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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의 부국강병은 속빈강정?
中 사상가 쉬지린, 문명 결여된 부강의 문제점 제기…계몽 의미 재조명 통해 지식인 역할론 강조
그동안 부와 힘 자랑을 해온 중국이 변하기 시작한 걸까. 중국 내부에서 계몽주의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청말 이후 지금까지 한 세기 반 동안 중국은 부강을 기치로 내달려왔고 이제 비로소 그 꿈을 이뤘다. 그러나 이는 반쪽짜리 성공이라는 인식이 지식인 사이에서 싹트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꿈꾸는 강국은 부강과 문명의 두 바퀴가 원활하게 잘 돌아가는 것인데, 지금의 모습은 가치는 사라지고 물질과 욕망만 팽배한 불구라는 인식이다.

중국은 본래 유교적 전통에 따라 물질적 부보다 덕성, 인생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겨왔지만 청말 나라의 존폐 앞에서 모든 가치가 전도됐다. 쇠락할대로 쇠락한 중국이 택한 길은 무엇보다 부국강병이었다. 응급상황에 대처하는 게 우선 급했기 때문이다.

청말 사대부인 양두(楊度ㆍ1875~1931)는 금철주의(金鐵主義)를 내세우며 부국강병을 이끌었다. 독일 비스마르크를 따른 이 논리는 청나라 말기부터 중화민국, 마오쩌둥 혁명시기를 거쳐 오늘까지 중국을 관통하는 국가 발전의 동력으로 작용한다.

중국의 부상이 기정사실화한 요즘, 이제 힘을 빼고 정신적 가치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목소리가 나오는 건 당연해 보인다. 이를 주장하는 선두에 역사학자 쉬지린이 있다. 20세기 중국 사상사와 지식인 연구의 권위자인 쉬지린은 ‘왜 다시 계몽이 필요한가’(글항아리)에서 중국이 진정한 강국이 되려면 이제 강국의 다른 축인 문명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고 역설한다.

 
“어떻게 중국의 특수성 속에서 문명의 보편성을 발현할 수 있을까? 그리고 더 나아가 중국의 특수성을 보편적 인성에 부합하는 보편성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까? 이는 부강을 실현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오랜 시간을 요하는 문명 전환 작업이다.”(본문 중)

그는 “최근 급부상한 중국의 세계적 위상은 결국 19세기 중반부터 존재해왔던 강국의 꿈의 실현에 불과하다”며 “중국은 진정 도덕적 대국이 되기 위한 담론적ㆍ문명적 경쟁력을 가졌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일침을 놓는다.

중국 근대 사상의 계보와 서양철학과 사상을 훑어내며 그가 보여주려는 것은 문명이 결여된 부강, 강권이 얼마나 허약하고 야만적인지다. 이를 통해 중국이 이제 힘써 나가야 할 길은 개혁개방 30여년 동안 성취한 특수한 근대성의 결과를 보편적 문명과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에 모아진다. 그는 이 과정에서 지식인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보고 이론 축적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쉬지린은 모두 4부로 구성된 묵직한 이 책의 첫 번째 화두로 ‘공론장과 지식인’의 존재를 앞세운다. 쉬지린은 문학과 카페ㆍ살롱이 중심이 된 유럽의 공론장과 달리 중국은 신문과 학회ㆍ학교가 공론장의 기본요소였으며, 공론장 구축도 문학이 아니라 곧바로 정치를 매개로 했다는 점에서 다름을 얘기한다.

저자에 따르면 중국 도시지식인이 탄생한 건 민국시대다. 이 시기 근대적 지식교육 체계와 출판미디어 산업이 갖춰지면서 도시 중심의 물질적 직업분화와 정신적 문화 네트워크가 형성되며 이를 통해 근대적 의미의 지식인이 제 모습을 띠기 시작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지식계는 심각한 사상적 분화를 겪으며 공공지식인은 설자리를 잃고 만다.

저자는 중국의 문제적 현상을 돌아보며 2008년 중국에서 화제가 된 ‘앵그리 차이나’가 놓치고 있는 지점을 꼬집는다. 동서양의 문명적 가치 교류와 융합을 중시해 그것을 중국의 문명적 양분으로 삼아야 한다고 여기는 쉬지린은, 미국을 주된 적으로 간주하고 할 일은 하고 할 말은 해야 한다는 이 책의 논리는 서양의 강권 논리를 모방하고 ‘칼 들고 장사하기’를 선동할 뿐이라며 한계를 지적한다.

그는 중국 자체의 근대성 혹은 문화정체성을 찾으려는 시도에 대해서도 반계몽, 보편적 이성주의에 대한 반항으로 보고 역사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역사주의 비판을 통해 쉬지린이 일관되게 경계하는 것은 문화상대주의, 허무주의 경향이다. 쉬지린은 최근 중국 내 힘을 얻고 있는 중국 모델론 역시 역사주의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본다.

쉬지린이 주장하는 것은 특정한 민족성보다는 궁극적인 도덕적 가치와 보편적 가치의 중요성이다. 민주질서 수립을 위한 문제의식과 이성적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다리를 놓아야 하는 이들이 쉬지린에 따르면 공공지식인이다. 중국의 지적 계보를 그려내며 문명사적 전망을 제시한 저자의 통 큰 시각을 만날 수 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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