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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영란 선임기자의 art & 아트> 어긋나고 어색한 충돌…파편화된 시대 음미하다
서울대미술관 내달 17일까지‘ No comment’展
난해한 우리삶 표현 ‘Eye Contact’
관객 스스로 만드는 이야기 ‘BLA…’

최기창·유승호·문준용등 15명작가
회화·설치·미디어아트·비디오 통해
다양한 이미지 제시…관객 참여 유도



과거에 우리는 사랑하는 이에게 연필을 꾹꾹 눌러가며 밤새 편지를 썼고, 함께 책을 읽으며 감상을 나눴다. 그러나 요즘 세대는 어떤가? 카톡이나 SNS 속 핑크빛 부호를 수시로 쏴대고, 요모조모 손본 얼굴사진을 ‘휘리리’ 전송한다.

바야흐로 ‘하이퍼 텍스트’로 통칭되는 뉴미디어 시대다. 사고방식 또한 ‘확’ 달라졌다. 마치 언어 이전의 시대로 회귀한 듯한 현 세대의 사고방식은 뉴미디어와 결합하며 변해도 너무 변했다. 그 변화의 물줄기를 살펴본 전시가 서울대미술관에서 개막됐다. 이름하여 ‘No comment’ 전이다.

‘노코멘트’란 본래 ‘답을 알곤 있지만 말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미술관 측은 관객들에게 답을 설정하지 않았으니, 관객들 또한 굳이 답을 찾지 말라고 한다. 대신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의 충돌, 숏과 숏 사이에 감춰진 것(몽타주)을 음미할 것을 권한다. 이를 통해 날로 파편화, 분절화되는 새 시대 사고방식을 공유해보자는 것. 

도시의 고가도로, 광고판, 빌딩 등을 해체시켜 이를 독특하게 재조합한 정재호의 회화 ‘On the road’. 캔버스에 유채. 97x130cm. 뉴미디어 시대의 새로운 풍경화이다.
                                                                                                                                                                            [사진제공=서울대미술관]

오는 2월 17일까지 열리는 전시에는 김혜란, 노재운, 박정혁, 유승호, 이정후, 정재호, 최기창, 제임스 패터슨 등 15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이들은 회화, 설치, 미디어아트, 비디오, 애니메이션 등을 통해 다양한 ‘충돌이미지’를 제시하며 관람객 스스로 이를 조합하라고 손짓한다.

두 개의 대형 스크린이 마주보게 설치된 최기창의 영상작품 ‘Eye Contact’는 화면 속 두 인물이 마치 눈싸움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들은 사실 만난 적조차 없다. 무작위로 채택돼 싸우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이 ‘이유 없는 우연’은 알 수 없는 연결고리로 엮인 현대의 세계를 드러낸다. 그리고 불가해한 우리의 삶과 존재를 비춘다.

모두 25장의 드로잉으로 구성된 유승호의 글씨작업도 흥미롭다. 온갖 생각이 무의식의 흐름처럼 꼬리를 물며 이어지거나 분열하는 유승호의 작품은 컴퓨터에서의 글읽기 방식인 하이퍼텍스트를 꼭 닮았다.

뱅상 모리세의 컴퓨터를 위한 영화인 ‘BLA BLA’는 ‘시각+청각+촉각의 총체적 충돌’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작가는 관객이 트랙패트를 움직여 캐릭터를 변화시키며 즐기도록 했다. 물론 매끄럽지 않게 진행되는 캐릭터와의 대화는 관객에게 당혹감을 주지만 새로운 매체를 통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끌어낸다는 점에서 신선한 체험이 되고 있다.
관객 참여에 의해 작품이 매번 달라지는 문준용의 ‘Augmented Shadow’


문준용의 작품 또한 관객참여형 작품이다. 얼핏 보면 그림자놀이를 연상케 하지만 커다란 아크릴판 위 육면체를 움직이면 전혀 엉뚱한 영상이 주변으로 퍼진다. 알 수 없는 사운드도 들린다. 관람객은 혼돈에 빠지며 이 낯선 충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궁금해진다.

줄리아 포트의 애니메이션 ‘The Event’는 종말론적 러브스토리를 담고 있다. 사건의 진전이나 인물의 형상화 같은 전통적 기법 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쓰인 ‘한편의 시를 작가는 생과 사, 질서와 혼돈을 오가며 기이하게 표현했다. 상냥하지만 으스스함을 선사하는 것이 이 작품의 매력이다.

전시를 기획한 조나현 학예사는 “작가들이 보여주는 분절된 이미지는 큐비즘의 그것처럼 다차원의 모습을 한 화면에서 보여준다. 그 어긋난 이미지들이 주는 충돌은 난해하고 어색할 것이다. 그러나 어색함은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게 한다. 충돌을 마음껏 즐겨보라”고 했다. 입장료 3000원(관악구민 2000원). (02)880-9504



▶서울대미술관은?=서울대가 재학생 및 교직원, 서울시민의 문화 향수를 위해 설립한 미술관으로, 혁신적인 전시를 선보인다. 세계적 건축거장 렘 쿨하스가 공중에 붕 떠있는 것처럼 디자인한 건물 또한 유명하다.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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