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새책>북한은 왜 ’극장국가’를 택했나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폐쇄적인 그들만의 방식으로 체제를 유지해가고 있는 북한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은 의아스럽고 때로 위태롭게 보인다. 전근대적 정치체제 아래 개인의 생활은 물론 의식마저 저당잡힌 채 신음하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자본주의 경제적 요소 등 북한을 변화시키려는 어떤 시도도 벽에 부딪히면서 북한은 더욱 고립돼 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북한이 변하지 않으려 기를 쓰는 모습은 아리랑축전을 통해 확인된다. 10만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대집단 체조공연인 아리랑을 통해 북한이 세계에 전하는 메시지는 하나다. “나에게서 어떤 변화를 바라지 말라”는 얘기라고 전문가들은 해석한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트리니티칼리지 권헌익 석좌교수와 정병호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공저 ‘극장국가 북한’(창비)에서 북한 정치체제의 특수성과 체제 유지의 미스터리가 무엇인지 다각적으로 추적했다. 지난해 ‘North Korea: Beyond Charismatic Politics’ 라는 영어본으로 먼저 출간된 것을 번역한 책으로 5년여에 걸쳐 공동작업한 결과다.

저자들이 북한을 들여다보는 창은 ‘극장국가’라는 인류학적 개념이다. ‘극장국가’는 20세기 저명한 인류학자인 클리퍼드 기어츠가 1979년 인도네시아 발리 네가라의 사례를 통해 제시한 개념으로, 물리적 강제가 아닌 화려한 의례와 공연 등 과시의 정치로 통치되는 국가를 통칭한다. 저자들은 기어츠의 극장국가 개념을 발전시켜 북한의 상징정치, 예술정치를 분석해 나간다.

저자들은 북한의 극장정치의 출현을 1994년 김일성의 사망인 대국상 이후 전개된 대대적인 ‘추모와 그리움의 드라마’의 상영과 때를 같이한다고 본다. 다양한 음악과 연극 공연을 선보이고 대규모 건축에 열을 올리던 시기로, 김일성-김정일 권력승계가 이뤄지던 시점과 맞물려 있다. 이는 개인의 카리스마 권력을 세습적 형태로 변환, 정치체제의 중심인 카리스마 권력을 영속시키려는 작업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아리랑축전’은 북한의 극장국가 정치가 정점에 이른 시기의 산물이라는 평가다. 북한 정치체제의 기원과 역사, 미래의 열망을 담은 이 집단극은 참여한 시민들이 스스로 몸으로 이를 표현하면서 ‘일심단결’이라는 북한 고유의 상징을 체화하게 된다.

‘과시, 주시, 드라마’를 통한 북한의 미학적 권력의 생산은 사실 더 거슬러 올라간다. 1971년 약관의 김정일이 김일성의 60회 생일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만든 혁명 가극 ‘피바다’와 ‘꽃 파는 처녀’다. 이 두 작품은 아리랑의 핵심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저자는 북한의 경우 극장국가의 일이 전통적인 도덕개념의 재창조에 국한하지 않고, 김일성의 개인적 카리스마를 강력한 형태의 세습적 카리스마로 이전하기 위한 시스템의 개혁으로 진행됐다고 본다.

특히 김일성 시대로부터 김정일 체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북한은 극장국가의 핵심 상징으로 두 가지를 만들어낸다. 하나는 ‘김정숙’이라는 모범적인 모성 상징과 ‘총대’라는 빨치산 전설의 대표적인 물적 상징이다. 이 둘을 결합한 형태가 선군정치다. 다른 사회주의 혁명국가들과 달리 정통성을 유지하며 미국에 대항하는 유일한 국가라는 자부심과 함께, 자신의 정치체제를 절대적 가치로 여기는 정당성을 부여했다는 게 저자들의 해석이다. 북한의 정치체제를 단순히 탈사회주의적 시각으로 보아선 안 되는 이유다.

저자들은 또 북한의 시민윤리가 봉건왕조국가와 흡사한 전근대적인 유교적 윤리관을 따르고 있다는 일본 학자 와다를 비롯한 북한 전문가들의 주장을 반박한다. 북한정권이 끈질기게 강조하는 ‘충효일심’과 북한이 선택한 특정한 권력승계 방식이 봉건왕조국이라는 인상을 심어주지만 실은 다르다는 것이다. 충과 효의 미덕은 유교적 전통에서는 공과 사의 별개의 원칙인데, 이런 윤리적 원칙의 구별을 허물어 하나로 통합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대단히 현대적인 정치적 관행이라고 주장한다,

북한식 극장국가가 어떻게 유지되며 변화의 과정을 겪을 것인지도 관심사다. 막스 베버의 고전적 테마, 즉 카리스마 권력은 위기 시에 등장했다가 언젠가 일상의 질서로 돌아가면 서서히 전통이 사라져 전통적 권력이나 합리적ㆍ법적 권력에 그 자리를 내주고 마는 진리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다.

북한을 이해하는 기존의 방식, 탈사회주의적 전환이라는 시각과 다른 다원론적인 이해의 새로운 창을 열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의미가 있다.



/meele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