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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걸어서 지구 한바퀴… 이해준의 '희망가족' > 360도 돌고돌아 오른 마추픽추…‘신비’아닌‘역사’였다
<40> 잉카 신비주의의 실체를 찾아…페루 마추픽추
서쪽에 안데스 동쪽에 아마존밀림
천혜의 요새서 만난 7대 불가사의

바위로 깎아맞춘 정교한 건축물
잉카 과학기술의 탁월함에 감탄

불법반출 유물 여전히 반환 안돼
신비주의속 식민역사 아픔 그대로





[마추픽추=이해준 문화부장] 여행은 우리가 얼마나 편협한 인식을 갖고 있었는가를 일깨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유럽, 특히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여행할 때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했던 15~16세기를 ‘대항해 시대’, 도전과 모험의 시대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남미에서는 그것이 침략과 문명말살의 시대였다. 페루의 마추픽추(Machu Picchu) 여정은 바로 그 각성의 시간이었다.

▶450년 동안 잠자던 잉카 문명의 정수=아직 새벽어둠이 가시기 전, 쿠스코에서 버스를 타고 올란타이탐보로 향했다. 마추픽추행 기차(페루 레일)를 타기 위한 것이다. 올란타이탐보까지는 2시간 가까이 걸렸고, 거기서 다시 기차를 타고 1시간30분을 달려야 마추픽추에 도착할 수 있다. 마추픽추는 안데스 산맥에서도 가장 깊은 곳, 첩첩산중에 자리 잡고 있다.

마추픽추로 가는 방법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기차를 타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잉카인들이 만든 43㎞의 ‘잉카 트레일’을 2~4일 동안 걸어가는 방법이다. 잉카 트레일은 안데스의 비경과 그 속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잉카 유적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으며, 기차 여행도 그 못지않은 정취를 선사한다. 이미 안데스 고원을 종횡무진 누볐던 필자는 기차로 이동했다.

‘잉카 열차’는 환상적이었다. 우루밤바 강이 만든 깊은 계곡 사이에 놓인 구불구불한 철길을 천천히 달렸다. 천장은 유리로 만들어져 고개를 들면 파란 하늘과 협곡의 경치가 그림처럼 펼쳐졌다. 오스트리아의 알프스 열차나 노르웨이 피오르 협곡의 플램열차만큼이나 멋진 열차였다. 열차에서는 항공기 서비스처럼 스낵과 커피를 제공했고, 들뜬 분위기가 넘쳐흘렀다.

 
해발 2450m의 뾰족한 산봉우리 위에 어마어마한 바위와 돌로 만들어진 잉카 고대도시의 정수 ‘마추픽추’. 안데스 산맥의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해 접근조차 어려운 곳이다.

마추픽추는 삼면이 우루밤바 강에 접해 급경사를 이루며 우뚝 솟은 험준한 산봉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천혜의 요새였다. 서쪽으로는 400m가 넘는 안데스 고원이, 동쪽으로는 험준한 산을 넘어 아마존 밀림이 펼쳐진다. 접근 자체가 용이하지 않은 곳이다. 역에서 마추픽추까지는 450m의 깎아지른 절벽이다. 셔틀버스는 360도로 회전하며 구불구불 올라갔다.

사진으로만 보던 마추픽추를 대하자 입이 딱 벌어졌다.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마추픽추는 잉카 통일제국을 건설한 9대왕(재위 1438~1472년) 파차쿠티(Pachacuti)가 건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스페인의 정복 이후 역사에서 사라졌다. 스페인 군대가 도착하기 이전에 천연두(마마)가 퍼져 주민 대부분이 사망하면서 정복자들도 이를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450여년이 흐른 1911년, 미국의 역사학자 하이럼 빙엄이 이를 발견하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예일대 교수였던 빙엄은 산꼭대기에 고대도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11세 원주민 소년의 안내를 받아 산으로 올라갔다. 역사적 순간이었다.


▶첨단 기술로 만든 고대 최고의 계획도시=마추픽추는 스페인 정복자들이 발견하지 못하는 바람에 오히려 원형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다. 잉카의 수도 쿠스코를 비롯해 곳곳에서 자행된 무자비한 파괴의 참화를 비켜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탈리아의 폼페이 유적이 화산재에 묻혀 있다가 1600여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처럼 도시가 통째로 보존돼 있었다.

하지만 무상한 세월 속에 모든 것이 자연으로 되돌아가고, 풍화를 견디어낸 돌만이 남아 있었다. 모든 건물과 신전, 심지어 경작지까지 모두 바위를 쌓아올려 만들었는데, 깎고 쌓아올린 솜씨가 가히 예술의 경지였다. 바위와 바위가 맞닿은 면은 면도칼도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맞춰져 있었다. 석회나 시멘트 같은 모르타르는 사용하지 않았다. 살로먼 가이드는 “페루는 지진 다발지역으로 모르타르를 사용하는 것보다 바위를 정교하게 깎아 맞춘 건축물이 더 안전하다”며 “마추픽추가 잉카 건축술의 정수”라고 설명했다. 키가 크지 않고 통통한 메스티소인 살로먼은 자못 자랑스러운 듯이 유적들을 설명했다.

