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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있는 명소] 괴산 산막이옛길①--걷다보면 나는 ‘자연’이 된다
[헤럴드경제: 괴산=남민 기자]발 아래엔 천길 호수, 머리 위엔 쏟아질 것만 같은 절벽산이 병풍 처럼 드리운 허리춤 쯤에 실낱 같은 오솔길이 그림 처럼 펼쳐져 기어가고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딱 중국의 험준 교역로 차마고도(茶馬古道)다. 살짝 스릴을 느낀다. 그 길을 걸어야 오지마을에 닿는다.

4km 걷는 길, 청정자연 속 ‘신 산책로 1번지’ 괴산 산막이 옛길이다.

혼자 걸어서 좋고, 둘이 걸어서 더 좋다. 산책로를 걸어서 좋고, 산길로 등반해서 걸어도 좋다. 그마저 성에 안차면 호수에 유람선이 대기하고 있다. 목적지는 하나, 길은 이렇게 세갈래다.

산막이 옛길 데크 위를 걷는 사람들.

산막이 옛길은 1957년 남한에 처음으로 발전용 수력댐을 건설한 괴산호를 사이에 두고 괴산군 칠성면 외사리 사오랑마을과 산골 산막이마을을 잇는 길로, 걷기 좋게 복원해 놓은 트래킹 명소다. 말이 트래킹이지 남녀노소 누구나 운동삼아 대화를 나누고 사색하며 걸을 수 있는 옛길이다.

4년 전부터 알음알음 찾던 관광객이 2011년 11월 정식 개장하면서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전국구 관광명소로 뜨고 있다. 4km 구간 길을 걷노라면 산과 호수, 기암괴석이 한 치의 방심도 허용치 않는다.

1월 초순 갑자기 일이 있어서 월,화요일 짧은 휴가를 내야 했다. 사실 필요한 일은 새벽과 저녁에 잠깐 있는 것이어서 낮엔 또 ‘나만의 유람’을 떠났다. 월요일엔 단양팔경 추가 답사여행을 다녀왔고 화요일 이날은 이 옛길을 택했다. 큰 도로에서 마을로 진입하는 좁은 길에 눈이 제법 쌓였고 얼어서 미끄러웠다. 조심조심 운전해도 울퉁불퉁한 시골길에선 차가 옆으로 팍팍 미끄러진다. 겨울 시골 산길은 쉽게 마음을 열어주지 않았다. 다행히 안전하게 목적지에 잘 도착했다.

산막이 옛길 진입로에 잦은 눈으로 얼어 쉬운 접근이 아니었다.

출발지 주차장에서 산막이마을 구간 길 주변에는 무려 24개의 볼거리 명소가 있다. 등산로에 2개가 더 있어 총 26개다. 출발하자마자 만나는 연리지(連理枝). 두 그루가 서로 줄기가 붙어서 자라는 사랑나무다. 100번 찾아오면 소중한 사랑을 ‘보장’한단다.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기원하며 명패에 소망글을 적어 울타리에 걸어뒀는데 그 수가 셀 수 없이 많다. 풍경이 이채롭다.

초입에 있는 연리지. 수많은 사람들이 소망을 기원하는 작은 명패를 매달아 놓았다.

또 근처에 아주 특이한 소나무 한 쌍이 있다. 정사목이다. 남자 소나무와 여자 소나무가 ‘사랑’을 나누는 자세로 자라고 있다. 너무나 그럴싸하다. ‘지구 상에서 유일한 사랑나누는 소나무’라는 팻말까지 붙여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나는 이것을 ’19금(禁) 소나무’라 부르고 싶다. 1000년에 한 번, 10억 주에 한 그루 정도 나올 수 있는 음양수라고 한다. 그 숫자에 상상이나 갈까. 나무를 보면서 남녀가 함께 기원하면 옥동자를 잉태한다고 해서 재밌다. 오솔길에서 20여m 산쪽으로 올라가야 볼 수 있어 자칫하면 놓칠 수 있다.

10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다는 남녀소나무의 정사모습, 정사목이다.

또 아주 먼 옛날 얘기 같지만, 1968년까지 실제로 호랑이가 살았던 호랑이굴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이 길에는 재미있는 나무가 유난히 많은데 이번에는 옷벗은 ‘미녀엉덩이 참나무’가 길에 불쑥 나타나 요염한 자태로 ‘유혹’한다. 나무껍질이 부드러운 여자의 살결 같은 이 참나무는 두 다리를 위로 들어올리고 엉덩이를 불쑥 드러낸 채 나그네를 매혹시킨다. 여기서 만큼은 ‘엉덩이를 살짝 만져도 된다’며 지킴이 팻말도 눈감아 주고 있다.

옷벗은 미녀엉덩이 참나무가 유혹한다. 아주 그럴싸하게 생겼다.
앉은뱅이 약수, 호랑이굴 등이 잇따라 나타난다.

걷다보니 갈증도 날 즈음에 약숫물을 만났다. 중간지점에 있는 ‘앉은뱅이 약수’다. 옛날에 앉은뱅이가 가다가 이 약수를 마시고 일어서서 걸어갔다고 한다. 수질이 좋고 연중 펑펑 쏟아진다. 나무 밑동 사이로 호스를 끼워 마치 나무가 물을 뿜어내 듯 만들었다.

