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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걸어서 지구 한바퀴 - 이해준의 '희망가족'> 지표면 뚫고 치솟는 수증기…마치 지구가 숨을 쉬는 듯…
<35>태초의 지구 모습 간직한 곳…칠레 ‘아타카마’
간헐천
‘피유우~’하고 물이 솟아오르자
거대한 생물체가 살아있는 착각

달의 계곡
계곡 주변엔 고운모래와 언덕뿐
석양이 물들자 진짜 달처럼 보여




[아타카마(칠레)=이해준 문화부장] 그곳은 태초 지구의 신비를 간직한 채 시간이 정지해 있는 곳이었다. 마치 지구의 끝에 온 듯했고, 외계의 다른 행성에 와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광활한 안데스 고원의 한복판, 칠레 북부의 오지 마을인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 지도에도 잘 나오지 않는 작은 마을이지만, ‘원시의 비경’이 알려지면서 세계 여행자들을 유혹하는 곳이다.

아타카마로 가는 길부터 만만치 않았다. 아르헨티나 북부도시 살타를 출발해 후후이를 거쳐 안데스 고원으로 올라가자 끝없는 황무지가 펼쳐졌다. 달려도 달려도 끝이 없었다. 거칠고, 메마르고, 황량했다. 구름 한점 없는 하늘에선 강한 햇살이 해발 4000m의 고원에 무참하게 쏟아져 내렸다. 고원 곳곳에 펼쳐진 하얀 소금사막과 소금호수가 과거 바다였음을 보여줄 뿐이다.

아타카마는 아르헨티나와 볼리비아를 잇는 칠레의 국경 마을임에도 이를 알리는 어떠한 팻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거리에는 먼지만 풀풀 날렸다. 사방 수백㎞ 내에 거주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고원의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다. 중앙로에 들어가자 남루한 흙과 시멘트 벽돌집에 식당과 카페, 여행사, 환전소, 기념품점 등이 막 들어서 있었다. 여기도 서서히 ‘개발’ 바람을 타고 있는 것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한 여행이 불가능해 여행사에 들러 가장 환상적이라는 간헐천과 ‘달의 계곡’ 투어를 신청했다.

 
칠레 북부 아타카마에서 동북쪽으로 90㎞ 정도 떨어진 엘 타티오 간헐천 모습. 해발 4200m 고원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간헐천으로 해가 뜨는 새벽에 가장 왕성하게 활동한다.

▶간헐천의 신비와 노천온천의 짜릿함=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 4시 호스텔 입구로 나가 투어 버스를 기다렸다. 사위는 온통 캄캄하고, 고원의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까만 하늘에 별들이 총총히 박혀 반짝이고 있다. 은하수도 선명하게 보인다. ‘우와~’ 탄성이 절로 흘러나왔다. 여기서 보니 지금까지 한국에서 보았던 밤하늘은 진짜가 아니었다. 지상으로 쏟아져내릴 듯한 별과 은하수가 진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고도 2400m의 투명한 고원 새벽은 그렇게 다가왔다.

곧 투어 버스를 타고 2시간 달려 뜨거운 수증기와 물이 솟아오르는 엘 타티오 간헐천에 도착했다. 놀라운 풍경이었다. 마치 거대한 생물체가 지표면 아래에서 숨을 쉬면서 수증기와 물을 토해내는 듯했다. 숨을 쉴 때마다 수증기가 ‘피유우~’ 하고 하늘로 뿜어져 올라갔고, 그다음에 뜨거운 물이 울컥울컥 올라왔다. 곳곳에 뚫린 구멍으로 지구가 숨을 쉬며 꿈틀거리는 듯했다.

이 지역에서 여전히 화산활동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가이드는 용암이 지하 15㎞ 아래에 있으며, 달구어진 암반을 흐르는 수증기가 틈을 뚫고 올라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엘 타티오 간헐천은 해발 4200m로,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간헐천이다. 특히 지하와 지상의 온도차가 가장 큰 새벽에 가장 왕성하게 활동해 투어도 새벽이 최고라고 말했다.

간헐천에 손을 갖다 대니 아주 뜨거웠다. 평균 온도가 85도에 이른다고 한다. 하지만 고원을 감싸고 있는 대기는 얼음장처럼 차가워 뜨거운 물이 금방 차갑게 변했다. 급속도로 식은 물이 간헐천 주변으로 흘러가면서 얼어붙어 곳곳이 빙판으로 변해 있었다. 위도로만 보면 남회귀선 근처로 열대지역이지만, 고도가 워낙 높아 밤만 되면 영하 10도 아래로 뚝 떨어지는 것이다.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경치를 자랑하는 ‘달의 계곡’에 석양이 비추고 있다. 마치 지구가 아니라 달이나 화성 같은 다른 별에 온 듯한 느낌이다.

빵과 커피, 간헐천에서 직접 쪄낸 계란으로 아침식사를 하는데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간헐천의 풍경도 절정으로 치달았다. 산등성이에서 햇살이 비스듬히 비치자 간헐천의 수증기가 화려하게 빛을 반사했다. 간헐천도 기다렸다는 듯이 곳곳에 뚫려 있는 구멍으로 ‘피유우~’ 하고 일제히 숨을 토해냈다. 태초의 지구 모습이었다. 극단적 자연현상, 혼돈이 지배하던 태초의 모습이었다.

