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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해준 희망가족 여행기<37>남미의 슬픈 역사를 품고 절규하는 땅...볼리비아 포토시
[포토시(볼리비아)=이해준 문화부장]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 투어를 마친 다음 버스를 타고 광산도시 포토시(Potosi)로 향했다. 지금까지 안데스의 비경에 흠뻑 빠져 있었지만, 이제 안데스 주민들의 삶과 역사로 들어가는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남미의 빈국 볼리비아에서 굳이 포토시를 찾은 것은, 여기에 볼리비아와 남미의 굴곡진 역사가 축약돼 있기 때문이었다.

▶부를 향한 식민주의자들의 약탈=포토시 여행에 앞서 이곳의 역사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포토시는 해발 4090m의 고원에 자리잡은, 세계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도시다. 해발 3600m의 티벳 라싸보다 400m 이상 높다. 원초적으로 도시가 들어서기 어려운 곳으로, 스페인의 침략 이전에만 해도 고원의 작은 마을이었다. 하지만 은(銀)이 ’악마’를 불러들였다.

포토시와 붙어 있는 포토시산은 은이 풍부해 ‘풍요의 산’, 즉 체로 리코(Cerro Rico)라고 불렸다. 원주민들은 이 은이 대지의 신인 파차마마(Pachamama)의 것으로 믿고, 손을 대지 않았다. 하지만 스페인 정복자들은 달랐다. 체로 리코는 부를 가져다주는 ‘은으로 만들어진 산’일 뿐이었다. 스페인은 이를 노리고 1545년 척박한 고원에 도시를 건설했다.

’풍요의 산’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체로 리코’. 원래 5000m가 넘는 산이었지만 스페인이 침략한 150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450년간의 채굴로 지금은 4824m로 낮아져 있다.

체로 리코에서 은이 쏟아지면서 광풍이 불어닥쳤다. 1672년에는 인구가 20만명을 넘었고, 86개의 교회가 들어서는 등 세계에서 가장 크고 부유한 도시가 됐다. 1780년대 초까지 200여년 동안 4만1000톤의 은이 생산돼 스페인으로 넘어갔다. 이는 당시 세계 은 생산의 절반을 넘는 것이다. 채굴 광풍으로 5000m가 넘던 산이 현재 4824m로 300m 이상 낮아졌다니 그 열기를 짐작할 만하다.

광산엔 인디언 노동자들이 대거 동원돼 17세기 초에는 그 숫자가 6만명에 육박했다. 그래도 노동력이 부족해 식민 통치기간 아프리카 흑인 노예 3만여명이 수입됐다. 이를 통해 식민세력은 막대한 부를 향유했지만, 노동자들의 생활은 참혹했다. 좁은 갱도에서 보호장구도 없이 장기간 노동에 시달렸고, 중노동에 진폐증, 수은 중독으로 사망자가 속출했다.

하지만 1800년대 들어 은이 고갈되면서 포토시도 급격히 쇠락했다. 채굴업자들은 주석 생산으로 과거의 영화를 만회하려 했지만, 쇠퇴를 막을 순 없었다. 그럼에도 노다지를 찾는 행렬은 200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산 전체가 개미굴처럼 변해 언제 붕괴할지 모르지만, 주민들은 곡괭이와 다이너마이트를 들고 체로 리코의 좁은 갱도로 들어가고 있다.


▶폐허가 된 광산을 뒤지는 사람들=광산투어는 포토시 여행에서 필수다. 아침에 가이드를 만나니 먼저 서약서를 내밀었다. ’광산이 위험할 수 있으며 사고가 나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겁나는’ 서약서다. 어쨌든 투어를 하려면 사인을 해야 했다.

누런 광산 노동자복으로 갈아입고, 랜턴이 달린 핼멧을 쓰고 주의사항을 들은 다음 ’광부들의 시장’으로 향했다. 광산에 필요한 각종 장비와 의류, 장화, 장갑, 헬멧과 코카잎, 술, 다이너마이트까지 팔고 있었다. 10년간 광산에서 일했다는 가이드 쵸코는 “이곳은 아주 험한 곳으로 깊고 좁은 갱도에서 며칠씩 일을 하기도 한다”며 “힘겨움을 잊기 위해 코카잎과 알콜 도수 95도의 술을 마신다”고 자못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는 다이너마이트를 휙휙 던지며 이 정도 위험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영화에 나오는 ’터프한’ 서부 총잡이 흉내를 내는 것 같았지만, 거기에 왠지 모를 절망과 슬픔이 배어 있는 것 같았다.

투어 참가자들이 돈을 추렴해 광부들에게 선물할 술과 간식거리를 산 후 체로 리코로 향했다. 도시를 벗어나자 바로 황량한 산이 나타났다. 거대한 산이 나무 한포기, 풀 한포기 없이 파헤쳐진 채 맨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갱도에서 퍼낸 흙과 자갈이 곳곳에 산더미를 이루었다. 200여년 동안 스페인이 약탈하듯 철저히 빼먹고, 지금은 현지 주민들이 남은 광맥을 찾아 사투를 벌이는 곳이다.

’체로 리코’의 한 갱도로 광부들이 들어가고 있다. 갱도의 열악한 작업환경과 취약한 보호장비로 포토시 광산 노동자의 평균수명이 40세 전후라고 한다.

