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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 포럼 - 조우호> 인문정신과 대통령의 자격
진정한 통합은 지금처럼 단순히 구호가 아닌 인간에 대한 폭넓은 이해에서 가능하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을 때 개인의 행복이나 공동체의 통합을 심각하게 해치거나, 해칠 수 있는 이슈를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야권 후보 단일화라는 드라마가 한 주인공의 도중하차로 갑자기 막을 내리자 적잖은 국민들은 뻔한 대선 드라마라도 관전해야 할지 고민이다. 주인공 없는 드라마가 재미만 없다면, 주인공을 따지지 않는 드라마는 막장이 될 수 있어 문제다. 이제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대선후보가 대통령을 어떤 자리로, 혹은 어떤 자격을 갖춰야 하는 자리로 생각하느냐 하는 점이다.

우리 사회는 대통령의 성격에 따라 사회 전체가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는지 보여주는 전시장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즉, 우리 사회에서 대통령은 정치 지도자라기보다는 사회 전체의 모습을 결정 짓는 결정적 가치였으며, 가치를 만들고 주도하는 자리였다. 개발과 근대화를 외치는 대통령이 출현하면 사회의 최고 가치는 개발과 근대화가 됐고, 민주화를 구호로 삼는 대통령이 집권하면 사회 최고선(最高善)은 문민과 민주화였다. 시민 참여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았던 정부도 실상 대통령이 그것을 주도했다. 기업 CEO형 대통령의 등장은 우리 사회에서 경영과 효율, 경쟁이 중요한 가치를 가지게 했다. 지금까지 우리의 대통령들은 자신이 만든 가치에 충실하게 임무를 수행해온 셈이다.

그렇다면 과연 대통령은 어떤 자리가 돼야 할까. 대통령이란 사회의 특정 가치를 창출하는 자리가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가치를 반영하며 그것이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게 하는 자리여야 한다.

독일의 극작가 브레히트는 영웅을 필요로 하는 사회는 불행한 사회라고 했다. 그렇다. 우리 사회에서도 영웅보다는 사회의 다양한 가치를 올바르게 모으는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대통령은 기업가 대통령, 민주 대통령, 전문가 대통령도 아닌 ‘통합의 대통령’이다.

하지만 진정한 통합은 지금처럼 단순히 구호가 아닌 인간에 대한 폭넓은 이해에서 가능하다. 이를테면 인간 행복의 조건이나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회제도, 개인과 공동체의 공존 등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그것이다. 이것을 상식이나 서민경험과 연결 짓는 후보들은 있지만 더 넓은 인문정신의 한 단면임을 깨닫는 후보는 없는 듯이 보여 안타깝다.

진정한 인문정신을 가진 지도자라야 유럽의 지성 위르겐 하버마스가 지적한 성공한 정치인의 자격을 갖출 수 있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을 때 개인의 행복이나 공동체의 통합을 심각하게 해치거나, 해칠 수 있는 이슈를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이슈인 성장과 복지정책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포용력과 정치적 추진력도 여기서 나올 것이다.

한 분야에 정통한, 혹은 한 분야의 가치 실현에 능력이 있는 사람은 대통령이 아니라 장관이어도 충분하다. 경제성장과 국가경쟁력이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면 성장과 혁신의 전문가가 어쩌면 총리가 되는 것도 좋겠다.

다만 한 나라를 경영한다는 것은 다양한 가치와 능력을 조화시키고 갈등은 조절해서 사회를 진정으로 통합하는 것이다. 이는 폭넓은 인문정신을 가진 대통령의 몫이다. 인문정신을 갖춘 대통령, 정치를 모르는 한 인문학자가 꾸는 허망한 꿈이 아니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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