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위크엔드] ‘수지김 사건’ …10여년 뒤 남편은 수십억 로비 게이트 주인공으로
한국 현대사를 뒤흔든 스캔들
한국판 돈 후안 ‘박동명 사건’
연루 여배우들 자살시도까지

DJ때 옷로비사건으로 특검제 도입
MB정부 외교가 뒤흔든 상하이스캔들
공직기강 해이 속 서둘러 조사 종결

1992년 대선 직전 초원복집 도청사건
1996년 ‘안기부 불법자금’ 돌출 등
선거철엔 어김없이 대형사건 터져



역사적으로 한반도를 뒤흔든 최대 스캔들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백제 무왕인 서동과 신라 진평왕의 셋째딸인 선화공주 이야기일 것이다.

어린 시절 마를 팔며 생계를 잇던 서동이 첫눈에 반한 선화공주를 탐해 ‘서동요’를 짓고 저잣거리 아이들에게 공짜로 마를 나눠주며 따라 부르게 했다는 익숙한 이야기 말이다.

로맨틱해 보이지만 역사에 기록된 바는 잔혹하다. 진평왕은 진노해 딸을 유배했고 선화공주와 결혼 후 왕위에 오른 무왕은 집권 40년간 11차례에 걸쳐 신라와 전쟁을 벌여 장인인 진평왕은 물론, 처형인 선덕여왕과도 검을 주고받는 살벌한 관계를 이어갔다.

한 나라의 흥망을 걸었던 정도는 아니더라도 한국 현대사를 뒤흔든 각종 스캔들은 때로는 게이트라는 이름으로, 가끔은 일대 사건으로 불리며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한국판 돈 후안부터 외교가 농락한 마타하리까지=1975년 초여름 연예계가 발칵 뒤집혔다. 재벌 2세였던 박동명 씨가 유명 영화배우ㆍ탤런트를 포함, 100여명의 여성과 놀아났던 사실이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난 직후였다.

발단은 원자재 해외 밀반출 혐의를 수사하기 위해 수사관들이 박 씨의 자택에 들이닥친 것인데, 그는 한 여배우와 동침 중이었고 그의 맨션에서 외제 가구와 핸드백ㆍ목걸이 등 200여점의 사치품이 나왔다.

긴급조치 9호 아래 검찰은 ‘사회 부조리 일소’ 차원에서 모든 혐의 내용을 언론에 그대로 흘렸고 박 씨가 여성주간지 표지 모델을 주로 공략, ‘마담 뚜’를 통해 소개받은 26명의 유명 연예인 명단이 그의 리스트에 있었음이 확인됐다. 또 그는 일본의 환락가를 전전했으며, 플레이보이 클럽을 드나들며 바니걸들에게 수천달러의 화대를 지불한 것으로 드러났다.

영화인협회는 ‘박동명 사건’에 연루됐거나 비밀 요정에 출입한 여배우들을 내사했고, 13명에 대해 ‘비협조자’ ‘행방불명자’ ‘자진사퇴자’ 등의 옹색한 이유를 들어 제명 조치했다. 원치 않는 은퇴 선언을 하게 된 여배우들이 거세게 항의하며 음독자살 시도까지 할 정도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초대형 스캔들이었다.

1987년 1월 홍콩에서 한 한국인 여성이 살해된 채 발견됐다.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남편은 “조총련의 사주를 받은 여 간첩과 북한 공작원에 납치됐다가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탈출했다”고 진술했다. 사건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는 남편의 조작극임을 알았지만 민주화운동 세력의 거센 도전에 직면했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진실을 숨기고 대공 사건으로 미화했다.

이른바 ‘수지 김 사건’은 이렇게 일단락되는 듯했다. 억울하게 숨진 수지 김은 간첩으로, 남편 윤태식 씨는 반공투사로 역사에 남을 뻔했던 사건은 그러나 2000년 김 씨 가족의 고소로 재수사가 본격화되며 뒤집혔다.

처벌이 두려웠던 윤 씨가 월북을 기도했고, 미국대사관에 망명 의사를 밝혔다는 사실까지 드러나며 그 해 11월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는 그를 부인 살해 혐의로 구속 기소했고, 2003년 대법원 상고심에서 확정 판결이 내려졌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장세동 당시 안기부장이 사건의 은폐를 주도했고, 2000년 경찰의 내사 중단 과정에도 국정원이 개입한 정황이 발견됐다.

특히 윤 씨는 그 사이 지문 감식의 첨단 기술을 가진 ‘패스21’의 벤처기업인으로 변신, 언론계에 돈과 회사 주식을 뿌렸다. 돈을 받은 언론들은 윤 씨를 유망한 벤처기업가로 포장해 보도했고, 정ㆍ관계 거물들을 소개했다. 언론 보도만 믿고 주식을 산 투자자들이 큰 손해를 봤고, 윤 씨가 주가 조작 및 가장 납입 등을 통해 수십억원의 부당 이익을 취해 이 돈을 정ㆍ관계 로비에 썼다는 ‘윤태식 게이트’가 2001년 말 터지기도 했다.

