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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RT를 통해 300년 미국역사와 미국인의 삶을 본다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미술은 문화다. 그림이 그려지는 시대의 사람들의 모습과, 그들의 삶, 그들의 의식이 담기기 때문에 우리는 미술을 통해 역사를 읽을 수 있다.

‘미국 미술을 통해 미국의 역사와 문화를 조망하고, 미국인의 삶을 살펴본다’는 취지의 대규모 전시가 열린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영나)은 ‘세계 현대미술의 심장’으로 불리는 미국 미술의 지난 300년 궤적을 조망하는 ‘미국 미술 300년(Art Across America)’전을 5일 개막했다. 오는 5월 19일까지 열리는 이 특별전에는 잭슨 폴록, 앤디 워홀, 재스퍼 존스 등 미국 현대미술의 슈퍼스타는 물론 존 싱글턴 코플리, 윈슬로 호머 등 미국인들이 각별히 사랑했던 작가들의 대표작이 망라됐다.


이번 기획전시의 의미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미국의 현대미술 뿐 아니라, 우리에겐 다소 낯설었던 18~19세기 미국 미술의 면모를 한자리에서 음미할 수 있다는 점. 유럽의 인상파, 후기 인상파, 입체파 미술 등에 가려 거의 소개될 기회가 없었던 미국의 이 시기 그림과 공예품을, 미국이 자랑하는 기라성같은 작가들의 현대미술품과 함께 체계적으로 살펴봄으로써 미국 근현대 300년사를 훑을 수 있는 흔치않은 자리인 셈이다. 



김영나 관장은 “한국인들에게 그동안 미국미술 감상은 편식이 좀 있었던 편이다. 팝아트와 혁신적인 현대미술 등만 알려져 있으나 근대기 회화들은 또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다. 광활한 대지를 그린 풍경화는 매우 낙천적이고, 야생적이다. 소박한 가운데 자연과 공존하려 하는 정서가 느껴진다. 미국적인 특징이 잘 살아있는 작품들을 통해 미국문화가 지닌 전통과 다양성, 시대적 전환기마다 보여준 혁신성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첫 전시실에서 만나는 미국의 국부(國父) 조지 워싱턴의 초상화에서부터, 마지막 전시실의 재키의 초상(워홀 작)까지 모두 168점에 달하는 회화ㆍ공예품은 18~20세기 미국 역사 300년을 집약해 보여준다. 작품들은 미국 서부를 대표하는 미술관인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LACMA)을 비롯해, 필라델피아미술관, 휴스턴미술관, 테라미술재단에서 빌려온 것들로, 각 미술관의 핵심작이 한국 땅을 밟았다.



이를테면 필라델피아미술관은 미술관의 간판급 작품이자, 식민시대 막바지에 그려진 ‘캐드왈라더 가족 초상’(1772)을 대여해줬다. LACMA는 르느와르풍의 사랑스런 가족화로 유명한 메리 카사트의 ‘조는 아이를 씻기는 어머니’를, 테라 미국미술재단은 미국의 첫 예술그룹인 ‘허드슨강 화파’인 토마스 콜의 작품을 대여했다. 탄탄한 현대미술 컬렉션을 자랑하는 휴스턴미술관은 로버트 마더웰,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대작을 내놓았다.


이번 전시는 6부로 짜여졌다. 1부 ‘아메리카의 사람들’에서는 18세기 초 미국 화단의 중심 장르였던 초상화가 대거 출품됐다. 유럽의 초상화에 비해 어딘지 어눌하고 촌스럽지만 정공법으로 대상의 특징을 소화하려한 것이 특징이다. 또 부유한 유럽 출신의 정착민에서부터 아메리카 원주민, 흑인, 여성까지 사회의 전계층을 두루 담은 인물화들은 식민시대 인간군상을 마치 파노라마처럼 다채롭게 보여준다.

