 하나가 흘러나온다. 이는 나얼이 케냐의 대학생 크리스천 밴드 샘(SAM)에게 선물한 가스펠 ‘유 브와나(Yu Bwana)’라는 곡으로 아프리카 케냐와 탄자니아 등지에서 쓰이는 스와힐리어로 부른 곡이다. ‘유 브와나’는 이른바 히든 트랙(Hidden Track)이다. 히든 트랙은 앨범 재킷이나 속지에 표기 없이 수록되는 곡들을 총칭한다.


▶ 히든 트랙의 원조는 비틀스다?= ‘히든 트랙’의 시작은 비틀스(Beatles)의 1969년 앨범 ‘애비 로드(Abbey Road)’다.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LP의 B면을 모두 메들리(서로 다른 곡을 이어 맞추는 형식)로 채우려했던 비틀스는 ‘허 메저스티(Her Majesty)’란 곡을 메들리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빼려 했다. 그러나 앨범 제작사의 사정으로 곡을 뺄 수 없었던 비틀스는 하는 수 없이 메들리의 마지막곡 ‘디 엔드(The End)’ 이후 20초 간 공백을 둔 뒤 ‘허 메저스티’를 실었다. 히든 트랙은 이렇게 앨범 제작상의 오류로 시작됐지만 이후 가수들이 팬들에게 깜짝 선물을 주는 형식으로 혹은 가수들이 기존에 선보이지 않은 실험적인 곡을 싣는 수단으로 변해갔다. 


▶ 히든 트랙을 즐겼던 ‘문화 대통령’= ‘문화 대통령’ 가수 서태지는 히든 트랙을 즐긴 대표적인 아티스트다. 서태지는 히든 트랙을 주로 공백기와 다음 컴백작의 콘셉트를 알려주는 단서로 활용했다. 1998년에 발표된 서태지 솔로 1집의 히든 트랙은 마지막 곡 ‘테이크 식스(Take 6)’ 재생 후 2분 뒤에 시작된다. 서태지는 2년 뒤인 2000년에 솔로 2집을 발표했고 연주 스타일의 솔로 1집의 히든 트랙과 흡사했다. 솔로 2집의 히든 트랙 ‘너에게’는 마지막 곡 재생 후 4분 뒤에 시작되는데, 서태지는 4년 후 히든 트랙과 비슷한 음악을 담은 솔로 3집을 냈다.

이밖에도 히든 트랙의 예는 적지 않다. 모던 록 밴드 넬은 2006년 3집 앨범에 ‘히든 트랙’으로 ‘1분만 닥쳐줄래요’란 곡을 담았다. 이곡은 재밌게도 앨범 마지막곡 재생 후 1분 후에 시작된다. 2001년 문희준은 록을 표방한 자신의 첫 번째 솔로 앨범에 ‘히든 트랙’으로 트로트곡 ‘단춧구멍 인생’을 실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 이젠 ‘히든’이 ‘히든’이 아니야= 최근의 히든 트랙은 ‘숨겨진’이란 의미를 지닌 ‘히든’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정식 수록곡 못지않은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나얼의 솔로 앨범의 히든 트랙 ‘유 브와나’는 디지털 음원으로는 공개되지 않아 CD로만 들을 수 있어 오히려 더 많은 팬들의 관심을 끌었다. 지난 2009년 에픽하이는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정형돈과 함께 부른 ‘전자깡패’를 히트곡 리믹스 앨범에 실어 정식 수록곡 이상으로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미니 앨범 2집에 실린 히든 트랙 ‘마이 스타일(My Style)’은 이후 디지털 싱글로 정식 발매되기도 했다. 이렇듯 최근 ‘히든 트랙’은 팬들을 향한 깜짝 선물을 넘어 대중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색 홍보 수단으로 진화하고 있다.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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