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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회동 한옥마을 초입에 자리한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디지털시대에 ‘오래된 미래’ 를 찾다
아늑한 서재인듯 꿈속 동굴인듯
지식과 성찰의 공간 마련

국내외 유명 디자인 도서 보유
1차적으로 1만1500권 비치
절판·희귀본도 3000권에 달해

문고리에서 선반·의자 하나까지
까다로운 디자인 전략 반영




조선왕조의 정궐(正闕)인 경복궁과 아름다운 처마선을 지닌 한옥들이 빼곡히 자리잡은 서울의 북촌. 한편에선 한국을 대표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이곳에 멋들어진 새 공간이 등장했다.

900여채의 한옥이 들어선 ‘가회동 한옥마을’의 들머리인 가회동 129번지(북촌로 31-18)에 그 모습을 드러낸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가 화제의 공간이다. 현대카드(대표 정태영)는 조선의 왕족과 사대부들이 모여 살던 한옥터 초입에 신개념의 라이프스타일 공간을 선보였다. 그것은 바로 도서관이다. 도서관이되, 오만가지 책을 두루 소장한 도서관이 아니라 오로지 ‘디자인 서적’만을 집중적으로 보유한 도서관이다.

▶아날로그적 공간에서 ‘몰입과 영감’의 시간을=지난해 초 현대카드는 가공할 정도로 빠르게 달려가는 이 디지털 시대에, 거꾸로 삶과 생각을 찬찬히 곱씹는 ‘아날로그적 삶’을 추구하자는 뜻에서 도서관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모두가 ‘빠름’과 ‘효율’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시점에서, 매순간 즉발적인 반응만 해댈 게 아니라 생각할 시간과 여유를 가져보자는 취지 아래 ‘지식과 성찰의 공간’인 도서관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이에 서울의 여러 곳이 물망에 올랐고, 가회동이 최종 낙점됐다. 가회동은 서울에서도 전통의 아우라가 가장 깊이 스며 있는 곳이자, 걸음까지도 절로 느려질 정도로 느림의 미학을 지닌 곳이기 때문이다. 라이브러리라는 정체성과도 꼭 들어맞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는 아날로그적 정서를 추구하되, 과거를 지향하지는 않는다. 서울에서도 가장 고즈넉한 곳이자 가장 오래된 곳에서, 미래를 지향하고 아름다움의 정점을 지향한다. 한 마디로 ‘오래된 미래’를 추구하는 셈이다. 또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에 새로운 제안을 하겠다는 뜻도 품고 있다.

5일 첫 공개된 도서관은 역시 ‘현대카드스럽다’는 느낌을 주었다. 문고리 하나에서부터 선반이며 의자 하나, 심지어 코트 보관표까지도 현대카드다운 완벽한 디자인통합을 이루고 있었다. 시중에 출시된 초록색 탁구대가 도무지 성에 차지 않아 미니멀한 탁구대를 따로 디자인해 쓰고, 생수병이며 머그까지도 현대카드스럽게 디자인해 쓸 만큼 더없이 까다로운 현대카드의 디자인전략이 대중을 위한 도서관에서도 여지없이 반영된 것. 

 

지상 1, 2층에 연면적 495㎡(150평)의 별로 크지 않은 이 도서관은 매우 아늑한 서재이자, 꿈속의 동굴 같은 모습을 띠고 있다. 건물 중심부에 중정, 즉 네모난 앞마당을 둔 ㅁ자 형태의 건물은 사방이 유리로 뻥 뚫려 빛이 사방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한 마디로 빛의 공간이다. 때문에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안락한 소파에서 근사한 디자인 서적을 이리저리 펼쳐보는 묘미는 각별하다. 시간도 마냥 천천히 흐를 것 같다.

