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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윤재섭> 대설의 교훈…성숙한 시민의식이 아쉽다

눈이 유희(遊戱)였던 유년시절의 추억이 떠오른다. 눈이 쌓이게 무섭게 빗자루와 삽 한 자루씩을 쥐고 대문 밖을 나서던 동네 어른들…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됐지만 그만큼 성숙한 어른이 되지 못한 오늘이 부끄럽다.




새해 첫 절기 입춘(立春)에 만난 눈이 고약하다. 중부지방을 뒤덮은 눈은 서울에만 16.5㎝가 쌓여 12년 만에 최대 적설량을 기록했다. 이로 인해 4일 출근길은 꽁꽁 막혔다. 지하철 운행이 지연되고, 달리던 지하철이 가다 멈추는 크고 작은 사고가 잇따랐다. 버스는 미끄러운 눈길에 기우뚱대며 거북이걸음을 했고, 승용차는 길 한복판에서 멈춰선 채로 꿈쩍이지 않았다.

제설차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대로(大路)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골목길은 위험천만의 교통지옥이다. 이면도로에는 승용차들이 눈길에 얽히고설키면서 좁은 도로가 주차장으로 돌변했다. 경사가 조금이라도 있는 오르막 내리막길에선 주춤하다 접촉사고를 내는 차량들이 부지기수였다. 세계 일류 도시를 꿈꾸는 서울은 16.5㎝ 적설량의 눈 앞에 체면이 많이 구겨졌다.

그렇다고 눈 관리 대책이 미흡했던 정부와 서울시를 탓할 생각은 없다. 문제는 시민의식, 주민정신이다. 눈이 와도 치우는 사람이 많지 않다. 동네 골목길은 주민의 터전인 까닭에 이곳에 쌓인 눈은 주민 손에 의해 치워지는 게 맞다. 좁다란 골목길마저 행정력이 미치길 바랄 수는 없다.

하지만 골목길은 물론 내 집 앞에 쌓인 눈마저 외면하는 일이 다반사다. 쌓인 눈이 녹았다 얼면서 대문 밖 길이 빙판길이 돼도 상관하지 않는 주민들이 있다. 행인이 집 앞에서 넘어져 큰 사고를 당하든 말든 관심없다. 나만 안전하고, 편하면 된다는 투다. 집 앞에 건물이 들어서면 일조권 피해를 받는다 해서, 인근에 큰 공사가 있으면 소음공해가 심하다 해서,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 유흥점이 들어서면 주거환경이 안 좋아진다 해서 목청을 높이던 거주민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다.

아파트 거주민들은 심하면 심했지 덜 하지 않다. 단지 안에 눈이 발목까지 차도 ‘내 일이 아니다’는 식이다. 관리사무소에서 눈 치우기를 독려하지만 못 들은 채 집안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 주민들이 대다수라고 한다. 동료 서너 명과 단지 내 눈치기에 한창이던 한 경비원은 “관리비가 많이 나온다며 경비원 감원을 주도했던 주민대표도 눈은 경비원들이 치워 달라며 떠맡기는데 주저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권리에는 항상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 자기권리 외에는 안중에도 없다면 성숙한 민주 시민사회를 기대할 수 없다. 사리사욕으로 가득한 시민들의 다툼만 있을 뿐이다.

눈이 유희(遊戱)였던 유년시절의 추억이 떠오른다. 눈이 쌓이기 무섭게 빗자루와 삽 한 자루씩을 쥐고 대문 밖을 나서던 동네 어른들. 눈싸움에 눈썰매 타기, 눈사람 만들기 재미에 흠뻑 빠진 개구쟁이들에게 “한켠에서 놀아라” 호통을 치시면서도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이마에 김이 나도록 열심히 집 앞 눈을 치우시던 분들. 행인들이 지나는 길에는 누군가 넘어질까봐 연탄재를 깨트려 놓고, 외출 중인 이웃집 대문 앞의 눈도 누가 먼저 치울 새라 부지런을 떠시던 분들. 세월이 흘러 어느 새 그만한 나이의 어른이 됐지만 그만큼 성숙한 어른이 되지 못한 오늘이 부끄럽다.
 
i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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