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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과거는 ‘개천서 용나는’ 등용문
조선왕조를 이끈 정치엘리트인 문과급제자는 양반 특권층의 전유물이었을 것으로 보는 일반의 시각과 달리 다양한 계층의 열린 무대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한영우 서울대명예교수는 조선 500년 동안 배출된 문과급제자 1만5000명의 신원을 ‘방목’ ‘족보’ ‘실록’등의 자료로 면밀하게 조사한 결과, 다양한 성씨와 본관에서 벼슬아치가 나왔음을 입증해 보여준다.

한 교수는 지난 5년간의 연구성과를 담은 ‘과거, 출세의 사다리’(지식산업사)에서 ‘방목’에 기록된 성관을 하나하나 헤아리며 급제자들의 신분을 밝혀나간다. 그 결과, 성관이 기록된 경우는 약 1000개. 성관이 기록되지 않은 급제자도 약 440명이나 됐다. 성관이 기록되지 않은 급제자들이 각기 다른 성씨와 본관을 갖고 있다고 가정하면 모두 1500개의 성관에서 급제자들이 배출된 셈이다.

당시 성관이 대략 3000개 정도로 볼 때 절반 정도에서 문과급제자가 배출된 것이다. 이 가운데 인구가 많은 대성이 들어있는 점을 고려하면 대부분의 성관에서 문과급제자가 나왔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는 과거제도가 ‘개천에서 용나는’ 신분이동에 기여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저자에 따르면, 조선시대 양반과 평민의 구별은 뚜렷하지 않다. 조선시대 벼슬아치는 양반집안에서도 나오고 평민 집안에서도 나왔으며 일단 벼슬아치가 나오면 누구나 양반으로 자처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노비를 제외한 대부분의 평민은 주관적으로는 양반이고 법적으로만 평민이란 얘기다.

태조대부터 선조대까지 다룬 이 책은 전 4권 가운데 제1권에 해당한다. 구체적 통계적 수치를 제시해 조선시대 신분구조와 사회사를 연구하는 데 밑자료를 제공한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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