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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와 함께 잤던 사람들’의 작가 트레이시 에민,英왕실훈장 받아
작은 텐트 속에 자수, 또는 아플리케 기법으로 자신과 잠을 잤던 102명의 이름을 일일이 새겨넣은 ‘나와 함께 잤던 모든 사람들(Everyone I Have Ever Slept With)1963-1995’이라는 도발적인 작품으로 잘 알려진 영국 작가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 50)이 영국 왕실로부터 훈장을 받는다.
에민은 영국의 시각예술 부문에 기여한 공로로 왕실훈장을 받는다. 그는 2012런던올림픽및 장애인올림픽 포스터를 디자인했으며, 성화 봉송주자로도 뛰었다.

그러나 에민은 문화예술계에선 ‘무례한 고백적 작업의 작가’로 불린다. 일곱살 되던 해 부모의 사업실패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는가 하면, 열세살 때는 성폭행을 당하고 집을 뛰쳐나왔다. 이후 절망과 좌절에 빠져들며 불량소녀처럼 살았다. 낙태및 자살 시도, 폭음, 과도한 흡연으로 얼룩진 삶이었다.

그러나 그에겐 미술이 있었다. 에민의 재능을 알아본 친구의 권유로 그는 단기 예술과정에 등록하고, 미술을 공부했다. 패션도 배웠다. 또 1984년에는 메이드스톤 미술대학(Maidstone Art College)에서 미술을 전공했으며, 1987년에는 런던의 왕립 미술아카데미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에드워드 뭉크와 에곤 실레를 좋아해 표현주의 회화를 그렸지만 1992년에 모두 파기해 버렸다. 


이듬해 에민은 “나의 창조적인 잠재력에 20파운드를 투자해달라”는 편지를 여러 사람에게 띄웠다. 그 편지에 답한 사람 중에는 훗날 에민의 남다른 작품세계에 매료돼 그를 캐스팅한 화이트 큐브(갤러리)의 제이 조플링(Jay Jopling)이 있었다.
조플링은 1994년 런던에 화이트 큐브 갤러리를 오픈하며 에민에게 개인전을 제안했고, 에민은 자신의 굴곡진 개인사를 고스란히 드러낸 각종 오브제와 기록물을 전시했다. 방안 곳곳에 나뒹굴던 낙서와 일기, 어린 시절 사진들과 파기해버린 그림을 찍은 사진을 내건 전시의 타이틀은 ‘나의 회고전(My Major Retrospective)’이었다.

어둡고 팍팍했던 지난 삶을 대중에게 낱낱이 드러낸 전시는 큰 반향을 일으켰고, 에민은 동시대 작가들과 친분을 쌓게 되었다. 이들이 바로 오늘 세계 미술계를 쥐락펴락하는 ‘젊은 영국 미술가들’(yBa)이다.
마치 돌직구(?) 던지듯 자신의 과거를 고스란히 드러낸 작업을 시도한 그가 스타덤에 오른 것은 1995년이다. 자신이 태어난 1963년부터 22년간 함께 잠을 잤던 할머니며 가족은 물론, 남자친구, 섹스파트너, 심지어 낙태로 인해 태어나지 못했던 아기의 이름까지 모두 102명의 이름을 텐트 속에 낱낱이 밝힌 문제적 작품 ‘나와 함께 잤던 모든 사람들 1963-1995’ 때문이었다. 이 텐트는 1997년 찰스 사치가 주도한 ‘센세이션((Sensation)’전에도 출품돼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에민의 작업은 이처럼 지극히 자전적이다. 헝겊을 이용한 아플리케및 자수, 콜라주, 오브제, 모노프린트, 네온, 사진, 드로잉, 설치, 비디오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지만 작업의 내용은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는 1999년 ‘나의 침대’(1998)라는 설치작품으로 영국의 유명미술상인 터너 상(賞)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엉망으로 구겨진 시트로 뒤덮힌 침대 곁에, 빈 술병과 담배, 양말, 사용된 콘돔 등이 어지럽게 널려져 있는 이 작품은 대다수 사람들이 감추고 싶어하는 치욕적인 과거를 거리낌없이 내보였다는 점에서 이목을 집중시켰다.
‘과연 이런 너저분한 것까지 예술로 받아들여야 하는가’라는 비판도 없지 않았지만 에민은 ‘고백의 여왕’이란 닉네임을 얻으며 작가로서 확실한 발판을 마련했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나에게, 미술가가 된다는 것은 멋진 것을 만든다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2007년에는 베니스비엔날레에 여성작가로는 두 번째로 영국관 대표작가로 선정됐던 에민은 같은 해 로열아카데미 회원이 됐다. 또 켄트대학, 런던 메트로폴리탄대학 등으로부터 명예 박사학위를 받으며, 마침내 검증된 작가 반열에 올랐다. 심지어 그의 근작 네온 작품은 ‘너무나 시적이다’라는 평까지 받고 있다.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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