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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작 압박 너무 힘들어 매일 악몽”
영화 화제작 ‘베를린’의 류승완 감독 인터뷰
100억원대 제작비 대한 부담 커
실패할수 있다는게 가장 큰 공포

액션도 장르도 이야기도 아닌
이제 최고의 관심은 그냥 사람…



지난해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광장에서의 촬영 때였다. 엑스트라 300명이 동원됐고 모든 준비가 완료됐다는 신호에 따라 류승완(40·사진) 감독이 현장으로 나갔다. 그런데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토록 공포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시계제로 사면초가의 전투 같았던 촬영을 끝내고 류 감독은 미국 체류 중인 박찬욱 감독에게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선배도 그런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할리우드 진출작 ‘스토커’로 제 코가 석자였던 박 감독은 “누가 누굴 걱정하겠느냐”면서도 “아이들 쌀값 번다고 생각해라, 영화는 우린 직업일 뿐이다, 한 걸음씩 가다가 아닌 것 같으면 다시 찍으면 되지 않겠니?”라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베를린’이 개봉한 29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류 감독은 “너무 힘들어 다 관두고 빵집이나 할까도 생각했다”며 “‘베를린’ 찍으면서 매일 악몽을 꿨다, 인성 파괴 경험이었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이 그렇게 싫었던 적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자본 규모에 대한 부담이 컸습니다. ‘보통 사람이 평생 구경할까 말까 하는 큰 돈으로 ‘없어도 그만 있어도 그만인’ 영화를 만들어?’라는 질문이 저를 계속 압박하더군요. ‘좀 한다고 판 벌여줬더니 류승완이 이것밖에 안 돼?’라는 평가가 나올 수도 있고, 이 영화가 실패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가장 힘들었어요.”

제작비 100억원대의 ‘베를린’은 각국의 비밀정보원이 여전히 암약하고 있는 베를린을 무대로 북한의 전설적인 첩보원과 남한의 국정원 직원이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는 액션스릴러 영화다. 류 감독은 각종 스파이 영화와 관련 도서는 물론이고 전직 국정원 직원, 외국 정보요원, 탈북자 등을 만나 취재했다. 누명을 쓰고 모든 것을 잃은 뒤 복수에 나서는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몽테 크리스토 백작’과 샘 페킨파 감독의 영화 ‘철십자 훈장’은 ‘원형’격인 작품이고, ‘본’ 시리즈의 원작자인 로버트 러들럼, ‘쟈칼의 날’의 프레드릭 포사이스,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의 존 르 카레 등은 ‘베를린’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동백림 사건의 무대, 신상옥-최은희 부부의 탈북 출발지, 작곡가 윤이상과 학자 송두율의 망명지. ‘부당거래’로 베를린 영화제를 방문했을 때 류승완 감독은 “바로 여기”라고 결심했다. 
영화 `베를린` 류승완 감독.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영화에는 분명 분단 현실이 작동하고 있지만, ‘베를린’은 분단ㆍ이념ㆍ정치에 관한 작품이 아니라 평생을 믿어온 신념에 균열을 느낀 개인ㆍ스파이라는 특수한 직업을 가진 사람, 욕망을 쫓는 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냉전 시대 이후의 모든 스파이 영화의 본질은 결국 자기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류승완 감독은 데뷔 이후 특히 주류와 B급, 리얼리즘과 판타지를 넘나드는 감성과 액션ㆍ코미디에 대한 감각, 뛰어난 스토리텔러로서 주목받았으나 그는 “이제 관심은 액션도 장르도 이야기도 아니고 그냥 사람”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한국의 해방 전후 근현대사의 격변기를 살았던 사람들에 제일 큰 흥미를 느낀다고도 했다. 차기작 구상을 묻기에 일렀지만, ‘베를린’은 류승완을 한국 관객이 다음 작품을 가장 기다리는 감독으로 만들기에 충분히 뜨거운 작품이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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