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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인자를 잡아라”, 진짜 형사들이 범인 잡았던 연극 ‘쉬어매드니스’
미용실 위층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아무도 드나들지 않았고 같은 건물엔 손님으로 위장해 잠복근무하던 혜화경찰서 강력1팀의 강우진 형사와 신참 형사 조영민, 미용사 조호진(조지), 일을 돕는 수지와 손님으로 찾아온 골동품 딜러 오준수, 강남 사모님 한보현, 이렇게 6명 만이 현장과 가까이 있었다.

유명 피아니스트 송채니가 바로 위층에서 살해됐다. 범행에서 빠져나갈 확실한 알리바이를 가진 사람은 어느 누구도 없고 누가 범인인지 당최 종잡을 수도 없다. 모두가 범인이 될 수 있는 상황, 그럼 과연 누가 살인자란 말인가. 하지만 분명 이들 중 범인이 있다.

관객의 투표로 매일매일 범인이 달라지는 연극 ‘쉬어매드니스’. 관객이 그날의 분위기에 따라 매번 다르게 범인을 결정짓지만, 용의선상에 선 이들 중 누가 가장 범인에 가까울까. 현직 강력계 형사들이 짚은 범인은 과연 누구일지 지난 5일 경력 5년차 이상의 형사 세 사람과 경찰서를 출입하는 본지 사회부 사건팀 기자 두 명이 연극을 관람하며 함께 범인을 추적해 봤다. 형사들의 요청에 따라 이름과 소속은 밝히지 않기로 했다.

▶10년차 형사의 감각. 오준수, 범인은 바로 너!=경력 10년차 박 모(38) 형사가 살인 가능성이 가장 높다며 지목한 범인은 골동품 딜러 오준수. 단정하고 잘생긴 외모 뒤에 살인의 흔적이 숨어있다.

 
                                                                                                                                    [사진제공=뮤지컬해븐/노네임씨어터컴퍼니]

“막내 신참형사가 어설프게 행동하고 웃음을 주는 것 하며 비슷했어요”라며 입을 뗀 박 형사는 네 사람 중 범행 가능성이 없는 사람들을 하나씩 지워가는 방법으로 범인을 추측했다.

“게이는 남자를 좋아하지 여자를 좋아하진 않잖아요”라고 말하며 용의선상에서 게이 미용사 조호진을 과감히 제거한 그는 조호진의 치정에 의한 살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했다. 또한 층간소음으로 인한 우발적 살인 역시 다른 용의자들에 비해 유력한 살인 동기가 되지 못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극 중에서 말 많은 한보연 여사는 용의선상에서 제외됐으니 범인은 두 사람 중 하나인데, 저는 범행을 저지를 수 있는 물리적 힘이 있느냐 없느냐만 생각했어요. 물론 수지도 유력했지만 여성이 송채니를 수차례 찌를 만큼의 힘은 없을 거고 그래서 살인하기 힘들 거란 생각이 들었죠.”


용의자를 지워나가며 남은 범인은 오준수. 힘도 있고 다른 사람에 비해 범행동기도 충분하다. 박 형사는 유난히 화장실 물소리에 집착했다.

“저 나름의 시나리오를 만들었죠. 오준수는 범행 직후 화장실 변기물을 내리며 가위를 버렸을거고 범행 도중 손을 베었을 겁니다. 알리바이를 위해 병조각엔 나중에 피를 묻힐 수 있고요.”

범행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연주가 녹음된 테이프를 틀었고 범행도구를 은폐한 것이란 판단이다. 박 형사는 오준수가 수지가 유산을 상속하게 될 것을 알 것이란 가정하에, 수지와의 애정관계는 유산을 차지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둘과의 관계가 악화되기 전 유언장이 바뀌지 않도록 그가 저지른 살인이라고 최종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박 형사의 이런 추측에도 불구하고 이날 관객들은 여자 미용사 수지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매력 속에 숨겨진 치명적 살의(殺意), 그리고 그들이 지목한 공범의 가능성=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하물며 한겨울에 한을 품었으니 서리가 아니라 살인도 일어날만 하다. 오뉴월 서리를 향한 강한 이끌림, 경력 5년차인 김 모(33) 형사와 본지 사건팀 기자(3년차)가 범인으로 지목한 범인은 바로 매력 덩어리 미용사 수지다.

김 형사의 입에서는 “기발하더라”란 말이 먼저 나왔다. 그가 범인을 추정한 방법은 가장 큰 살해 동기가 누구에게 있느냐는 것이었다. 수지는 유산상속에 대해 아는 바 없다고 진술했지만 전혀 배제할 수는 없고 스스로 송채니와의 관계를 털어놓은 만큼 애정관계로 인한 살인 가능성 두 가지를 모두 충족했다.


김 형사는 “오준수는 특별히 자신에게 돌아올 게 없는 사람이고 실질적인 최대 수혜자는 수지이기 때문에 꼭 한 사람을 꼽으라면 수지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마지막까지 놓지 않았던 것은 공범 가능성이었다.

“살인을 저지르는 건 남자가 더 유력하죠. 사실 힘으로 여성이 이렇게 살인한다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오준수와 수지가 함께 범행을 계획해 저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동석한 사건팀 기자 역시 비슷한 의견이었다. “처음엔 아예 공범이라고 생각했다”며 더 나아가 “오준수가 수지의 사주를 받고 두 사람이 오랜시간 계획한 범행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공범이란 선택지가 없어 이 기자 역시 범인으로 수지를 선택했다.

형사들은 모두 세밀한 단서에 집중하기보다 정황과 흐름을 통해 범인을 추적했고 살인 동기가 현실적으로 가장 분명한 사람을 살인자로 짚었다. 하지만 함께한 경력 7년차의 양 모(39) 형사는 판단을 유보했다.

▶범인을 찾아가는 재미, ‘쉬어매드니스’=모든 것이 다 시나리오대로 진행된다. 세밀한 단서 하나, 배우들의 애드립 하나도 전부 치밀하게 짜여진 틀 안에서 이뤄진다. 관객은 연극이 진행되는 중간 질문을 통해 의문점을 해결할 수 있고 사건 해결의 실마리는 전부 그 순간 나온다. 관객의 돌발 질문에도 배우가 대처하기 나름이지만 배우는 수많은 변수에 대해 시나리오에 지시된 대로 행동하며 넘기는 것이 가능하다.

실제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들 중 누구나 범인이 될 수 있다. 결말도 관객의 거수를 통해 그에 맞게 매번 달라지는 것이 ‘쉬어매드니스’가 줄 수 있는 즐거움이다.

작품을 관람한 형사들이 진지함을 벗어던지고 재미삼아 별점을 던져봤다. 박 형사의 별점은 5점 만점에 3개 반. “현장상황을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결정권을 관객에게 모두 넘겨버린다”는 것과 “형사 연기에 대한 사실성”이 절반의 감점요소였다.

김 형사는 4개 반의 후한 평점을 줬다. “형사들에게도 추리 의지를 이끌어냈고 서로 의견을 다르게 만드는 점에도 흥미가 있었다”는 자신의 즐거움이 섞여있어 냉혹하게 주관적인(?) 평가였다.

이 날 형사들로부터 피의자 감금, 강압수사 논란까지 불러일으키며 수사방법까지 지도하게 만든 연극 ‘쉬어매드니스’는 연일 쉬지 않고 대학로 문화공간 필링 2관에서 날카로운 추리로 범인을 잡아낼 관객을 기다린다.

문영규 기자/ygmo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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