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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함영훈> 민간신앙 악용하는 日 권력층

[함영훈 미래사업본부장] 요즘 일본인들은 주말이 되면 무사히 1월을 맞이한 점을 신에게 감사하고 올해도 ‘잘 지켜달라’고 기도하는 ‘하쓰모오데’(初詣) 의식을 치르기 위해 신사(神社)에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토요일인 12일 교토의 후시미이나리 타이샤(太社)와 노노미야 신사에는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참배객들은 입구에서 손을 씻고 왼손에 받은 물로 입을 헹군 다음 돈을 함에 던져놓고, 신사 처마로부터 아래로 드리워진 방울을 울려 신을 깨운 뒤, 두 번 묵례 두 번 손뼉 한번 묵례하면서 소원을 말한다.

집안 대소사때면 언제든 가는 곳이 신사이다. 아기가 태어나면 딸은 33일째, 아들은 32일째 신사로 가서 축사를 하고, 집 지을 때, 이사할 때, 가족이 먼거리 떠날 때, 미리 액(厄)을 막고 싶을 때 신사에서 머리를 조아린다. 추수땐 ‘니나메사이’라는 축제도 신사에서 벌인다.

섬나라인 만큼 ‘바다의 신’인 스미요시(住吉)를 모시는 신사만 해도 2천개, 심지어 고조선 이후 우리나라 왕을 제신으로 삼는 신사도 2천개가 넘는다고 한다. 사슴, 여우, 뱀, 멧돼지 등 영험한 동물이 제신이 되기도 한다. 사슴은 백제가 일본을 교화할 때 들여와 교토 동지사 인근 잔디밭과 길거리에 방목할 정도로 국민적 사랑을 받는다. 심지어 고구려의 상징인 삼족오도 제신의 반열에 올라있다. 하나투어 이지원씨는 “신사는 규모가 큰 마을, 고을마다 있으며, 전국적으로 수만개를 헤아린다는 말도 있다”고 전했다.


이모저모를 따져보면, 민간 신앙의 상징인 일본의 신사는 우리나라 마을 마다 있던 서낭당 또는 신령각이다. 어디가 원형(原型)인지는 역사를 진실된 눈으로 찾아보면 되니까 논하지 않는다.

마을 어귀 작은 당사(堂舍)와 돌무더기 새끼줄, 장승 등을 볼 수 있는 곳이 서낭당이다. 이곳을 지날 때는 그 위에 돌 세 개를 얹고 세 번 절을 하면서 행운을 빈다. 국난이나 가뭄이 있을 때엔 서낭제를 치르기도 했다.

종교적 건물인 야스쿠니 신사는 변칙이고 반칙이다. 쇼콘샤(招魂社)라는 이름으로 1869년 지어질 때, 내전(內戰) 승자를 위한 것이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후대 막부를 제압한 메이지유신 주도세력의 영혼을 기리기 위한 곳이었다. 아시아 침략을 일삼다 1945년 패망하자 전사자들의 위폐를 안치했고, 1978년에는 태평양 침략전쟁 A급 전범 14명의 합사를 감행했다.

1947년 제정된 정교분리 헌법규정을 위반하며 두 명의 총리가 참배했다. 기독교도가 0.5%에 불과한 일본 국민의 대표적인 민간신앙이 신사를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점을 140여년간 권력자들이 정치적으로 악용한 것이다. 민간 기복신앙에 전범(戰犯) 추모의 이미지를 덧씌운 것이다. 아베 일본 총리가 13일 야스쿠니 참배 대신, 비슷한 정치적 배경을 갖고 있는 신사 ‘메이지 신궁’을 참배했다. ‘과거 아시아 지배국의 수장’라는 점을 시위하려는 정치적 제스처임은 물론이다. 일본의 신사는 지금 민간신앙과 정치공학이 묘하게 뒤섞여 일본인들을 헷갈리게 하고 있다.

가내 평온을 기원하는 곳인데, 신사 참배행위가 마치 일본의 침략행위를 옹호하는 것으로 비춰지는 것에 불편해하는 일본인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한 켠에서는 일본 지도자들의 불법적인 ‘정치적’ 신사 참배가 일본국민에게서 오래된 민간신앙의 참뜻을 빼앗고 있다고 진단하고, 다른 한쪽에선 일본 지배세력이 교묘하게 가로막고 있는 다양한 정신문화의 일본내 유통이 활발해야 일본이 더욱 발전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둘 다 일리 있는 말이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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