특히 18세기 미국 초상화 중에서 가장 걸작으로 꼽히는 ‘캐드왈라더 가족의 초상’(찰스 윌슨 필 작)과 함께 그 시기 고급스런 의자와 테이블, 식기로 구성된 18세기 응접실의 모습은 유럽을 넘어서고자 했던 정착민의 강렬한 열망이 잘 드러나 있다.


2부 ‘동부에서 서부로’에서는 풍경화가 주를 이룬다. 독립 이후 미국의 영토확장 열기를 19세기 초 유행했던 풍경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윌리엄 스미스 주윗의 회화 ‘약속의 땅, 그레이슨 가족’은 캘리포니아가 내려다 보이는 시에라네바다 산에 오른 개척자 그레이슨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사슴가죽 옷을 입고 소총을 든 그의 모습에선 당당함이 넘쳐난다.

눈부신 빛과 포근한 대지를 화폭에 담은 허드슨강 화파들의 풍경화는 거대국가인 미국의 정체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한편 미국민의 서부 진출로 인해 땅을 빼앗긴 인디언들의 문화도 함께 소개돼 눈길을 끈다. 특히 프레데릭 레밍턴이 그린 ‘목동’은 추운 겨울, 뼈만 앙상하게 남은 말 위에 올라탄 원주민의 처량한 모습에서 당시 미국의 화가들은 정착지를 잃고 헤매는 원주민에 주목했음을 알 수 있다.


3부와 4부에서는 남북전쟁 무렵부터 19세기 후반 대호황 시대까지 미국인의 일상을 다룬 풍속화와 정물화가 출품됐다. 미국 사실주의 회화의 두 거장, 윈슬로 호머와 토마스 에이킨스의 대표작을 만날 수 있다. 


윈스로 호머의 1874년작인 ‘건전한 만남(禁酒모임)’이란 풍속화는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다. 호머는 다이나믹한 해양풍경화와 강인한 남성성이 느껴지는 그림으로 유명하지만 초기작인 이 그림은 지극히 목가적이다.

작품의 타이틀은 당시 미국 전역에서 불었던 금주운동에서 비롯됐다. 호머는 무거운 우유통을 힘껏 움켜쥔 여성이, 농장의 남자 일꾼에게 우유를 권하고 있는 순간을 포착했다. 이 그림은 ‘많은 후유증을 일으키는 술 보다는, 우유나 물을 마셔라’는 당시의 슬로건을 담고 있는데 두 남녀의 시선을 애써 엇갈리도록 표현함으로써 술의 유혹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반듯한 태도과 엄격한 예의범절을 시사하고 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오늘날 미국의 국가 상징이자 아이콘으로 각 분야에서 널리 쓰이는 당당하고 위엄있는 독수리가, 19세기 펜실베니아의 독일계 이주민들의 질박한 독수리 조각에서 유래됐다는 점이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독수리 조각’은 독일계 이민자인 빌헬름 쉼멜이 소나무를 깎아 만든 채색조각으로, 지극히 소박한 형상을 보이고 있다. 



5부에서는 20세기 미술이 소개된다. 급속한 도시화로 방황하는 인간, 이방인의 고립감을 표현한 ‘8인회’의 작가 로버트 헨라이 등의 회화를 만날 수 있다. 아울러 미국의 추상과 입체주의 미술을 이끌었던 찰스 데무스, 조지아 오키프 등 미국 모더니스트들의 환상적인 작품도 내걸렸다.


마지막 전시실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미술이 추구했던 담대하면서도 혁신적인 변화를 살필 수 있다. 유럽을 제치고 세계미술의 메카로 부상하며 추상표현주의, 팝아트를 이끌었던 현대 작가들의 작품에선 강력한 에너지와 실험정신이 넘쳐난다.

이번 전시는 당대 미국의 삶을 생생히 느낄 수 있도록 입체적인 전시 방식을 취한 것이 특징이다. 미국의 유명화가들의 그림을 빼어난 공예품과 함께 전시함으로써 미국의 문화사를 보다 잘 이해하도록 했다. 입장료 성인 1만2000원, 중ㆍ고교생 1만원, 초등생 8000원. 문의 1661-2440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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