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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리없는 목격자…블랙박스
차량용 블랙박스, 차사고 뿐만 아니라 강도·강간·성폭행 등 강력사건 해결에도 결정적 단서 제공… ‘리틀 브라더’ 역할 톡톡

블랙박스가 각종 사건ㆍ사고 해결의 ‘해결사’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차량용 블랙박스는 교통사고 전ㆍ후의 사고발생 위치, 속도, 가속도 등을 자동으로 기록하는 장치지만 단순히 교통사고 해결에만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다. 최근에는 심야시간대의 강도ㆍ강간범과 성폭행범을 검거하는데 일조하면서 강력사건 해결에도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블랙박스는 국가기관에 의한 ‘빅 브라더’가 아닌 개인의 촘촘한 감시망 ‘리틀 브라더’ 역할을 하며 과학 수사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조용한 목격자’ 블랙박스, 사건 해결의 열쇠=지난해 10월 6일 오전 5시50분께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인근에서 자동차 부품 공장 직원 A(32) 씨는 때마침 길을 지나가던 B(25ㆍ여) 씨를 발견했다. A 씨는 B 씨에게 다가가 “술한잔 하자”며 치근덕거리기 시작했다. 당황한 B 씨는 A 씨의 말을 무시하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순간 화가 난 A 씨는 B 씨를 주먹과 발로 마구 폭행해 실신시킨 후 자신의 차량에 태워 한적한 곳으로 이동한 뒤 차량내에서 강간했다. 무자비한 폭행에 이은 강간으로 B 씨는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 후 A 씨는 범행 장소에서 약 47㎞ 떨어진 용인시 양지면 부근에 차량과 B 씨를 버리고 유유히 사건 현장을 떠났다


새벽 시간이라 목격자도 없었다. 인근에 A 씨의 인상착의를 설명해줄 폐쇄회로(CC)TV도 존재하지 않았다. 자칫 미궁에 빠질 뻔한 이 사건의 열쇠는 바로 차량용 블랙박스였다. 블랙박스는 A 씨가 B 씨를 폭행하고 차량으로 납치하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던 ‘조용한 목격자’였다. 경찰은 블랙박스와 차량번호를 단서로 A 씨 검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사건현장을 지나가던 마을버스에 장착된 블랙박스가 살인미수를 저지른 일당 검거에 결정적 실마리를 제공한 사례도 있다. 2011년 5월27일 오전 8시께 서울 서초등의 파이시티 회사 앞에 살인을 모의한 세 사람이 모였다. 이들은 당시 파이시티 법정관리인에게 흉기를 휘둘러 복부 등 신체 7곳을 마구 찔렀다. 다행히 피해자는 목숨만은 건졌다. 목격자 등 뚜렷한 단서가 나오지 않던 찰나 마을버스 블랙박스가 사건 해결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경찰은 당시 사건 현장 옆을 지나가던 마을버스의 블랙박스를 확보해 분석한 후 조직폭력배 780여명의 사진과 비교를 통해 범인을 차례로 검거했다.

블랙박스가 장착된 택시는 아무도 타고 있지 않다해도 빈 택시가 아니다. 전문적으로 빈 택시를 털어온 C(32) 씨는 지난해 10월31일 오후 1시50분께 길거리에 주차된 영업용 택시를 발견했다. C 씨는 택시 유리창을 부수고 차량내에 있던 현금 4만1000원을 슬쩍했다. 이와 같은 수법으로 C 씨는 지난해 12월 초까지 22회에 걸쳐 총 245만원 상당의 현금과 금품을 절취했다. C 씨는 범행 시 택시 내부는 물론 인근을 지나는 사람이 있는지 철저히 파악했지만 블랙박스는 간과했다. 결과적으로 경찰은 차량 블랙박스 자료를 근거로 동일수법 전과자의 사진을 대조해 C 씨를 붙잡는데 성공했다.

▶블랙박스 장착 차량 해마다 늘어, 사고 감소에도 기여=차량 블랙박스 장착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블랙박스 장착 차량은 자가용을 포함해 전국에 150만대로 추정된다. 이는 전국 자동차 등록 대수의 7%에 해당하는 수치다. 또 서울시내 등록택시 7만2000대 중 58%에는 블랙박스가 설치돼 있다. 어느곳에든 감시망이 있다는 생각 때문에 운전자들도 주의를 기울이면서 법인택시의 교통사고도 감소 추세에 있다. 손해보험협회와 한국교통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7년 전국 법인 택시의 교통사고는 2만4692건에 달했으나 2011년에는 2만331건으로 17.7%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분위기에 힘입어 이상민 민주통합당 의원이 19대 국회에서 모든 자동차에 블랙박스 장착을 의무화하는 법률 개정안을 재차 발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사건해결을 위해 블랙박스를 확보하는 경로는 크게 두 가지다. 민원인이 블랙박스 판독을 요청하면서 임의로 제출하는 경우와 경찰이 사건ㆍ사고의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차주의 동의를 얻어 받아 보는 경우다.

경찰 관계자는 “교통사고의 시시비비를 가리는데 뿐만 아니라 목격자가 없는 사건, 혹은 CCTV 사각지대에서 발생한 사건을 해결하는데 차량 블랙박스가 큰 도움이 되는 게 사실”이라며 “목격자가 있다 해도 진술이 엇갈릴 때 가해자와 피해자를 가릴 수 있는 확실한 도구”라고 말했다.

▶블랙박스 훼손해도 소용 없어=곳곳에 존재하는 차량용 블랙박스가 범죄현장을 촬영하고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일부 범죄자들은 일부러 블랙박스를 훼손하는 등 지능적으로 범행을 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 측은 훼손된 블랙박스 영상도 복구하는 등 과학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2012년 7월 D(35) 씨는 경기도 외곽 도로를 운전하다가 도로위로 날려온 물체를 피하려다 사고를 냈다. 하지만 조사과정에서 피해자는 D 씨의 졸음운전이나 부주의로 인한 사고가 아닌지 의심을 했다. 마침 차량에 장착된 블랙박스 분석을 시도했지만 블랙박스가 훼손돼 메모리에 사고 당시 상황이 기록돼있지 않았다. 결국 D 씨는 국과수에 블랙박스 복원을 의뢰했고 졸음운전 누명도 벗을 수 있게 됐다.

국과수 관계자는 “블랙박스 영상을 일부러 훼손하거나 혹은 교통 사고 당시 급제동으로 비정상적으로 블랙박스가 종료되는 경우에도 잔존 영상을 효과적으로 복구할 수 있는 기법을 쓰고 있다”면서 “영상데이터의 색상과 압축정보를 더 세분된 ‘프레임’단위로 복원해 연결시키는 방식으로 해결한다”고전했다.

황유진 기자/hyjgo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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