조금만 더 가면 호수 위로 난간을 설치하고 바닥은 유리로 깔아 만든 ‘고공전망대’가 나온다. 끝에 다가서면 살짝 오금이 저려온다. 발 밑으로 호수를 내려다 보는 신비감, 그랜드캐년 전망대 축소판이다.

여기도 그랜드캐년 전망대? 끝에 서면 아찔함을 느낀다.

50분쯤 걸어 산막이마을에 도착했다. 이 오지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왔는지 지금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했다. 한참 두리번 거리다 마침 손짓하는 할머니 댁으로 들어갔다. 딱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났다. 이 동네엔 지금 4가구가 있는데 모두 음식점을 한다. 할머니도 ‘하얀집’이라는 식당과 민박을 운영하신다.

올해 82세, 이강순 할머니. 이 마을 터줏대감이시다. 스무살에 강원도 횡성에서 시집와서 62년째 이 ‘갇힌 마을’에서만 살고 있다고 했다. ‘여기서 사시는게 어떠셨냐?’고 묻자 한숨부터 나오신다. “말도 마. 보통 고생이 아니었지, 휴~~”하면서 말을 잇는다. 댐이 생기기 전에 15가구가 있었다. 모두 떠나고 세 채 남았는데 작년에 한 집이 들어왔고 조만간 한 집이 더 들어올 예정이라고 한다. 

이 마을 최고령 터줏대감 이강순 할머니. 옛얘기 전해주신다.

마을을 빙 둘러 산에 갇히고 호수에 갇혀 살기를 수십년, 30리 되는 괴산읍내 장터 나들이 조차 1년에 한번 갈까 말까라고 했다. 외부세계와 완전히 단절된 세상 사람이셨다. 장보러 가는 일도 길이 험해 남정내나 가고, 여자는 그저 밭일이나 해야 했다고 한다. 또 한숨이 이어지신다. 한이 맺힌 듯 했다. 일이 힘들지만 여기서는 외부 일손 조차 구할 수 없는 동네라 해뜨기 전부터 일을 시작해 달이 져야 일이 끝났다고 했다.

할머니는 4남5녀를 두셨다. 억척같이 담배농사를 지어 두 아들을 충북대와 고려대에 보낸게 큰 보람이었다며 웃으신다. 동네에 논이 없어 1년 내내 쌀밥 구경은 못하고 콩보리밥과 고구마 같은 걸로 떼웠다. 지금은 연로하시고 몸이 안좋아 큰딸과 사위가 들어와 셋이 살고 있다고 했다.

이 벽지 할머니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곱게 늙으셨고 세련미까지 넘치는 모습에 흠칫 놀라웠다. 말씀도 곧잘 하시는데 ‘사진 찍어도 괜찮으세요?’ 말 떨어지기 무섭게 오른손으로 ‘V’자를 그리신다. 점심으로 큰따님이 버섯찌개를 권했다. 앞뒤 산에서 직접 따온 버섯이라고 소개했다. 1인분을 시켰는데 2인분 해주시면서 다 먹고 가라고 하신다. 할머니는 밥 먹는 내내 옆에 서서 계속 “밥 더 줄 테니 다 먹고 가”하며 권하신다. 남는 찌개가 너무 맛있었지만 더 먹을 수가 없었다.

꽃 피는 봄이 너무 아름다운 동네니까 그때 또 오라고 하시는 할머니 말씀에 꼭 그러겠다 하고 나서는데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문 앞에서 손을 흔드신다.

경치가 아름다운 동네, 할머니의 인심도 아름다운 동네로의 여행이 내 심신을 ‘정화’시켜줬다. 올 봄 다시 기약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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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막이 옛길 걷기 코스도

■ 산막이 옛길 즐기기 : 사계가 저마다 뛰어난 자연풍광을 자랑한다는 동네다. 등산로를 오르면 호수에 그려진 한반도 지형을 볼 수 있는데 단, 눈이 오면 온세상이 하얗게 변해 지형 구분이 사라진다. 대신 호수의 설경은 장관이다.

4km 걷기코스와 유람선 타기를 병행해도 좋고 2시간 걸리는 2.9km 등산길과 3시간 걸리는 4.4km의 등산길도 환상적이다. 뱃길을 즐기려면 호수 일주를 유람하는 1만원짜리 대운호가 좋다. 얼음이 얼면 못탄다. 최근엔 한반도 지형 오른쪽 호수 가운데에 작은 인공섬 두 개를 만들었는데 울릉도와 독도라고 했다.

산막이마을 한 켠에는 조선중기 문신이자 학자였던 노수신(盧守愼ㆍ1515~1590)이 을사사화때 유배와서 거처하던 수월정(水月亭)이 있다. 노수신은 명종2년에 진도로 귀양가서 19년 살다가 이곳으로 옮겨온지 2년만에 선조가 즉위하면서 복원됐고 영의정에 오르기도 했다.

글ㆍ사진=남민 기자/suntopia@heraldcorp.com
조선중기 문인이자 영의정을 지낸 노수신이 유배생활했던 수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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