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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로 다른 세계의 만남…한만영이 복제해낸 시간들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동서양의 유명회화를 차용해 색다른 작품을 선보여온 작가 한만영(66, 전 성신여대 교수)이 대학을 정년퇴직하고, 전업작가로서 개인전을 갖는다.

서울 관훈동의 노화랑(대표 노승진) 초대로 지난 8일 작품전을 개막한 한만영은 이번에 다채로운 부조 회화를 내놓았다.

이번 신작들은 얇은 철판에 마네의 ‘피리부는 소년’이며,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같은 유명 그림의 윤곽선을 새긴 후, 이를 깔끔한 푸른빛 캔버스 위에 부착한 것들이다. 따라서 일종의 ‘철제 오브제 회화’라 할 수 있다.

한만영은 단원 김홍도, 겸재 정선, 고구려 벽화 등 우리의 걸작이나 민화 등을 차용한 작품도 선보였다. 출품작의 공통점은 평면과 입체가 어우러진 통합공간에 ‘시간의 복제’라는 개념을 구현했다는 점이다. 

조각기법을 활용해 밋밋한 평면회화에 입체성을 살린 신작들은 지나간 시간의 흔적을 더욱 도드라지게 드러내고 있다. 


장자의 저 유명한 ‘호접몽(胡蝶夢)’을 소재로 한 ‘시간의 복제-꿈’은 ‘꿈에 나비가 돼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꽃도 구경하고, 들도 구경했으나 깨보니 인간 나였다’는 장자의 ‘꿈’에 촛점을 맞춰 이를 지극히 미니멀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동양의 예술가들이 통상 장자의 호접몽을 ’인생의 덧없음’으로 해석하는 것과는 달리 한만영은 ‘시간의 넘나듬’이란 측면으로 이를 해석했다.

엎드려 꿈을 꾸는 여성의 달콤한 뒷모습을 얇은 철판으로 잘라 푸른 캔버스에 부착하고, 나비 한송이를 섬세하게 그려넣은 작품은 우리의 꿈과 현실, 어제와 오늘, 삶과 죽음이 결국 하나임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철제 오브제는 문명을 상징하며, 작가인 내게는 시간의 흔적을 재생산하는 소재”라며 “과학이 낳은 기계문명 속의 어제와 오늘, 원본과 복제, 형식과 내용을 통합적으로 담아내고자 했다”고 밝혔다. 


이번 작업을 위해 작가는 청계천 공구상을 부지런히 드나들었다. 그곳에서 구입한 낡고 오래된 철판을 컴퓨터로 커팅해 세계적인 명화, 고구려 벽화, 풍속화 이미지를 간결한 선으로 빚어냈다. 그리곤 사각의 패널틀에 명화 이미지를 릴리프처럼 앉히고, 바탕을 푸른색 한가지로 간결하게 처리해 시선을 명화에 집중시키도록 했다. 간간히 물감으로 악센트를 주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론 여백효과를 최대한 살렸다.

중견작가로는 보기 드물게 팝아트적인 작업을 하며 끈질기게 새로운 실험을 펼치고 있는 한만영은 “과거에는 그저 한 우물만 열심히 팠으면 됐지만 이제 융합의 시대를 맞아 씨줄과 날줄을 축으로 두루 사고하고, 새롭게 도전해야 하는 시대다. 늘 혁신을 추구하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했다. 전시는 22일까지. 사진제공=노화랑. (02)732-3558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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