해가 산 위로 완전히 떠오르고 햇살의 강도가 높아지자 요동을 치던 간헐천도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모두들 “어메이징! 원더풀! 언빌리버블!” 감탄사를 쏟아내며 승합차로 돌아왔다. 다음 코스는 야외온천이다. 간헐천에서 솟아나는 뜨거운 물을 가두어 만든 풀장이었다. 야외온천이라고 하지만 시설은 풀장과 풀장 한쪽 옆에 엉성하게 쌓아놓은 낮은 담장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해발 4000m의 고원에서 천연온천을 하는 것은 짜릿한 경험이었다. 가장자리는 약간 미지근해 풀장에 들어가며 몸서리를 쳤으나 온천물이 나오는 곳으로 가니 뜨끈뜨끈했다. 뜨거운 온천물이 울컥울컥 올라와 몸을 감쌌다. 바닥은 물과 함께 올라온 미세한 진흙으로 미끈미끈했다. 몸이 살살 녹았다. 이것이야말로 인공적인 가미가 전무한 100% 안데스 천연온천욕 아닌가.

▶‘달의 계곡’에서 외계행성으로의 시간여행=아타카마에서 가장 유명한 ‘달의 계곡(Valle de Luna)’은 오후 석양 때가 가장 아름답다고 해서 오후 투어에 나섰다. 달의 계곡은 아타카마 고원사막에 형성된 계곡으로 달의 표면을 닮았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고원에 몰아치는 모래 바람과 아주 희귀하게 내리는 비, 심한 온도차 등 순전히 자연의 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바위와 협곡이 신비로움을 자아내는 곳이다. 지난 100년 사이에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은 곳이 있을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곳이다.

‘달의 계곡’은 워낙 지역이 넓고 돌아볼 만한 곳도 많지만 몇 개의 포인트가 인기를 끌고 있다. 먼저 아타카마에서 30여분 달려 황무지를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으로 향했다. 입구 양편엔 깎아지른 바위가 우뚝 서 있고, 그 사이에 좁은 통로가 나 있었다. 먼지가 풀풀 날렸다. 통로를 만들고 있는 바위는 켜켜이 색깔을 달리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 쌓인 모래와 흙이 층을 이룬 것이다.


바위 사이를 지나니 거칠고 황량하기 그지없는 황무지가 펼쳐졌다. 영겁의 세월 동안 풍화와 침식에 의해 엄청난 굴곡이 만들어져 있었다. 아무런 생명체도 살 수 없는 모습이다. 나무는 물론 풀 한 포기 찾아볼 수 없고, 안데스의 하늘을 지배하는 콘도르도 여기엔 접근하지 않는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부서져 내리고 바람에 날리는 고운 모래와 그것에 의해 풍화된 거친 언덕들뿐이다. 가이드는 달의 계곡을 포함한 아타카마 사막이 100㎞ 너비에 길이가 1000㎞에 달한다고 했다. 어마어마한 규모다.

전망대와 아타카마 사막 이곳저곳을 돌아보고 있는데 해가 서서히 기울어 산 아래 쪽으로 긴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했다. ‘달의 계곡’을 향할 때가 됐다. 달의 계곡을 제대로 보려면 모래 언덕을 넘어 바위 산을 한참 올라가야 했다. 화산재가 섞여있는 모래는 약간 검은 색을 띠었다. 푹푹 빠지는 모래언덕을 지나자 석양에 붉게 물들어가는 달의 계곡이 모습을 드러냈다.

경이롭고 환상적인 풍경이었다. 계곡 아래쪽 분지에는 마치 눈이 내린 듯 소금이 하얗게 바닥을 덮고 있고, 그 옆의 언덕이 석양을 받아 진짜 달의 표면처럼 보였다. 석양으로 그림자가 비추면서 계곡이 점점 더 붉고 검게 물들어갔다. 간헐천에서 보았던 것과 다른 차원의 태초의 자연 모습이었다. 지구상에서 보기 어려운 비현실적인 풍경이었다. 억겁의 세월 동안 자연이 만들어놓은 경이가 아닐 수 없었다. 그 앞에 선 인간은 아주 미미하고 유한한 존재다. 자연의 경이 앞에 모두 넋을 잃었다.

아타카마를 찾는 것은 이 초현실적인 경치를 보기 위한 것이다. 여행의 묘미는 바로 이것이다. 현실과 다른 것을 보고, 이색적인 경험과 만남이 여행의 묘미라고 한다면, 이곳은 현실을 뛰어넘은 자연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말이 필요없었다. 그냥 바라보고 느끼는 것으로 충분했다. 여기에 어떤 의미를 붙이는 것은, 오히려 그 웅혼한 깊이를 상하게 할 것 같았다. 한국을 떠나 지구를 떠돈 지 8개월째, 지구 반대편으로 와서 만난 아타카마는 거칠고 황량했지만 필자의 마음은 환희에 젖고 있었다.

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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