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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 류정일> 30년 샐러리맨 신화, 시마(島)는 왜 물러났는가
잠깐 방심해도 곤두박질치는 살벌한 경영환경에서 언제까지 고복격양(鼓腹擊壤)만 할 수는 없다. 시마 사장 작가도 “한국에 자리를 내준 일본처럼, 한국도 중국에 밀려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2012년 연결 결산에서 6800억엔의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오로지 사장인 저의 책임입니다. 엎드려 사죄드립니다. 그리고 사장직을… 그만두겠습니다.”

시마 고사쿠(島耕作ㆍ64) 사장이 사퇴를 발표했다. 그는 실존 인물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만화 ‘시마 과장’으로 익숙한 그가 지난 6일 일본에서 발매된 주간 만화잡지 ‘모닝’ 최신호에서 사의를 표했다. 사장에 오른 지 4년 만이다.

시마 시리즈는 1983년 연재를 시작해 내년 30주년을 앞둔 기업 만화다. 시마가 전자회사 하쓰시바(初芝)전산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사장에 오르는 과정을 과장, 부장, 임원, 상무, 전무, 사장 편 등 70여권의 단행본으로 출간, 전 세계에서 4000만권 가까이 팔렸다.

큰 인기가 반영돼 2008년 4월 1일 아사히(朝日)신문은 “하쓰시바전산은 고요(五洋)전기와 합병해 탄생하는 ‘하쓰시바ㆍ고요 홀딩스’의 초대 사장에 시마 고사쿠(60) 전무를 선임했다”는 기사를 실었다. 심지어 작가인 히로카네 겐시(弘兼憲史ㆍ64)의 고향인 야마구치(山口)현 이와쿠니(巖國)시에는 축하 현수막이 내걸렸다.

이렇듯 욱일승천하던 시마 사장이 이제는 ‘무직 시마’ ‘촉탁 시마’로 조롱당하며 퇴락한 것은 최근 일본 기업들의 또 다른 우울한 자화상이다. 작가인 히로카네 겐시는 와세다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파나소닉(당시 마쓰시타전기) 마케팅부에 입사해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과 나이까지 똑같은 가상 인물 시마를 창조했다.

일본 산업계의 냉엄한 현실을 담았다는 만화 속 기업들의 어려운 사정은 고스란히 현실로 나타났다. 실제 파나소닉은 내년 3월 마감하는 2012 회계연도 순손실이 7650억엔(약 10조47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신용등급이 이미 ‘정크’ 수준으로 추락한 소니는 7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고, 샤프도 올 회계연도 4500억엔 순손실이 예상된다.

반면 우리 대표 기업들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올 3분기 전 세계 패블릿(5인치 이상 대화면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점유율이 92%에 달했다는 조사 결과 하나만 놓고 봐도 그 위세를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사장에 오른 뒤 시마 사장도 “일본 표준만 고집하다 세계 시장에서 심각하게 뒤처지는 것이다. 해외시장 개척에 힘을 집중해 한국의 섬상과 PG를 따라잡겠다”고 언급했다. 섬상과 PG는 만화에서 삼성과 LG를 가리킨다.

으쓱할 일이지만 잠시라도 자만하고, 잠깐만 방심해도 그대로 곤두박질치는 살벌한 경영환경에서 언제까지 고복격양(鼓腹擊壤)만 할 수는 없다. 시마 사장을 낙마시킨 작가도 “한국에 자리를 내준 일본처럼, 한국도 중국에 밀려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그룹 회장직과 차기 게이단렌(經團連) 회장 하마평에 오른 시마 사장이 새로운 시리즈가 될지 모를 ‘시마 회장’ 편에서 언젠가는 삼성과 LG 대신 중국의 화웨이와 하이얼, 레노보를 뛰어넘자고 강조할지 모를 일이다. 


ryu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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