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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열의 벗 김주봉 “냄비(결혼선물)대신 받은 그림때문에..”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물방울 화가’ 김창열(Kim Tschang Yeul,83)이 대만 타이중 시(市)의 국립대만(臺灣)미술관에서 지난 3일부터 대규모 회고전을 열고 있다. 대만 문화부 주최로 개막된 이번 전시에는 김창열이 1960년대 뉴욕에 머물며 그렸던 초기작에서부터 올들어 그린 신작까지 총 50여점이 내걸렸다. 이에따라 물방울 그림이 나오기 이전의 추상작업과 물방울 그림이 막 발아되던 무렵의 작품, 물방울 그림이 다채롭게 변모해가는 과정을 한자리에서 음미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전시작 가운데 김 화백의 초기작품인 ‘제례’(1966년ㆍ162x134㎝, 캔버스에 유채)에는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깃들어있다.

때는 해외여행이 지금처럼 흔하지않던 지난 1960년대 중반이었다. 우물안 개구리가 아니라 더 넓은 무대에서 본격적으로 현대미술계 고수(?)들과 제대로 한번 싸워봐야겠다는 일념 하에 단돈 3달러만 지닌 채 1964년 뉴욕땅을 밟은 청년화가를 아무런 조건없이 품은 사람이 있었으니 컬럼비아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김주봉(79ㆍ前 국회도서관장) 씨였다. 그는 당시 갈 곳 없던 화가 김창열을 자신의 집으로 끌여들여 큰 방을 내주고, 그림을 그리게 했다. 


김주봉 박사는 “그 무렵 제가 컬럼비아대학 동아시아연구소 연구원을 겸하고 있어 대학관사에서 지내고 있었어요. 정치학을 전공하면서 한국관련 도서와 자료, 논문 등을 정리하는 작업을 했더랬죠. 그런데 하루는 잘 알고 지내던 수화 김환기(화가) 선생으로부터 저녁을 먹으러 오라는 연락이 왔어요. 그날 수화선생 댁에서 김창열 작가를 처음 만났죠. 한 눈에 ‘참 괜찮은 사람이구나’ 하는 느낌이 왔어요. 도통 말이 없는데 한마디 하면 그야말로 정곡을 찌르더라고요.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 양반이 딱히 갈 곳이 없는 것같기에 ‘우리집에서 지내자’고 했죠. 이튿날부터 바로 룸메이트가 됐어요”라고 했다.

당시 삼십대 초반이었던 김 화백은 넥타이에 그림을 그려넣는 아르바이트 등을 해가며 열정적으로 작업했다. 물론 김주봉 박사의 집에 계속 기거하면서였다.

그리곤 4년여 후, 김주봉 씨가 결혼을 하게 되자 “결혼선물로 냄비세트를 사주고 싶지만 돈이 모자라니 이 그림으로 퉁치자”며 문제의 1966년 작품을 선물했다. 김 박사 커플은 흔쾌히 그림을 받았고, 45년간 소중히 간직해오다가 이번 국립대만미술관 전시에도 그림을 대여해줬다.


당시 뉴욕에서 김주봉 박사와 함께 컬럼비아대를 다녔던 아내 이금주 씨는 “두사람이 어찌나 죽이 잘 맞는지 그야말로 찰떡궁합이었어요. 둘 다 워낙 사람을 좋아해 한국에서 온 유학생은 물론, 언론계,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늘 집에 버글버글 했어요. 같은 평양 출신이라 냉면을 잘 만들어 먹었는데, 1960년대 뉴욕에 살면서 ‘김주봉-김창열 표 냉면’ 안 먹어본 사람은 문화예술인 축에도 못 끼었을 정도였죠.”라고 했다.

이어 “그렇게 어울리다가 저희가 결혼을 하게 됐는데 김창열 작가가 ‘결혼선물로 뭘 받고 싶으냐’고 물어요. 그래서 그 무렵 유행하던 법랑냄비를 받고싶다고 했죠. 헌데 며칠 후 김 작가가 그림을 선물하는 거에요. 냄비 살 돈이 모자란다면서요. 단짝이었던 화가의 그림이라 고맙게 받았는데 요즘 주위에서 ‘그 때 (그림 대신) 냄비를 받았으면 어쩔 뻔 했느냐?’며 놀리죠. 저희 부부 역시 가슴을 쓸어내린답니다. 냄비 대신 받은 김 화백의 1966년 작품은 뉴욕 시기를 대표하는 중요한 작품이어서 우리 집에 걸려 있다가도 수시로 여러 미술관에 대여되곤 해요”라고 했다.

김주봉 박사는 “결혼선물로 받은 그림 말고도 김 화백 그림을 몇점 갖고 있는데 그 때문에 우리 부부도 말년에 좀 바쁩니다. 세계 곳곳에서 그의 전시가 열리니 안 가볼 수가 없죠. 저희 부부말고도 김 선생을 40~50년째 죽자고 따라다니는 열혈 팬(김태성, 유세희, 이형, 전상범 씨 등)이 워낙 많아, 앞으로도 이 분들과 함께 지구 끝까지 선생을 따라갈 겁니다. 이 나이 되도록 제가 잘한 게 별로 없는데, 그나마 가장 잘한 게 있다면 김창열을 룸메이트로 둔 거에요”라고 했다. 


한 지붕 밑에서 지냈으니 다툴 때도 있지 않았느냐고 묻자 “김 선생이 워낙 남을 배려하는 분이라 전혀 불편한 게 없었어요. 자기가 가장 아끼는 걸 남에게 몽땅 주면서도 생색내는 걸 도무지 못봤죠. 도인이 따로 없어요. 제가 밤늦게까지 공부하느라 잠을 설치면 아침밥을 차려놓곤 문을 조용히 노크하며 “김형, 아침 먹어요”라고 부르곤 했죠. 그 목소리, 정말 그립습니다. 그는 정말이지 최고의 룸메이트였어요”라고 회고했다.

지난 3일 오후 타이중의 국립대만미술관에서 열린 ‘김창열 작품전’ 개막식에는 마잉주 대만 총통이 축전을 보냈으며, 대만및 프랑스의 문화예술계 주요 인사, 표미선 한국화랑협회장(표갤러리 대표), 조각가 심문섭 씨, 김 화백의 동생인 극작가 김창활 씨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또 김 화백의 그림과 그의 인품을 흠모하는 친구및 친지들도 서울에서 날아가 진심어린 축하인사를 전했다. 김창열의 대만 전시는 내년 1월 20일까지 이어진다.

타이중(대만) 글, 사진=이영란 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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