과거 갤러리였던 공간을 도서관으로 리노베이션하는 작업을 맡은 건축가 최욱 씨는 “메인 공간인 2층의 한쪽은 안채, 한쪽은 사랑채처럼 꾸몄다”고 했다. 안채에는 너른 테이블을 중심으로 사방에 서가가 빽빽이 들어찼다. 멋지고 호사스런 디자인 서적이며 잡지들이 ‘나를 한번 살펴봐달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건너편 사랑채에는 ‘집 속의 집’이 만들어졌다. 최 씨는 “건물의 사방이 유리로 뚫려 있어 구심점이 필요했다. 해서 집 속의 집을 만들었다. 도서관다운 정적이 흐르는 곳, 벽이 둘러쳐진 열람실에서 마음껏 책에 빨려들도록 했다”고 밝혔다.

최 씨가 만든 집 속의 집은 어린 시절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다락방을 연상케 한다. 도서관 안에 별도로 지어진 이 삼각형의 작은 집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공상에 빠져들 수 있는 나만의 다락방이라 하겠다.

 
도서관도 이렇게 럭셔리하고, 아름다울 수 있음을 보여주는 첫 사례가 서울 가회동에 등장했다. 국내 기업 중 통합된 디자인 전략을 가장 치열(?)하고도 면밀하게 펼쳐온 현대카드가 5일 오픈한‘ 디자인 라이브러리’는 희귀 디자인서적과 명품 아트북을 비치하고 대중에게‘ 몰입과 영감의 시간’을 가져볼 것을 권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카드]

또 하나, 옥상으로 이어지는 3층 통로에 조성된 내밀한 방도 도드라진다. 책을 읽다가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디자인된 이 작은 방은 어쩌면 서울 북촌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공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해가 뉘엿뉘엿 지는 저녁 무렵이나 별이 뜨는 밤에 이 내밀한 방은 방문객들을 매료시킬 것임에 틀림없다.

▶디자인 희귀도서 등 1만1500권의 국내외 도서 망라=현대카드가 공간 디자인 및 연출 못지않게 신경을 쓴 것이 바로 도서 선정이다. 이 회사는 독일 바우하우스 이후의 디자인을 조망하는 국내외 유명 디자인 도서를 대거 구입했다. 바우하우스는 미니멀하고 모던한 현대 디자인의 원류로, 현대카드가 추구하는 디자인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에는 1차적으로 1만1500권의 책이 비치됐다. 비치 도서는 대부분 새로 수집한 것으로, 국내외 도서전문가들을 북 큐레이터로 초빙해 한 권, 한 권씩 큐레이팅한 것이 특징이다. 이에 따라 전체 도서 중 70% 이상은 국내에 처음 선보이는 책들이다. 또 이 중 약 3000권은 더 이상 출판되지 않는 절판본이거나 희귀본이란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이를 테면 포토저널리즘의 정수로 평가되는 ‘라이프’ 매거진의 전 컬렉션을 비롯해, 1928년 이탈리아에서 창간된 세계적 권위의 디자인/건축 잡지인 ‘도무스’ 등이 포함됐다. 여기에 세계적인 아트북 출판사인 파이돈, 타센의 한정판 화집과 도서도 비치됐다. 이들 희귀본 또는 명품 도서 구입에 현대카드는 가장 많은 예산을 투입했다.

아울러 디자인 영역의 분류부터 도서선정 원칙, 도서라벨, 청구기호 등 라이브러리 운영 전반에 있어서도 기존 도서관과는 달리 고유한 방식을 새롭게 만들어 적용하는 등 모든 측면에서 고집스런 면모를 보이고 있다.

이 도서관은 유감스럽게도 현대카드 회원에게만 개방(월 8회까지 무료)된다. 비회원도 현대카드 회원과 함께 방문할 경우 무료(동반 1인)로 출입이 가능하다. 또 복닥거림을 피하기 위해 한 번에 50명까지만 입장할 수 있다. 따라서 주말에는 번호표를 받아 바깥에서 대기할 각오도 해야 한다. 운영시간은 화~토요일은 오후 1시부터 10시까지이며 일요일은 오전 11시~오후 6시까지(월요일은 휴관)이다.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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