잉카에서 가장 숭배하는 태양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태양의 신전’은 기단부를 이룬 거대한 바위의 원형을 그대로 살리면서, 거기에 딱 맞도록 돌을 깎아 만들어 인상적이었다. 발굴 과정에서 사람의 뼈가 발견된 ‘귀족의 무덤’, 왕이 거처하던 ‘왕궁’, ‘사제들의 집’, ‘귀족들의 집’도 웬만큼 돌을 다루는 기술이 아니었다면 흉내도 내기 어려운 솜씨로 만들어져 있었다.

3개의 창을 가진 중앙광장의 건물은 또 하나의 돌 예술의 정수였다. 벽면의 바위를 모두 다른 모양으로 깎아 서로 엇갈리게 쌓은 것이다. 같은 모양의 돌은 하나도 없었다. 길쭉한 직육면체, 디귿자(ㄷ) 모양, 꺾쇠 모양, 어떤 것은 요철(凹凸) 모양을 하는 등 엄청난 바위를 자유자재로 깎아 정확하게 맞춰놓았다. 똑같은 돌을 쌓은 것보다 훨씬 견고한 벽체였다.

 
마추픽추 꼭대기의 인티후아타나 바위. 춘분과 추분 때 태양과 일치하면서 그림자가 사라져 ‘태양을 담는 기둥’이라고도 한다.

맨 꼭대기의 ‘인티후아타나 바위(Intihuatana Stone)’는 마추픽추의 상징이다. ‘태양을 담는 기둥’으로, 중앙에 직육면체의 돌출부를 지닌 다면체 바위였다. 해마다 춘분과 추분이 되면 태양이 이 바위와 정확히 일치해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절기를 알려주는 천체 시계, 잉카의 캘린더였던 셈이다. 잉카가 탁월한 과학 및 천체 관측기술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유적이었다.

▶역사와 유물을 보는 새로운 눈=살로먼 가이드는 유적을 설명하면서 잉카가 뛰어난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식민주의자들에 의해 무자비하게 파괴됐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한 서양 여행자가 “유적을 설명만 하면 되지, 거기에 정치적 해석을 할 필요가 있느냐”며 언짢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살로먼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몰이해로 다른 문화에 대한 말살과 파괴가 진행된 것이 사실”이라며 “이러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살로먼 가이드는 “여기서 불법적으로 반출된 유물이 아직도 반환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이곳을 처음 발굴한 빙엄 교수는 수년 동안 토기류와 금ㆍ은ㆍ보석ㆍ유골 등을 자신이 소속돼 있던 미국 예일대로 밀반출했다. 페루가 귀중한 유물들을 보존하고 관리ㆍ연구할 여건이 갖춰져 있지 않다는 이유였다. 제국주의자들이 문화재를 빼앗을 때 항상 들이대는 이유였다.

그 유물은 아직도 예일대 피보디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페루는 유물의 반환을 수차례 요구했으나 계속 미루다가 2010년에야 반환에 합의했다. 그럼에도 박물관과 연구시설이 구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직 반환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마지막으로 잉카 트레일과 만나는 ‘경비병들의 집’이 자리 잡은 뒤쪽의 언덕으로 올라갔다. 뾰족한 산봉우리에 거대한 돌로 이뤄진 고대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한참 넋을 잃고 마추픽추를 바라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잉카 문명은 신비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라는 점이었다. 그동안 잉카는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문명으로 인식돼왔다. 일부에선 외계인 건축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잉카가 축적한 과학기술의 결정체였다. 잉카 신비주의는 이에 대한 ‘무지(無知)’에서 비롯된 것이다. 황금에 눈이 어두웠던 스페인이 정복하자마자 유적을 파괴해 이런 비극이 벌어졌다.

신비주의의 이면엔 또 잉카에 대한 두려움, 잉카의 부활을 막으려는 의도도 있었다. ‘잉카는 높은 과학기술을 보유할 수 없다’는 인식을 퍼트림으로써 스페인의 점령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려는 것이었다. 일제가 한국에 강요했던 식민사관과 같은 것이다.

마추픽추는 접근하는 경로나 경이로운 모습, 그 속에 담긴 의미가 남다른 곳이었다. 어쩌면 마추픽추의 비애는 형태만 다를 뿐,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지 모른다. 마추픽추는 외면의 경이로움보다 그 내면을 들여다보길 요구하는 곳이었다.

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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