좁은 갱도로 들어가자 지열과 광산 특유의 돌가루 냄새가 후끈 올라와 숨이 막혔다. 더 안으로 들어가자 갱도가 사방으로 미로처럼 이어져 있었다. 조금만 한눈을 팔다간 길을 잃기 십상이었다. 쵸코는 “정부는 붕괴 위험을 경고하지만, 우리는 먹고 살기 위해 굴을 판다”며 “지금도 약 2만명의 광부가 여기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쵸코는 여행단을 ’삼촌’이라는 의미의 수호신인 ‘엘 티오(El Tio)’ 앞으로 안내했다. 머리에 뿔이 있고, 얼굴은 사람과 라마가 합쳐진 형상이고, 가운데 남근이 두드러져 있다. 광부들은 이 신이 건강(안전)과 복(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믿는다. 대지의 신인 파차마마가 광산의 독특한 문화와 결합해 생긴 신이다. 엘 티오 앞에는 광부들이 바친 코카잎과 술병, 담배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쵸코는 “우리는 엘 티오가 허락해야 광맥을 찾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항상 의식을 치르고 일을 한다”고 설명했다.

광산 내부엔 광맥을 찾아 다이너마이트를 터트리고 드릴과 곡괭이로 파고들어간 갱도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어떤 곳은 버팀목도 없이 사람이 기어들어가야 하는 좁은 곳도 있었다. 필사적으로 은을 찾은 흔적이었다. 1시간 남짓 갱도 투어를 하는 것도 힘든데, 여기서 며칠씩 일을 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열악한 환경 때문에 광부들의 평균수명이 40세 전후라고 한다.

’체로 리코’ 광산 내부에 있는 ’엘 티오’ 상. ’삼촌’이라는 의미의 광산 수호신으로, 광부들은 이 신이 자신들의 안전과 행운을 가져다 주는 것으로 믿고 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라마 희생제=밖으로 나오니 마침 한 갱도 입구에서 라마 희생제를 준비하고 있었다. 신에게 안데스 고원에서 서식하는 라마를 바치는 날이다. 노동자들도 임금을 받고 하루 종일 술을 마시며 즐긴다. 마당에선 20대로 보이는 청년들이 미량의 환각성분이 함유된 코카잎을 연신 씹으며 술을 마시고 흥겨워하고 있었다. 노인은 제수용품을, 아낙네들은 음식을 준비하고, 열살 남짓한 아이들은 마당을 이리저리 오가며 즐거운 모습이다. 고통을 희망으로 녹여내는 축제는 어디나 비슷하다.

준비가 끝나자 갱도 앞에 묶여 있던, 송아지만한 라마를 끌어냈다. 먼저 라마의 입을 벌리고 맥주를 한병 들이부었다. 처음엔 격렬하게 저항하던 라마가 목구멍으로 밀려오는 맥주를 피하지 못하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코카잎도 한움큼 주었다. 사람들도 차례로 술을 나누어 마시고, 술을 라마에 뿌렸다. 광산의 주인 ‘엘 티오’의 가호를 간절히 빌면서...

술이 한 순배 돈 후 다시 청년들이 달려들어 라마를 결박했다. 운명을 직감한 듯 라마는 훨씬 더 격렬하게 저항했다. 청년들은 버둥거리는 라마를 단단히 묶어 쓰러뜨리고, 목을 통나무 위에 올리고, 날카로운 칼을 들이댔다. 라마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붉은 피가 큰 그릇에 울컥울컥 쏟아졌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광부들은 라마의 피를 갱도 입구에 뿌렸다. 다시 술이 돌았다. 처절하고 간절한 희생제였다. 인간과 동물의 필사적인 몸부림을 보면서 심장이 쉴새 없이 두근거렸다.

’체로 리코’의 한 갱도 앞에서 라마 희생제을 진행하기에 앞서 라마에게 맥주와 코카잎을 먹인 다음, 참가자들이 돌아가면서 술을 마시고 남은 술을 라마에 붓고 있다.

시장으로 돌아오자 원주민들로 붐볐다. 고원에서 1년에 몇cm밖에 자라지 못하는 ’귀한’ 나무들이 뿌리째 뽑혀 땔감으로 팔리고 있었다. 이것을 이렇게 땔감으로 쓴다면 황량한 고원에 남아날 게 없을 것 같았다. 나무시장 옆에는 수십 마리의 라마가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의 60~70년대 시장처럼 정감이 가면서도, 알 수 없는 슬픔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포토시는 인간의 욕망, 식민지와 자연에 대한 약탈, 원주민의 절박한 삶이 응축된 ’슬픈 도시’였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포토시는 유럽 식민주의자들이 남긴 깊은 상처에 아직도 신음하고 있었다. 그 약탈의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것을 비난할 수만도 없을 것 같았다. 산다는 게 무엇인지, 포토시를 떠날 때까지 답이 없는 원초적인 질문이 머리를 맴돌았다.

/hjlee@heraldcorp.com

포토시의 라마 시장. 남미 안데스 고원의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는 동물로 주민들의 주요한 단백질 공급원이며, 주요 의식을 할 때 신에게 바쳐진다.


<여행 메모>

여행기를 쓰고 있는 이해준 헤럴드경제 문화부장은 2011년 10월12일 한국을 출발, 아시아에서 유럽~남미~북미로 지구를 한 바퀴 도는 ’희망찾기 세계일주’를 펼쳤습니다. 전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인 아내, 대학생과 고등학생인 아들, 중학생 조카 등 5명이 시작한 이번 여행을 통해 이들은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면서 각자의 삶과 우리 사회의 새 희망을 찾았습니다. 때로는 우왕좌왕하고 티격태격하기도 하면서 진한 가족애도 쌓았습니다. 삶의 목표를 확인한 사람이 하나씩 귀국해 마지막 여정에선 아빠 1명만 남게 되는 이들의 생생한 여행 이야기는 인터넷 카페 ’하루 한걸음(cafe.daum.net/changdonghee)’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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