‘옷 로비 사건’이 드러난 것은 1999년 5월 김태정 검찰총장 부인 연정희 씨가 외화 밀반출 혐의를 받고 있던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의 부인 이형자 씨로부터 1998년 말 고급 옷을 받았다는 소문이 보도되면서부터다.

언론에 제보한 것은 이 씨였고, 연 씨는 즉각 이 씨를 명예 훼손으로 고소했다. 고소사건을 맡은 검찰은 이 사건을 이 씨의 ‘실패한 로비’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수사 과정에서 검찰이 연 씨를 비호하면서 의혹을 증폭시켰고 국회 청문회까지 열렸지만 진실을 밝히지 못했으며, 결국 우리나라 최초로 특별검사제가 도입돼 연 씨가 호피무늬 반코트를 받았으며 검찰 및 사직동팀이 사건을 축소ㆍ은폐하려 했다는 사실까지 밝혀냈다.

특검은 “이 씨가 남편의 구명을 위해 고위층 부인들에게 시도한, 실패한 로비”라고 수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열흘 뒤 대검은 “이 씨의 자작극으로 촉발된, 실체 없는 로비”라며 특검이 내린 결론을 정면으로 뒤집어 숱한 뒷말을 남겼다. 처음 사건이 보도된 직후인 그 해 6월 김 총장은 법무부 장관에 취임한 지 15일 만에 물러나야 했다.

지난해 3월에는 대한민국 외교가를 뒤흔든 ‘상하이 스캔들’이 터졌다. 중국 상하이 주재 한국 외교관들이 30대의 중국 여성 덩신밍(鄧新明)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으며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를 비롯한 정치권 핵심 인사들의 연락처를 포함한 정부 자료가 유출된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었다.

상하이 주재 한국총영사관 소속 영사들은 덩 씨에게 한국 비자를 부정 발급해주고 각종 이권이 걸린 한국 비자 신청대리권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 또 덩 씨는 총영사관에서 비자 발급 현황, 비자 발급 대리기관 통계, 비자 개별 접수 여행사 신청 현황 등의 서류도 빼내 자신의 USB에 저장해둔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조사단은 정보 유출의 전모를 밝히지 못한 채 심각한 공직 기강 해이 사건으로 결론지었으며, 의혹만 남긴 채 사건은 종결됐다.

▶선거철이면 어김없이 나타나=선거 전에는 열병처럼 반드시 각종 대형 사건이 줄을 이었다. 1992년 대선 직전 ‘초원복집 사건’과 1996년 총선 당시 ‘안풍 사건’이 대표적이다.

초원복집 사건은 제14대 대통령선거 직전인 1992년 12월 11일 부산 초원복집에서 부산 지역 기관장들이 모여 김영삼 민주자유당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자는 대화록이 유출된 사건이다.

대화록은 당시 정주영 후보를 낸 통일국민당 관계자들이 도청해 언론에 폭로한 것으로, 이날 비밀 회동에서 “이번에 안 되면 영도다리에 빠져 죽자”,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부추겨야 한다”는 등의 발언이 실려 있었다.

그러나 김영삼 후보 측은 음모로 규정했고, 주류 언론은 관권선거의 부도덕성보다 주거 침입에 의한 도청의 비열함을 부각시켰다. 오히려 통일국민당은 여론의 역풍을 맞았고, 김영삼 후보에 대한 영남 지지층이 더욱 공고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1996년 제15대 총선을 앞두고 안기부 예산을 여당의 선거자금으로 유용한 것이 안풍 사건이다. 그러나 세간에 알려진 건 2001년 1월 경부고속철 차량 선정 로비 의혹을 수사하던 중 여당 실세의 차명 계좌에 정체불명의 뭉칫돈이 발견된 것이 발단이었다.

수사 결과, 검은 돈의 출처가 안기부라는 사실이 드러났고, 1996년 4ㆍ11 총선 등에서 여당에 불법 제공된 점이 드러났다. 검찰은 안기부 자금 1197억원을 받은 정치인이 185명에 달한다고 밝혔고, 이들의 명단과 금액이 담긴 ‘안기부 리스트’가 공개되며 일파만파로 확대됐다.

여당은 ‘방탄국회’로 맞섰고 검찰은 해당 의원과 안기부 관계자를 불구속 기소, 우여곡절을 겪으며 기소 3년여 만에 1심 유죄 선고가 났다. 그러나 2004년 항소심에서는 각각 벌금 1000만원과 무죄로 감형되며 일단락됐다.

류정일 기자/ryus@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